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다 때가 있다.

by. 거북탕

by 쉼 아카이브

다 때가 있다.

동네 목욕탕 앞에 붙어 있는 문구에 순간 피식 웃음이 나면서도, 곧이어 뒤통수를 맞은 듯한 탄성이 나왔다.

그렇지. 목욕탕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는 법이지.

2222.jpg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면 정서적, 물질적으로 독립하여 살아야 하듯이, 우리의 삶의 주기에는 자연스러운 수순이라는 것이 있다.

하지만 인생이 어디 그렇게 물 흐르듯 잔잔하기만 한가.

고개마다 굽이 치는 인생의 물살을 기어코 넘기고야 마는 바로 그 '때'를 우리는 언제나 염원하고 바라게 된다.

다만 그 '때'가 언제인지 우리로서는 알 도리가 없으니 불안해하고 방황하는 것 아닐까?

노력과 무조건 비례하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인생은 운칠기삼을 넘어 운구기일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니, 인생이 얼마나 요지경인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때를 기다리기보다는 때를 찾아 쫓아가는 경향이 보이기도 한다. 작은 노력 대비 큰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곳으로 몰리는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하고 현명한 선택일지 모르지만, 아무리 세상이 그렇다 한들 때를 기다리며 자신을 갈고닦는 성실함과 인내심, 노력의 가치가 점차 희석되고 있다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행운은 때를 기다리며 정성과 열정으로 준비된 사람에게 깃든다고 믿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일까?


삶의 여정 속에는 '때'를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즐겨야 할 때, 집중해야 할 때, 잡아야 할 때, 놓아주어야 할 때.


특히 나는 쉬어야 할 때와 견뎌야 할 때를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당장은 힘들어도 시간이 지나면 나에게 자산이 될 것을 알았기 때문에 어떻게든 버티려고 애썼다.

남들 다 하는 일을 버거워하는 자신이 한심해 채찍질하다가도, 쉬지 않고 달려온 내가 안쓰럽기도 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고장이 날 때까지 견디고 나서야 비로소 쉬어야 할 때였음을 깨달았다.

이제는 인생에 어떤 중요한 선택의 시기가 오면 몸과 마음에게 질문을 많이 하고 나만의 판단기준을 세워 중요도를 매겨본다. 나의 발걸음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결국 때가 되면 우리가 이뤄놓은 모든 것은 이 땅에 남겨둔 채 홀연히 떠나야 한다. 나에게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면 자신에게 맞는 방향과 속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나만의 '때'를 만나게 된다면 인생이 주는 큰 선물을 받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누구에게나 인생에 묵은 때가 있기 마련이다.

서두를 필요 없다.

때도 불려야 수월하게 밀린다.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거북탕에 앉아 때를 기다려야겠다.



keyword
이전 23화돌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