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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가 가장 어려워

 - 마취통증의학과 의사라서 9 화

 우리 집 아이들은 동물들, 특히 강아지를 무척 좋아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둘 다 심한 동물 털 알레르기이다. 그러다 보니 반려견을 키우고 싶어도 키울 수가 없고 다른 집 강아지들만 보면 부러워 눈을 떼지 못한다. 나 또한 어릴 때 동물 좋아하시는 아버님 덕분에 강아지를 무척 좋아하지만 나 또한 반려견은 우리 집 아이들이 독립해야 꿈꿀 수 있는 일이라 그 날만을 고대하고 있다. 그런 나도 실험을 할 때는 다른 마음이니 나의 이중성에 가끔 내가 놀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독한 구석이 있어 이런 의술에 몸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의학과의 박사 논문 연구나 해외 연수 시에는 임상 연구보다는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를 많이 하게 된다. 나의 경우에도 박사 논문을 위한 실험을 2년 동안이나 하면서 실험 대상이 계속 바뀌어 다양한 동물들을 마취하게 되었다. 또한, 병원에서 암에 관한 연구팀에서 동물 마취에 대한 요청을 받아 개, 돼지를 마취하였고 대전 연구소와 하는 방사선 연구팀에 참여하게 되어 고양이를 데리고 대전까지 가서 마취를 한 적이 있다. 그러고 보니 다른 마취과 의사들보다는 다양한 동물들을 마취해 본 경험이 있는 것 같다.   

 

 처음 동물 마취에 참여한 것은 전공의 1년 차 때였다. 그때 과장님의 박사 논문 연구에 참여했던 것 같은데 논문에서는 한국 잡견(mongorian dog)이라고 부르는 똥개를 마취하면서 근이완에 대한 연구를 했던 것 같다. 토요일마다 진행되었고 개를 데리고 오면 바로 엉덩이에 수면제를 놓고 마취를 하고 나서 근육 이완제를 투여하고 근 이완 효과에 대한 연구를 하였는데 항상 연구가 끝나면 그 개는 깨우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분들이 데리고 갔다. 그래서 그 후 그 개가 어찌 되는지는 잘 몰랐으나... 연구가 종료된 후 알고 보니 병원 직원분들이 기다리고 있으시다가 몸보신용으로 사용하셨다는데 믿거나 말거나... 확실히는 잘 모른다.    


 대학병원에 전임의로 있을 때 역시 한국 잡견을 대상으로 다양한 실험을 하였다. 매주 치과대학 병원의 동물 실험실에서 개를 마취시켜놓고 시간이 걸리니 중간에 짜장면을 시켜 먹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실험하다가 먹던 그 짜장면이 어찌 그리 맛있었던지....     


 나의 박사 논문 학위를 위한 연구는 실험만 2년 동안 하였는데 매주 주말마다 대학병원의 임상의학연구소를 찾아가 실험을 했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남들보다 힘들게 박사가 될 운명이었나 보다. 처음에는 개를 데리고 패혈증에 대한 실험을 하였는데 패혈증을 유발하다 보니 실험마다 개가 희생이 되고 그 비싼 개에 대한 비용을 대는 것이 너무 힘들어 보다 가격이 낮은 토끼로 시행하였는데 토끼는 그야말로 너무 약해서 실험 도중에 견디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하는 수 없이 가장 싼 쥐로 실험 모델을 완전히 바꿀 수밖에 없었다. 그 쥐에 대한 실험을 근 1년 반을 했는데 내가 실험에 사용한 쥐만 200마리는 되는 것 같다. 실험 대상인 쥐 말고도 심폐 우회로에 사용할 쥐의 혈액이 필요하여 한 실험당 쥐 4 마리 정도가 더 필요하였다.


 실험 비용이 너무 들어 고민하던 중 우리 병원의 외과 과장님께서 실험에 사용한 후 사육하던 쥐들을 내가 사용할 수 있게 배려해주셔서 다행히 연구비를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쥐들에게서 채혈을 하기 위해서는 마취과 일과가 다 끝난 후 동물 실험실 직원들도 모두 퇴근한 시간에만 가능하였다. 결국, 모두 퇴근한 불 꺼진 컴컴한 동물 실험실에 나 혼자 들어가 쥐들에게서 채혈을 해야만 하였다. 그 당시 밤에 동물 실험실 가기가 어찌나 싫었던지... 하지만, 학위에 대한 다급한 마음에 어쩔 수 없이 늦은 밤 실험실에 가야만 하였는데...


 쥐에게서 채혈을 하기 전에 쥐를 유리통에 넣고 에테르라는 마취제로 잠재운 후, 채혈을 하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쥐를 유리통에 넣는 도중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이 쥐는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가고... 나는 실험실을 쥐 잡듯 찾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한참 바닥을 뒤쥐고 있는데 잃어버린 쥐와 눈이 딱 마주쳤다. 나는 어찌어찌하여 그 쥐를 잡아 결국에는 채혈을 하였으나... 거의 밤 12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어찌나 무섭던지... 실험이 끝나고 동물 실험실에서 나오는데 정말 등골이 오싹했다.    


 우리 병원의 방사선 종양학과에서 붕소(boron)를 이용한 암 치료를 대전 연구소와 같이 진행하는 연구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사람에게 이 연구를 시행하기 전에 먼저 동물들에게 시행하는 연구에 나는 마취 담당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고양이를 데리고 연구에 참여하는 의료진들과 방사선 관련 기사분들이 다 같이 대전에 가서 완전히 차단된 치료실 안에 고양이를 마취시키고 완전히 격리된 상태에서 붕소를 투여하고 그 고양이를 회복시켜 다시 병원으로 데리고 오는 연구였다. 마취 중인 고양이를 볼 수도, 상태를 확인할 수도 없으니 그야말로 어려운 마취였다. 그래서 고양이만 치료실에 넣고 마취기와 마취 모니터는 밖에 두도록 모든 마취 회로와 모니터 감시 회로를 10 미터 이상으로 길게 만드는 등 이제까지 해본 적이 없는 마취 기법을 사용해야만 했다.


 연구가 다행히도 별문제 없이 끝났고 고양이는 잘 회복이 되었으나 연구 종료 후 마취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고양이를 바로 차에 태우고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오면서 참으로 마음이 조마조마하였다. 연구비 액수가 높았고 병원에서 기대하는 연구였기에 그 고양이가 잘 못 되면 큰일이니 부담이 되었던 마취였다.    


 미국 연수에서는 쥐를 대상으로 하는 연구에 참여하였다. 아편에 중독된 쥐를 유발하고 그 쥐의 특정한 행동들, 즉 아편에 중독된 쥐들의 부작용, 통증에 대해 더 민감해지는 성향에 대한 연구와 마리화나와 관계된 수용체(endocannabinoid receptor)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아편에 노출되지 않은 쥐들이 대상인지라 생후 12-17일 된 신생아 쥐들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연구였다. 그래서 갓 태어난 어린 쥐와 어미 쥐를 실험실에 데리고 와서 키우면서 실험을 하게 되었다. 어느 날 실험실에 갔더니 어미 쥐가 무언가 하얀 것을 입에 물고 있었다. 나는 무언가 하고 자세히 보았더니 어미 쥐가 아기 쥐를 물고 있는 것이었다. 스트레스를 받는 설치류들은 자식을 때로 잡아먹는다는 이야기는 알고 있었지만 눈으로 직접 보게 되니 그 비정함과 끔찍함에 실험실에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암 연구에 참여하시는 해부 병리과 과장님께서 돼지 마취를 부탁하셨다. 사실 나는 돼지는 마취를 해 본 경험이 없었고 돼지 마취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전에 들은 적이 있어 조금 걱정이 되었다. 연구에 참여하시는 외과 선생님, 핵의학과 선생님 등 많은 분들이 기다리시는 가운데 돼지의 마취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웬걸... 돼지의 의식을 소실시키고 기관 내 삽관을 하려고 하는데 빤히 보이는 성대에 관이 삽입이 안 되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오랜 시간이 걸려 기관 내 삽관에 성공할 수 있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돼지의 성대 힘이 워낙 강하여 관 삽입이 어려웠고 그 부위에 리도카인 같은 국소 마취제를 분무했더라면 보다 수월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과 선생님 말씀으로는 지금까지 내가 마취하면서 그렇게 당황하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고 우스갯소리도 하셨는데... 사실 내가 생각해도 가장 애먹은 기관 내 삽관이었다.    

 미국 연수 중에 동물 실험실내 비상사태가 일어나는 경우가 있었다. 전면 실험 정지.. 동물 실험을 반대하는 단체들이나 멤버들이 동물 실험실에 들어온다는 정보가 입수되면 실험을 정지한다. 그 단체 멤버들과 만났을 때의 행동 강령이나 대처법도 배운 것 같은데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당시 한국에서는 실험을 하기 전에 동물 윤리나 권리에 대한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해외 연수를 갔던 병원 실험실에서 일하기 전 처음 몇 주간 이러한 교육을 받고 시험에 통과되어야만 실험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 교육 내용이 어떻게 하면 동물이 덜 힘들게 실험에 사용되게 할 수 있을지, 윤리에 대한 교육, 그들의 희생에 대한 윤리적인 성찰 등을 포함한 내용들이었던 것 같다. 요즘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실험실마다 해마다 동물 위령제를 지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죄 없는 동물들의 무고한 희생 없이 연구들이 진행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하루속히 과학이 더욱 발전하여 직접적인 동물의 희생 없이 연구들이 진행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현재로서는 이러한 희생을 최소한으로 하고 또한 희생되는 동물들에게는 감사하는 마음을 항상 지녀야 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인 것 같다.                    



제목: Cats Gallery (고양이 갤러리, 수잔 허버트 작품, 탐스 앤 허드슨 출판사)    


 수잔 허버트(1945-2014)는  명화 속 주인공을 고양이로 바꿔 그림들로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이다. 원래는 극장에서 배우를 그려주었으나 자신의 고양이 폴리를 모델로 명화들을 패러디한 그림을 모아 'A cats gallery of art'(1990)라는 책을 내면서 유명해졌다. 출처: Thames & Huds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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