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재건축추진위원장(홍위원장편)

2화: 판을 짜는 자

by 건축학도고니

서울 도심, 오래된 아파트 단지.
누군가는 이곳을 낡고 초라하다고 생각하겠지만, 홍위원장은 달랐다.
이곳은 곧 재건축될 미래의 황금 땅, 그리고 그는 그 황금의 꼭대기에 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홍위원장은 단지 배치도를 테이블에 펼쳐놓고 천천히 훑어보았다.

각 동마다 평형과 구조가 상세히 나와 있었다.


그의 시선이 한 곳에 멈췄다.


“43평형. 펜트하우스가 배정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


이 단지가 재건축되면, 펜트하우스는 당연히 가장 넓고, 가장 전망이 좋은 세대에 배정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차지하려면, 미리 자리를 잡아야 했다.


‘가장 넓은 평형을 사야 한다.’


홍위원장은 손가락으로 43평형이 있는 동을 짚었다.

그곳이 그의 목표가 될 곳이었다.


서류를 정리하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이제 움직일 시간이었다.












단지 내에 있는 부동산 사무소.
홍위원장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사무실 안에는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느 한쪽에서는 부동산 직원과 계약서를 검토하는 모습도 보였다.

익숙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다.

카운터 안쪽에서 서류를 정리하던 부동산 사장이 홍위원장을 보더니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홍 위원장님, 오랜만이네요.”

“네, 사장님. 43평형 나온 게 있다고 들었습니다.”

부동산 사장은 살짝 눈치를 보더니 서류 한 장을 꺼냈다.

“있긴 한데… 경쟁이 좀 붙었어요.”

홍위원장은 가볍게 웃었다.

이런 상황, 한두 번 겪어본 게 아니다.

그는 여유롭게 물었다.

“얼마에 나왔죠?”

부동산 사장은 눈을 반쯤 감으며 말을 이었다.

“최고가요. 깎아주지도 않겠다고 하네요.
그냥 최고가로 팔겠답니다.”

홍위원장은 잠시 서류를 살펴보았다.

어떤 때는 협상을 통해 가격을 깎을 수도 있지만,
이런 경우에는 주저하면 기회를 놓칠 가능성이 컸다.

재건축이 이루어지면 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를 것이다.
몇 천만 원을 아끼려다, 몇 억의 차익을 놓칠 수는 없었다.

홍위원장은 서류를 내려놓고 단호하게 말했다.

“좋아요. 계약하죠.”



며칠 뒤, 계약을 체결하는 날.
부동산 사무실에서 매도인을 만났다.

그는 헐렁한 점퍼를 걸치고, 낡은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손에는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고, 표정은 다소 무뚝뚝해 보였다.

부동산 사장이 옆에서 살짝 귓속말로 말했다.

“이 동네 사람들, 다 돈이 없어요.
당장 생활비라도 나오면 팔고 나가는 사람들이 많다니까요.”

홍위원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며칠 후,
잔금을 치르는 날이 되었다.

홍위원장은 부동산 사무실로 다시 향했다.

“사장님, 매도인분 오셨나요?”

그는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 부동산 사장이 뭔가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 저기 계시네요.”

홍위원장이 고개를 돌려 매도인을 바라보는 순간,
그는 잠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전의 허름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번쩍이는 명품 패딩,
반짝이는 고급 가죽 구두,
그리고 손목에는 금빛이 감도는 명품 시계까지.

그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잔금까지 받은 매도인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

부동산 사장도 예상 못 했다는 듯 입을 떡 벌렸다.

매도인은 홍위원장을 보며 능청스럽게 웃었다.

“아이고~ 좋은 집 가셨으니 관리 잘하세요!”

그러고는 한 손엔 고급 자동차 키를 돌리며 유유히 사무소를 나갔다.

홍위원장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부동산은 연극이야.”





그렇게 홍위원장은 43평형 아파트 등기까지 완료했다.












추진위원회를 모아야된다.



이제, 가장 중요한 일이 남았다.
집을 샀다고 끝이 아니다.
이제부터 이 아파트 재건축의 중심에 서야 한다.

홍위원장은 창가에 기대어 아파트 단지를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회색빛으로 물든 오래된 건물들,
곳곳에 균열이 보이는 벽면,
멀리서도 보이는 녹슨 난간과 낡은 놀이터.

이곳을 바꾸려면,
혼자서는 안 된다.
입주민들을 설득하고,
함께 움직일 수 있도록 추진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그는 손가락으로 스마트폰을 스르륵 밀었다.
몇 초간 화면을 응시하던 그는 천천히 미소 지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지."





홍위원장은 우선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만들었다.

채팅방 제목:
[○○단지 재건축 준비방]

이름이 너무 길어도 안 되고,
너무 막연해도 안 된다.

재건축을 원하는 사람들이 한눈에 들어오도록.

잠시 고민하던 그는 첫 번째 메시지를 입력했다.

"재건축에 관심 있는 입주민분들 함께해요!
주민들의 권리를 지켜줄 추진위원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확인, 전송.

그와 동시에 입주민 네이버 카페를 개설했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필수였다.
채팅방은 빠르게 의견을 나누는 데 유용하지만,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공유하려면 카페가 있어야 한다.

카페 이름:
[○○단지 재건축 정보 공유방]

첫 번째 게시글을 작성했다.

제목:
"우리 아파트 재건축,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내용:
"안녕하세요, 입주민 여러분!
○○단지의 재건축을 함께 준비할 분들을 모집합니다.
현재 우리 단지는 용적률이 높고, 입지도 좋아 재건축 시 상당한 가치 상승이 예상됩니다.
그러나 제대로 추진되지 않으면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습니다.

추진위원회 구성 목표:
1. 재건축 정보를 정확하게 공유
2.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 체계적으로 추진
3. 불필요한 시간 낭비 없이 신속하게 진행

관심 있는 분들은 가입 후 댓글 남겨주세요!
우리의 미래 가치를 위해 함께해요!"

게시, 등록.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입주민들이 반응하기만 하면 된다.




첫 번째 반응이 온다

처음에는 조용했다.
한 시간, 두 시간…
카톡방에도, 카페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홍위원장은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조금만 기다려 보자.’

재건축이라는 단어는 무겁다.
쉽게 뛰어들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입주민들이 불편을 느끼고 있다면,
누군가는 반드시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예상대로였다.

오후가 되자,
카톡방에 첫 번째 참가자가 들어왔다.

입장: 김00 님이 참여하셨습니다.

곧이어 두 번째, 세 번째 참가자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재건축 정말 필요한 거 아닌가요?"
"우리 아파트 관리 상태가 너무 안 좋아요. 언제까지 이대로 살아야 하나요?"
"추진위원회 구성되면 저도 도울게요!"

순식간에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동안 가슴속에 담아뒀던 불만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요즘 물 새는 집도 많대요."
"엘리베이터 너무 낡아서 무서워요."
"관리사무소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죠?"

기세가 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묻기 시작했다.

"그런데, 재건축은 어떻게 시작하는 건가요?"
"우리가 뭘 해야 하나요?"

그 순간, 홍위원장은 입꼬리를 올렸다.

"드디어."

이 질문이 나와야 한다.

이제부터 그는 판을 짜는 사람이 된다.












온라인에서만 움직이면 안 된다.
오프라인에서도 확실히 홍보해야 했다.

홍위원장은 직접 홍보 전단지를 만들었다.

✅ "○○단지 재건축 추진위원회 모집!"
✅ "입주민들의 권익을 위해 함께해요!"
✅ "카카오톡 오픈채팅 & 네이버 카페 개설 완료!"

디자인도 깔끔하게 만들었다.
QR코드를 넣어 한 번에 카페와 채팅방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했고,
"재건축을 원하시는 분들은 꼭 참여해주세요!"라는 문구를 강조했다.



홍위원장은 단지를 한 바퀴 돌며 곳곳을 살폈다.
낡은 단지엔 정보가 제대로 공유되지 않고 있었다.
관리사무소 앞에 있는 게시판도 오랜 시간 방치된 듯했다.
마지막으로 붙은 공지는 몇 달 전, 수도 점검 안내였다.

"이래서야 사람들이 재건축을 신경 쓰겠어?"

그는 주머니에서 접어둔 홍보 전단지를 꺼냈다.
이미 온라인에서는 반응이 오고 있었다.
하지만, 오프라인에서도 확실히 밀어붙여야 했다.

그는 전단지를 손에 쥔 채, 관리사무소 문을 열었다.

사무실 문을 열자,

관리사무소 직원 몇 명이 사무를 보고 있었다.

안쪽 책상에서는 관리소장이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홍위원장은 한 발 앞으로 나아가,

미리 준비한 전단지 한 장을 조심스레 내밀었다.


"이거, 게시판에 붙일 수 있을까요?"


직원 한 명이 전단지를 받아 들고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미묘하게 굳어졌다.


"어… 이런 건 보통 입주자 대표회의 승인 받아야 하는데요."


살짝 당황한 듯한 반응이었다.

홍위원장은 그 반응을 이미 예상했다는 듯,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공익적인 내용인데요?

입주민들에게 재건축 정보를 공유하는 건 중요하지 않겠어요?"


그는 일부러 '공익' 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주민들에게 유용한 정보라고 생각하면,

관리사무소에서도 쉽게 거절하기 어려울 터였다.


직원은 전단지를 한 번 더 훑어보더니,

옆에 있던 동료를 힐끔 쳐다봤다.

그러더니,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음… 뭐, 문제 될 건 없겠죠.

일단 붙여두겠습니다."



단지 곳곳으로 퍼지는 변화

그렇게,

단지 내 곳곳에 홍보 전단지가 붙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 내부

– “재건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카톡방에서 함께해요!”


우편함 옆 게시판

– “우리 아파트의 미래, 우리가 함께 바꿉니다.”


관리사무소 입구

– “카카오톡 오픈 채팅 & 네이버 카페 운영 중! QR코드를 스캔하세요.”


처음엔 몇몇 입주민들이 무심히 지나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전단지 앞에 서서 내용을 읽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어? 우리도 재건축하는 거야?"

"이런 게 있었어? 나도 한번 들어가 볼까?"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카카오톡 채팅방과 네이버 카페의 회원 수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10명 → 30명 → 50명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다.

어떤 사람들은 직접 메시지를 보내와 문의했다.


"추진위원회는 언제 구성되나요?"

"재건축이 확정된 건가요?"

"이거 진짜 빨리 추진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드디어.


사람들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건,

그 흐름을 제대로 이끌어 가는 것뿐












홍위원장은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입주민 채팅방의 인원이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이제 첫걸음은 뗐다.
다음은 추진위원회를 정식으로 발족하는 것.

그는 창문 너머로 단지를 바라보았다.
아직은 낡고 초라해 보일지 몰라도, 머지않아 이곳은 서울에서 가장 핫한 아파트 단지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꼭대기에는 자신이 서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지."

홍위원장은 피식 웃으며,

다음 단계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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