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식집사
흙, 논밭, 나무, 산들로 둘러싸인 시골에서 성장한 나에게 자연은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도시에 와서야 알았다.
흙은 운동장에 가야 밟을 수 있다는 것을.
자연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을.
결혼을 하고 집에 식물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가족들과 화훼단지에 갔다.
부모님께서 입주 선물로 커다란 나무화분 세 개를 선물해 주셨는데 5년이 지난 지금 남아있는 것은 대형 스투키와 아래 고무나무의 새끼나무(?)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렇게 건강했던 나무가 과습때문인지, 에어컨바람 때문인지 갑자기 시들시들해지더니 잎을 다 떨구고 죽어버렸다.
그나마 건강할 때 옆으로 삐져나온 줄기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을 잘라 스타벅스 트렌타 통에 심어놨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고 뭔가 그냥 내버리기 아까웠달까?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계절이 여러 번 바뀌는 동안 생각보다 잘 버티길래 제대로 분갈이를 해줘야겠다 싶어 근처 식물 편집샵에 들고 갔다.
작은 나무 화분을 안고 가는 내내 아기를 응급실에 데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튼튼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며 커피컵에서 꺼내고 보니 우려했던 대로 뿌리가 거의 나지 않았었다.
흙도 좋지 않았고 플라스틱 통이라 자라나기 좋은 환경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잎을 펴낸 것이 기특하면서도 어쩐지 안쓰럽고 건강하게 살릴 수 있을까 하는 조바심이 들었다.
그런 나를 보고 사장님께서 '얘를 많이 아끼셨나 보다. 고무나무는 생명력이 강해서 살릴 수 있을 거다'라고 하셨다.
아끼다? 내가 이 식물을 아꼈던가?
그때 깨달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이 아기나무를 '키우며' 아끼고 있었구나.
쓰러질까 지지대도 만들어주고 위치도 옮겨주고 물 주고 잎도 닦아주면서, 내가 인지하지 못했지만 이 식물을 아끼고 있었던 것이다.
다 자란 나무에 물 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키운다'는 의식이 생기자 책임감도 생기고 이 어린 나무가 나중에 커서 자기 엄마처럼 큰 나무가 되는 것 모습을 꼭 보고 싶어 졌다.
인식을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살아감에 있어서도 감각적으로 의식을 깨우고, 본질을 인지를 하여 깊은 사고체계를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이가 들수록 깊어져야 하는데 오히려 게을러지는 사고력을 계속 두드려 깨워야 한다.
아무튼 얼떨결에 식집사가 되었지만 앞으로 우리 집 초록이를 잘 지키고 키울 것이다.
나아가 세상이 조금 더 초록색과 가까웠으면 좋겠다.
도시가 조금만 더 초록색에 자리를 내어줬으면 좋겠다.
나부터 미약하게나마 환경을 보호할 수 있는 지속적인 생활습관을 들여야겠다.
지켜내야 할 자연이 있음에 감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