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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한 의사, 고마운 환자

 - 수술실이란 극장 (Operative theatre) 6 화

   이번 이야기는 조금은 지루한 이야기일 수 있으니 읽다가 지루하시면 넘기시길... 그러나 미래에 의학과 관련하여 일하실 학생, 전공의 선생님들은 꼭 읽어주시길 바란다. 그래서 나와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수십 년을 같은 병원에서 종사하다 보면 비슷한 수술, 비슷한 환자들로 맡은 업무에는 전문적이겠으나 매일 일상이 단조롭고 지루하다고 느낄 때도 있다. 그러나 가끔 이러한 의사의 매너리즘을 무참히 깨트리고 정신을 번쩍 들게 해 주시는 고마운 환자분들이 계신다. 

 이러한 환자분들을 오랜만에 만나면 지나왔던 지루했던 시간이 무탈했던 시간들로 탈바꿈되면서 그 시간들에 새삼스럽게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된다. 


 하루에 많게는 열 명도 넘는 환자들의 마취를 담당하는 날도 있는데 임상적인 문제가 없는 환자만을 담당하기란 요즘같이 고령화 사회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다 보니 마취 전 환자에 대한 철저한 검진 및 검사가 점차 중요시되어 간다.    


 마취과 의사가 담당 환자와 만나는 시점은 언제가 좋을까? 나라마다, 병원마다 시스템이 다양하겠지만 교과서에 나와 있는 이상적인 시스템은 수술 전 환자가 본인을 마취해줄 의사와 수술 예정 1, 2주 전에 미리 만나서 환자는 마취에 대하여 설명을 듣고 의사 역시 자신이 마취할 환자를 검진하여 각 환자에게 꼭 필요한 수술 전 검사만 시행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내가 아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미리 집도하는 외과 파트에서 환자에게 일괄적인 수술 전 검사를 시행하고 검사에 이상이 있을 때 마취과와 상의 후 더 필요한 검사를 시행하고 마취과 의사는 수술 전날이나 혹은 늦게는 수술 당일 환자를 검진하는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예외는 있을 것이다.     


 앞의 이상적인 시스템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수술 전 마취 평가를 수행할 외래 장소가 필요하고 지금 우리의 근무 형태처럼 주중에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술실에 갇혀 마취 업무를 봐야 하는 상황에서는 이런 외래에 나와 환자를 만날 시간을 만드는 것도 큰일 이리라.    


 현실과 이상에는 항상 틈이 존재하는 법이라서 현재는 마취과 의사가 자신이 마취할 환자를 파악하는 정보는 외과 파트에서 외래나 병실에서 기록한 의무 기록과 수술 전날이나 수술 당일 주로 전공의가 방문하여 환자를 검진하면서 파악하다 보니 간혹 환자의 중요한 사항이 누락되는 것이 현실이라 하겠다. 그러나 아무리 전문의가 환자를 직접 방문하여 검진한다고 해도 환자의 모든 건강 상태를 파악할 수가 없다. 혹 과학이 더욱더 발전하여 지금처럼 컴퓨터 단층 촬영술 (computed tomography)이나 자가 공명 촬영술 (Magnetic resonance image), 최근의 PET 스캔 등 여러 가지 촬영술을 시행해야 하는 것이 아닌 한 가지 촬영술로 모든 환자의 질병,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는 기술이 발명된다면 환자도 불편함이 줄고 의사도 좋을 텐데... 아마도 조만간 이루어질 꿈이라 믿는다.    

 

 환자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질병이 수술 전 파악되지 않는 경우, 때로는 마취과 의사와 환자 모두 고생길에 들어서는 경우가 있다. 이번 환자의 경우가 그러했는데 마취 중에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는 환자들을 많이 보아왔으나 대부분은 예상이 되었기에 당황하지는 않았는데 이 분은 한마디로 나를 멍청한 의사로 전락시키셨다.    


 80이 넘으신 고령이신 할아버님께서 위암 수술이 예정되었고 고혈압과 천식 외에는 특별한 심각한 질환이 없으셨다. 수술실에 도착하여 마취 직전 측정한 수축기 혈압이 겨우 100 mmHg이었다. 나는 간혹 혈압약을 여러 가지로 복용하는 환자분들의 경우 오히려 혈압이 낮은 경우도 있기에 그런 예인가로 생각했다.     

 

 마취 유도를 하고 고령에 천식도 있으신 분이라 손목에 있는 동맥을 통해 직접 환자분의 혈압을 측정하기 위한 관을 전공의가 삽입하고 수술 내내 혈압을 측정하였다. 그런데 그 혈압의 파형이 기존의 환자분들의  혈압 파형과 약간 달랐으나 자동 혈압계의 측정 수치와 크게 다르지 않아 크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수술 중간에 약 3, 4번 혈압의 감소가 약간씩 있어 그럴 때마다 평소에 사용하는 혈압상승제를 아주 소량 사용하면 혈압이 정상 범위에 들어섰고 특별한 문제없이 수술이 진행되고 있었다. 복부나 흉부의 암 수술 경우 수술의 통증이 매우 심해 우리 병원에서는 경막 외 진통 법이라는 진통 방법을 사용하는 데 수술 후 통증 조절에 매우 효과적이다. 하지만 고령이거나 환자의 상태가 안 좋은 경우에는 이 진통 법으로 인해 혈압이 감소되는 경우가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고 하겠다. 이 할아버님에게도 이 진통 법이 사용되어 수술이 끝날 무렵 혈압의 감소가 보이기에 기존에 사용했던 혈압상승제를 사용하고 혈압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수술이 종료되고 회복실로 이송하고 혈압에 대해 주의 깊게 모니터를 하고 있었는데 점점 혈압의 감소가 보여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수축기 혈압이 70 mmHg까지 감소하는 것이 보였으나 환자분은 이런 상황에도 소변도 정상적으로 나오고 의식도 명료하시어 성함을 여쭈면 당황해 있는 나의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보시고 별 증상이 없었다.


 수술 부위의 출혈을 의심해 보아서 혈액 검사를 시행하였으나 수술 부위의 출혈을 의심할 만한 소견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환자의 혈압 감소에 당황하여 회복실 간호사에게 다른 혈압 상승제 준비를 부탁하고 약제를 고용량으로 투여하기 시작했으나 낮은 혈압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는 점점 손에 땀이 나면서 멍해짐을 느꼈다. 수축기 혈압이 결국은 50 mmHg까지 감소하는 증상을 보여 또 다른 혈압 상승제를 썼으나 심장 리듬만 이상해질 뿐 전혀 반응이 없었다. 당황한 나는 심장 내과 전문의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의심스러운 질환은 심근경색이었다. 심장 리듬도 심근경색으로 의심할 리듬으로 바뀌고 있었고 나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의사로서 환자의 상태를 항상 예측할 수 있을 때에만 그에 대한 적절한 치료도 하는 법인데... 이 환자분은 나의 예측 범위에서 멀어져 가고만 있었다.     


 심장 내과 선생님께서 급히 오셔서 심장 초음파를 검사해 주셨는데 심장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셨다. 나는 한시름이 놓인 듯했지만 그럼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인지, 환자분의 혈압은 왜 감소가 되어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심장 내과 선생님께서 우리가 지금까지 혈압을 측정했던 팔의 반대쪽을 만져보시더니 그 팔의 혈압은 아주 높게 느껴지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혈압의 측정 위치를 바꾸니 아풀싸! 지금까지 혈압을 측정했던 팔에서는 수축기 혈압이 50 mmHg였는데 반대쪽은 100 mmHg가 넘게 측정되는 것이었다. 결국, 이 환자분은 양쪽 팔의 혈압이 심하게는 70, 적게는 40 mmHg가 차이가 나는 분이었다. 그러니 혈압이 실질적으로 그렇게 떨어진 적이 없었는데 혈압상승제를 계속 투여하니 심장 리듬의 모양새가 바뀌어 심근경색처럼 보였던 것이었다.


 나는 일단은 가장 먼저 환자분께 마음속으로 감사를 드렸다. 내가 환자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엉뚱한 처치를 하고 있을 때 잘 견디어 준 환자분의 심장에도 감사드렸다.    


 나중에 환자분이 수술에서 어느 정도 회복되신 후 환자분의 혈관 상태에 대해 검사를 시행하였는데 할아버님의 동맥경화증이 심각할 정도로 진행되어 좌측의 팔로 가는 동맥은 거의 막혀 있었고 양쪽 하지로 가는 혈관들도 모두 많이 막혀 혈압들이 모두 실제보다 많이 낮게 측정된다고 했다. 결국 할아버지는 암 수술 이후에도 이에 대한 철저한 관리와 검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보통 사지로 가는 혈관들에 동맥경화증이 심하게 온 경우 심장을 담당하는 관상동맥들도 동맥경화증이 같이 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할아버지 심장의 관상 동맥들만은 튼튼했는지 내가 쓸데없이 혈압상승제를 투여했을 때도 잘 견뎌 내고 있었다.    


 나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멍청했던 내 모습이 그려진다. 의사가 당황하면 절대 안 되는 급한 상황에서 나는 당황보다는 멍한 상태로 무언가를 믿고 있었던 것 같다. 할아버님을 딱히 뭐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으나 혈압의 숫자만큼 나빠보이지 않았기에... 아마도 할아버지가 증상이 없고 할아버지의 소변량이 줄어들지 않았다는 사실에 의존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순간에도, 할아버지가 좋아질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데 이런 말이 적용되는 것인지... 그 날, 그 환자분을 생각하면 나의 멍청함에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단 한 번만이라도 반대쪽 혈압을 측정할 생각을 못 한 의사의 멍청함에 환자 분만 고생시켜 드린 꼴이니... 이 글을 읽으신 선생님들은 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면 꼭 반대쪽 팔에서도 혈압을 측정해 보시길 부탁드린다.    


  2018년 한미 사진미술관에서 ‘unseen’이라는 타이틀의 사진전이 열렸다. 자비에 루케지라는 작가의 사진전으로 이 예술가는 수많은 명화들에 의학적으로 사용하는 x선을 조사해서 그 명화에 숨겨진 비밀을 밝혀내는 작품 활동을 해왔다. 그중 사실주의 화가였던 구스타브 쿠르베의 '부상당한 남자'라는 작품을 x선 조사를 해보니 부상당한 남자의 표정이 고통보다는 평온한 모습인 것의 내막이 밝혀졌다. 처음에 이 그림을 시작할 때 작가는 여인을 안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였다가 그로부터 10여 년 후 그 여인과 헤어진 후에 연인의 모습을 지우고 가슴에 피를 흘리는 그림으로 다시 그렸다고 한다. 자비에 루케지의 작품 활동을 통해 지워진 여인의 모습이 드러나고 나서야 그 부상자의 표정의 납득이 된 것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바라볼 때 제대로 바라본다는 것, 편견 없이 본다는 것,  진실을 알아내는 것이 정말로 어려울 수 있다는 생각을 나이가 들수록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제목: L'homme blessē - Wounded man(부상당한 남자라는 구스타브 쿠르베 작품을 x-ray로 투사, 2000, 자비에 루케지 작품)    


 자비에 루케지는 피카소,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유명한 화가의 그림에   x-ray를 조사한 후 나타나는 무수한 3차원의 입체적 레이어를 찾아내어 명화 속에 숨어 있는 이야기들을 찾아내는 것으로 알려진 프랑스 작가이다. 구스타브 쿠르베의 원작품에서 부상당한 남자가 평온한 표정인 이유가 원래는 쿠르베가 사랑하는 여인을 안고 있는 자화상을 그린 것을 그녀와 헤어진 후 여인만 지웠기 때문으로, 루케지가 숨어 있는 그녀를 찾아낸 셈이다. 출처: X-lucche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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