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추진위원회를 모집해야 된다.
누군가는 "이런 낡은 곳에서 언제까지 살아야 하나?"라고 말하겠지만,
다른 누군가는 이곳이 또 다른 시작이 될 것임을 직감하고 있었다.
이곳이 곧 재건축될 거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누가, 어떻게, 언제 추진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재건축은 단순한 건물 철거가 아니다.
이제, 이 거대한 변화를 함께 이끌어갈 사람들이 필요했다.
운영위원회. 그것이 홍위원장이 지금 만들어야 할 조직이었다.
� 강소장(공인중개사)
"위원장님, 지금 카페에 올라온 운영위원회 모집 글 봤어요.
이거 진짜 추진하실 건가요? 저도 같이하면 도움될 것 같은데요?"
강소장은 이 아파트에서 오래 거래를 해온 공인중개사였다.
이 동네에서 손님을 받고 계약서를 쓰기를 수십 번,
이 아파트 주민들 대부분을 알 만큼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이곳의 시세와 흐름을 지켜봤다.
재건축이 대세가 될 거라는 걸 감지한 것도 한참 전이었다.
부동산이라는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빠른 정보가 생명이다.
강소장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 단지는 이미 움직이고 있다."
그녀가 먼저 연락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보통 부동산 중개사는 사람들이 물어볼 때 답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강소장은 다르다.
� "위원장님, 솔직히 여기 주민들 반응이 미지근한데,
부동산 업계 쪽에서 살짝 떠주면 분위기 확 바뀔 겁니다.
저도 운영위원회에 들어갈까요?"
그녀는 주민들과 가까운 사람이었다.
입주민들이 가장 신뢰하는 부동산 중개사이기도 했다.
홍위원장은 바로 답장을 보냈다.
� "좋죠. 강소장님이 홍보해 주시면 금방 반응 올 겁니다."
그녀가 주민들에게 분위기를 잡아주면,
재건축 추진의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 송사장(토지 투자자)
� "홍위원장. 드디어 시작하는 거냐?"
홍위원장은 이 이름을 보자 고개를 갸우뚱했다.
송사장은 이 단지에 막 이사 온 사람이었다.
그는 토지 투자자였다.
도심 곳곳의 흐름을 읽고, 재건축될 지역을 미리 선점하는 투자 방식.
그런 그가 이 아파트를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사 온 지 1년.
아직 주민들에게 얼굴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었지만,
그는 이미 이 단지의 구조, 법적 상태, 용적률, 주변 부동산 상황까지
모든 데이터를 철저히 분석하고 들어온 상태였다.
� "위원회 꾸리면 나도 한번 가볼까?
여기 부동산 투자자들 중에서도 관심 있는 사람들 꽤 될 거 같은데."
그는 단순한 투자자가 아니었다.
이곳이 재건축되었을 때의 미래 가치까지 계산하고 있었다.
� "송사장님까지 들어오면 분위기 확 바뀌겠네요.
우리 단지가 서울에서 핫해지려면, 지금부터 판을 잘 짜야 합니다."
� "그렇지. 자, 그럼 다음 모임 일정 잡으면 나도 알려줘.
부동산 정비하는 쪽 애들 몇 명 데리고 가볼 테니까."
송사장은 자신이 이 흐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흐름을 주도할 사람이 누군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 조대표(동대표)
� "홍위원장님, 주민들끼리도 한 번 제대로 논의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세 번째 연락은 조대표.
그는 이 아파트가 처음 분양될 때,
신혼집으로 이곳을 분양받은 사람이었다.
30년 전,
조대표는 이 아파트를 신혼집으로 분양받았다.
당시 그는 한창 바쁘게 일하며 살고 있었고,
신혼의 설렘과 함께 첫 번째 내 집을 마련했다는 기쁨이 컸다.
아파트 단지에 처음 입주했을 때는
새 아파트 특유의 페인트 냄새가 남아 있었고,
엘리베이터가 반짝반짝 새것처럼 빛났다.
밤이면 창문을 열어도 매연 없이 신선한 바람이 들어왔고,
주차장에는 몇 대의 차만 정리정돈되어 있었다.
그때만 해도,
이곳에서 30년을 살게 될 줄은 몰랐다.
"이 아파트에서 오래 살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어요.
그냥, 결혼하고 몇 년 지나면 더 좋은 곳으로 이사 가겠지…
그렇게 생각했죠."
하지만, 삶이란 원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
이곳에서 그는 가족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일터에서의 하루를 끝내고 돌아와
따뜻한 집에서 가족과 함께 밥을 먹었다.
그렇게 30년이 흘렀다.
그는 단순한 ‘입주민’이 아니었다.
이 아파트와 함께 삶을 쌓아온 사람이었다.
"아파트라는 건, 그냥 벽돌이랑 철근만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에요.
여기서 사람들의 이야기가 쌓이고,
그게 결국 그 공간을 ‘집’으로 만드는 거죠."
그는 단순히 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 아파트를 위해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헬스장 운영위원장
단지 내 헬스장이 처음 생겼을 때,
운영위원장을 맡아 관리에 힘썼다.
"헬스장 생긴다고 할 때도 말이 많았어요.
근데 어르신들도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가 직접 입주민 의견을 모으고,
관리사무소와 협의해서 헬스장 운영방식을 개선했다.
그 덕분에 단지 내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의 아이들도 장성해서 떠나갔다.
그들이 어릴 때 뛰어놀던 놀이터는
이제 페인트가 벗겨지고,
흙바닥에는 발자국 대신 낙엽이 쌓여갔다.
아이들이 없으니,
이제 집도 넓게만 느껴졌다.
그는 문득 생각했다.
‘이제 나도 떠날 때가 된 걸까?’
하지만 그는 떠날 수 없었다.
이곳에서 보낸 30년이
단순한 ‘세월’이 아니라
그의 삶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 "이 아파트를 그냥 투자 상품처럼 보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는 이곳을 우리 가족이 살아온 터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 재건축도 제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재건축을 반대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개발을 원하지도 않았다.
"좋은 아파트가 되어야 한다."
� "재건축 추진하는 김에, 그냥 아무 건설사랑 대충 계약하는 거
그런 일은 없어야 합니다.
우리 아파트 주민들이 정말 살고 싶은 집으로 만들어야 해요."
그는 아파트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사람이었다.
입주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사람.
이 흐름에서 반드시 필요한 인물이었다.
� "위원장님,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운영위원회가 만들어지면, 입주민들 의견도 꼭 반영되도록 하죠."
홍위원장은 깊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람은 반드시 운영위원회에 있어야 한다.
홍위원장은 고민 끝에 첫 번째 만남 장소를 정했다.
아파트 상가 1층의 이디야 커피숍.
너무 무겁지도 않고, 너무 가볍지도 않은 장소.
입주민들이 부담 없이 모일 수 있는 곳.
이곳에서,
재건축을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 첫 번째 그림을 그릴 것이다.
그는 커피숍 한쪽 창가 자리에 앉아,
운영위원회 첫 모임을 위한 계획을 정리했다.
강소장은 주민들과의 네트워크를 담당할 것이다.
송사장은 재건축의 가치를 실질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투자자의 입장에서 역할을 할 것이다.
조대표는 입주민들의 입장을 대변하며, 단순한 수익성을 넘어 이 아파트의 미래를 고민할 사람이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 흐름을 제대로 이끌어 가는 것.
홍위원장은 이디야 커피숍의 창가 자리를 예약하며 조용히 웃었다.
이곳에서, 재건축을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 첫 번째 그림을 그릴 것이다.
그리고 몇 년 후, 이 작은 모임이 한 도시의 풍경을 바꾸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
그는 여유롭게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첫 번째 운영위원 모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