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사는 촐싹이
지난 주 부산에 반짝 폭설이 왔다.
윗지방 사람들이 보면 코웃음 칠 양이지만 부산 사람들은 눈이 날리면 폭설이라고 우스갯소리들을 한다.
쌓이지도 않고 뭉쳐지지도 않는 눈.
반가운 눈이지만 절대 예쁘게 오는 법이 없다.
사방팔방으로 지저분하게 날리며 따갑게 얼굴을 때리던 싸래기눈은 30분을 넘기지 못하고 그쳤다.
나는 눈을 좋아한다.
어릴 적 시골에 살 때는 겨울이면 종종 눈이 쌓일 정도로 내렸었다.
그런 날이면 털모자, 장갑, 목도리로 중무장을 하고 동네 친구들과 눈을 가지고 놀기 바빴다.
마당에 굴러다니는 비료포대를 주워서 지푸라기를 집어넣고 뒷산 오르막을 오른다.
경사가 가파를수록 심장이 빨리 뛴다.
오르막이 힘들어서인지, 곧 썰매를 탈 설렘 때문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 차례다!!
비료포대 앞부분을 당기고 다리는 높이 들고 뒤로 누워!! 으아아아아아
앞선 친구가 닦아놓은 길을 따라 덜컹덜컹 빠른 속도로 내려간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어떤 소음도 들리지 않는다.
그저 나를 보고 배꼽 잡고 웃는 친구들과 바닥에서 데굴데굴 웃고 있는 나만의 세상인 것이다.
그러다 갑자기 서로 죽일 듯이 눈싸움을 하다가 누구 하나 지치면 눈사람 만들기로 평화를 찾는다.
흙 섞인 못생긴 눈사람을 뒤로하고 제일 가까운 친구집으로 뛰어가 방바닥에 얼어버린 손발을 녹이며 고구마를 까먹었다.
비록 눈오리 집게도 없고, 핫팩도 없었지만 무척이나 즐겁고 따뜻했다.
흩날리는 눈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 시절 빠알간 얼굴, 동그란 웃음, 들뜬 목소리가 더욱 그리워졌다.
내 안에는 여전히 천지 모르고 눈밭을 뒹굴던 그 천방지축이 살고 있다.
어느새 사랑도 하고 돈도 벌고 술도 마시고 운전도 한다.
촐싹이는 아이는 작은 방 안에 숨겨두고.
눈은 포근하게도 우리를 그 시절 어린아이로 돌아가게 한다.
방에서 오랜만에 나오는 그 아이는 아마 가끔 괴리감을 느끼겠지?
얘 원래 설쳐야 되는데 왜 이렇게 차분하고 어른스러운 척 하지? 하며.
자주 꺼내주고 싶은데 혹독한 세상에 혹여 소중한 그 아이가 다칠까 더 꽁꽁 숨기게 되는 것 같다.
세상의 무게에 눌려 살아가다 보면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니까.
그래도 갑갑할 그 아이를 위해 좋아하는 것을 찾아주자.
눈이 됐든, 비가 됐든, 사랑하는 사람이 됐든.
아마 내 안에 사는 그 어린아이가 행복한 것이 우리가 찾 진정한 행복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