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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Jun 14. 2017

육지것의 제주인문이야기 III 제주의 비경 선작지왓

일흔일곱. 함께 걷고 싶은 1700고도, 선작지왓

한라산 등반이라하면 백록담을 목표로 구슬땀을 흘리며 열심히 부지런히 달려서 인증샷 찍고 또 서너시간 길을 내려와 하루 일과를 마치는걸 생각 할 수 있다.

물론 정상을 밟기위해 움직이는 산행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와 여유로운 걸음으로 이제껏 보지 못했던 길을 걸어보는 트래킹을 생각 해 볼 수 있으리라는 의미다.

4월 부터 시작된 진달래의 향연이 정점을 찌고 이제 막바지인 6월, 그 만개한 붉은 빛 물결을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은 초원지대에서 바라 볼 수 있는 곳, 선작지왓.


공식 기록으로는 한반도 남쪽에서 가장 높은 산인 한라산은 사계절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한라산의 큰 산줄기는 오름과 오름을 연결하는 漢拏岐脈한라기맥을 이루어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가른다.

민간신앙에서는 금강산, 지리산과 함께 三神山삼신산 중 하나로 치기도 하는 한라산의 산이름은 雲漢可拏引也운한가라인야(은하수를 끌어당길 수 있다)라고 유래될 정도로 높고 넓은 산이다.


현재 이 넓은 산 중 정상인 백록담을 오를 수 있는 코스는 북쪽벽인 관음사 코스와 동쪽의 성판악코스다.

휴식년제를 지키고 있는 어리목, 영실의 서벽과 15년만에 열려 오르기 시작한지 3년쯤 지난 남벽코스인 돈내코 코스는 정상을 밟을 수 없다.

그 다섯 방향 중 가장 좋아하는 트래킹코스는 단연 영실코스다.

오백나한 겨울
병풍바위 겨울
한겨울의 구상나무 숲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인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제주도의 한 곳을 떼어가라면 자신에있게 靈室영실이라고 할 만큼 강렬한 장관을 이룬다.

한라산 영실 코스의 자태는 오르는 내내 급변한다.

거대한 계곡 우측에 천태만상의 기암 괴석들은 영실기암이다.

석가여래가 불제자에게 설법하던 靈山영산과 비슷하다 해서 靈室영실이라 했다고 한다.

마치 수백의 阿羅漢아라한이 서 있는 것 같다 하여 五百羅漢오백나한이라고도 하고, 제주도를 지키는 오백장군이라고도 부른다.

이 풍경 만으로 충분히 압도적이지만 조금 더 가면 살아서 백년 죽어서 백년이라는 구상나무들이 모여 있는 군락지를 만나 잠시 해찰하다 다시 발걸음을 옮기면 전혀 예상치 못한 풍광이 펼쳐진다.

고산에 펼쳐진 평원, 선작지왓이다.


선은 서 있다는 의미이고 작지는 조금 작은 돌을 말하며, 왓은 벌판(또는 밭)을 의미하는 제주 방언이다.

그래 선작지왓은 작은 돌들이 서있는 드넓은 벌판이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백록담 서벽 아래로 800여만 평의 고산초원인 선작지왓의 봄은 붉다.

군데 군데 털진달래와 철쭉들이 융단처럼 깔린다.

나무로 만든 데크를 걷다보면 해발 1600~1700m 고도의 드넓은 평원에 봄엔 붉은 빛으로, 가을엔 갈색으로, 겨울엔 하얀 눈으로 뒤덮힌다.

이 트래킹 코스를 따라 새끼오름 옆으로 노루샘까지 걷다보면 거대한 남벽이 모습을 드러낸다.

고산의 평원과 압도하는 남벽이 빚어내는 풍광은 이국적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평원 너머로 우뚝 솟아오른 남벽은 정상에서 암벽 하단까지 수직 고도가 무려 300m나 된다고 한다.

계절마다 갈아입는 색의 향연 속에 걸음을 걷다보면 여유로움과 경이로움이 이곳을 최고로 꼽는 사람이 많은 이유를 알 수 있다.


연분홍색의 털진달래와 진분홍색의 산철쭉이 만개한 초원이나 융프라우 못지 안은 한겨울의 선작지왓의 감동은 누군가와 여유로움을 나누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한다.

윗세오름은 한라산 위에 있는 세 개의 오름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여기에 이르면 선작지왓 너머로 백록담 봉우리의 절벽이 통째로 드러난다.

그것은 장관중에서도 장관으로, 이렇게 말하는 순간 내 가슴은 뛰고 있다.

우리는 그것만으로도 한라산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의 반은 만끽할 수 있다.

영실코스는 윗세오름을 올려다보며 오르다보면 백록담 봉우리의 절벽이 드라마틱하게 나타나는 감동이 있고, 내려오는 길은 진달래밭 구상나무숲 아래로 푸른 바다가 무한대로 펼쳐지는 눈맛이 장쾌하기 때문이다.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돌하르방 어디 감수광, 유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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