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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지만 쉽지 않은

행복수집가

by 쉼 아카이브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피부를 스치는 기분 좋은 바람, 어디선가 스미는 은은한 향기, 나를 부르는 반가운 목소리,

나의 손을 잡은 사랑하는 이의 따뜻한 온도.

저장해 놓고 내가 원할 때면 언제든 꺼내 느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무리 구체적으로 기록을 하고 영상을 남겨도 감촉으로 느끼는 것만 못하니 이내 가슴에 사무친다.

눈앞에 물질적인 것들에 현혹되어 그나마의 기억마저 잊혀지는 것이 두려워 어김없이 펜을 잡는다.

기억의 조각이라도 남겨두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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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기분, 촉감과 같은 것들을 말로 완벽히 표현하기란 불가능하다.

이런 감정과 감촉들은 추상적이지만 분명히 실재한다.

온갖 언어적 비유와 예시를 갖다 붙여도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이, 마음속에는 아주 자연스럽게 새겨진다.

가타부타 부연 설명을 할 필요도 없다.


강력한 사건들은 내가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뇌리에 강하게 박힌다.

시간이 지나면 그때의 배경과 상황들은 한 장의 사진처럼 단편적으로 남아도, 감정과 느낌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때를 떠올리면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이 좋은 기억이든 아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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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처럼 일상에서 스치듯 느낀 행복은 휘발성이 강하다.

일과 삶에 치이다 보면 지난 주말 느낀 행복은 오간데없고, 점점 더 자극적이고 강한 재미를 찾게 되는 것 같다.


진짜 행복은 쉽게 잊혀진다.

비교적 가볍고 사소하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이 행복이 쉽다고 할 순 없다.

건강, 시간, 마음의 여유, 계절, 날씨, 등장인물, 이 모든 박자가 맞아야 느낄 수 있는 행운과 같은 것이다.


가볍게 잊혀지기 쉬워 더 소중한 순간들을 정성스레 모으는 것.

소소하지만 작지만은 않은 행복한 순간들을 열렬히 느끼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이런 찰나들이 모여 내가 되었고

이런 찰나들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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