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이익~ 촤악~ 전 굽는 소리가 들린다.
곧이어 엄마와 외할머니의 대화가 오간다.
미나리 향 좋네, 간장도 만들까?
눈 비벼 시계를 보니 새벽 여섯 시 반.
전날 엄마와 나는 충청도 시골에 있는 외갓집에 깜짝 방문을 했다.
오랜만에 온 맏손녀를 보시고는 폴짝 박수를 치시는 모습에 우리 모두 환하게 웃었다.
도란도란 앉아 저녁을 먹으며 그간의 못다 한 안부와 따뜻한 시선을 나누었다.
그러다 며칠 전 할머니 꿈에 10년 전 세상을 떠난 당신의 아들이 어렴풋이 보였다는 말에 다음날 바로 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는 외삼촌을 뵈러 가기로 했다.
죽은 자식의 성묘를 위해 해도 덜 뜬 새벽 전을 부치는 할머니의 뒷모습에 울컥하는 마음을 애써 숨겨야 했다.
삼촌은 직업군인으로 복무 중 갑작스러운 질병으로 돌아가셨다.
든든한 큰 아들이었고 훌륭한 인품을 가진 분이었기에 남겨진 가족, 동료들은 쉽사리 그의 부재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나 또한 삼촌의 선한 미소가 아직도 그려진다.
가장 슬퍼한 외할머니는 세월이 흐른 지금도 마음의 병을 앓고 계시는 듯했다.
따뜻한 아침 햇살 아래 수많은 묘비들 사이로 소박한 상이 차려졌다.
한 개에 8천원씩이나 하지만 주저 없이 고른 배, 사과, 참외, 정성스레 만들어 온 전과 동그랑땡, 생선포, 그리고 소주 한 병.
화병에 새로 사 온 꽃을 꼽고 주변을 정리했다.
이상하다. 삼촌을 보려고 60km를 달려왔는데 그는 왜 더욱 멀게만 느껴지는 걸까.
내가 절을 하는 동안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는 자식을 향한 그리움을 꾹꾹 눌러 담아 안부를 전하셨다.
너 미나리전 좋아했잖아, 많이 먹어.
그리고 이어지는 당신들을 자책하는 말, 후회하는 말, 하늘을 원망하는 말, 그리운 말.
그 무덤덤하고 무거운 말들은 공기에 아무렇게나 퍼지고, 돌아오는 대답은 아무것도 없었다.
80세가 넘은 노부부의 가슴에 묻혀있을 그 무게를 가늠조차 못하면서 감히 흐르려는 눈물을 얼른 훔쳤다.
자식이 10살이든 50살이든,
부모가 40살이든 80살이든,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마음은 같겠지.
마지막 인사를 하고 돌아서려는 찰나 할머니는 차가운 묘비를 껴안으셨다.
작은 할머니의 품보다 더 작아진 삼촌이 가만히 안겨있다.
우리 네 사람 모두 서로를 위해 눈물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