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그리고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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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와 B는 한파가 몰아친 거리에 서서, 청춘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한탄하듯 한참을 내뱉었다.
한참을 시대에 대한 폭력과 슬픔들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반복하던,
A와 B는 이내 이야기를 멈추었다.
코 끝을 찡하게 만드는 추위 때문일지,
끝이 없이 반복되는 한탄이 지루해서일지,
시계추의 압박 때문일지 이유는 명확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A와 B는 포옹과 함께 다음을 기약하며 갑작스레 서로 자리를 떠났다.
A는 손이 시려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기 싫었지만,
막차시간 확인을 위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시간은 AM 01:31.
A의 집으로 가는 버스는 AM 1:20분이 막차다.
“하하 이런 멍청이…”
A는 중얼거리듯 혼잣말을 했다.
차는 이미 떠났고, 택시를 타고 귀가를 하기에는 비용이 부담스러운 거리로 이내 A는 포기했다.
불현듯 이전부터 “보자, 보자” 했던 선배나 친구들이 생각나 연락을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역시 “시간이 늦었다”였다.
A는 한참을 이리저리 연락하다,
문득 손발이 얼금장에 담긴 깍두기처럼 딱딱하고 차가워진 것을 느꼈다.
첫차 시간까지 시간은 꽤나 남아있었기 때문에 어디든 들어가야 했다.
영하로 떨어진 1월의 추위는 A의 본능을 움직여,
익숙한 곳으로 발길을 끌어당겼다.
바로 근처에 보이는 거대한 프랜차이즈 카페로 아무 생각 없이 발길을 옮겨, 주문하기 앞서 먼저 자리를 잡았다.
A가 밤샘 작업할 때 애용하던 24시간을 영업하는 3층짜리 커피숍이었다.
익숙하게 가방과 옷가지들을 벗어 의자에 걸쳐놓고, 카운터로 향한 A는 여지없이
아메리카노 아이스를 한잔을 주문했다.
맛도 없고, 향도 없지만 추위로 들어온 이 카페처럼, 본능에 가까운 습관적인 주문이었다.
그렇게 자리에 돌아온 A는 깍두기처럼 굳어있던 손발이 녹으면서 살짝 저려오는 것을 느꼈다.
전기 게임처럼 슬며시 퍼지는 찌릿함과 함께 행복한 감정들도 함께 퍼져갔다.
그 찌릿함이 오르가슴쯤이라도 되는 건지, A는 고양이처럼 몸을 쫙 펴고 잠시 그대로 있었다.
A는 정말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곤 행복함이 은은히 입가에 묻은 상태로,
가방에서 노트북과 각종 저장장치들을 꺼내어 테이블 위를 정리했다.
노트북의 전원을 넣고 켜지는 잠시에 시간 동안 행복하고 우수에 찬 두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A.
A의 시선은 한 남자에게 멈췄다.
어디에서나 볼법하지만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무언가 미묘하게 이질적인 남자
남자는 대충 30대 초반으로 보였고, 머리는 이발소에서 자른 듯한 짙은 검은색의 상고머리였는데.
운동으로 땀에 젖은 것인지 방금 머리를 감은 건지 알 수 없이 흠뻑 젖어 있어,
선인장처럼 이곳저곳이 삐죽삐죽 튀어나와 조금은 우스꽝스러웠다.
상의는 시장에서 어머님의 고쟁이를 파는 트럭에 한 귀퉁이에 걸려있을 법한 지퍼가 달린 검은색 등산 티셔츠였는데, 자세히 보니 위아래가 한 세트인 것처럼 보였다.
아니 어쩌면 확실히 한 세트인 것 같다고 A는 생각했다.
A의 시선이 멈춰있는 동안,
남자는 불현듯 무언가 생각이라도 난 듯, 미간을 찌푸린 체 성큼성큼 어딘가로 걸어갔다.
그 걸어가는 모양새가 마치 칭기스 칸이 전장을 누비는 모습처럼 당당하고 늠름해 보여
A는 한층 더 집중하여 바라보았다.
남자는 카페 한편에 잡동사니처럼 쌓여있는 책들을 심오한 눈으로 여러 권 꺼내어 들고,
또다시 늠름하게 걸어와 자신의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런 남자가 앉아있는 테이블 위는 온갖 소지품들과 책들로 정신없이 어질러 저 있었다.
방금 가져와 올려놓은 정리되지 않은 책 여덟 권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마른 나뭇가지들이 보이는 검정 봉투 몇 개와 나일론 재질의 구닥다리 힙색,
널브러진 이어폰과 스마트폰, 스프링 철이 박힌 연습장까지.
말 그대로 잡동사니.
A는 주변을 둘러보는 척하다, 다시 보기를 반복하며 남자를 관찰하다,
머릿속에 어떤 응축된 문장이 떠올랐다.
(奇妙-생김새 따위가 이상하고 묘하다)
그런 남자가 가져온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침이 '꼴깍' 넘어갈 정도의 긴박감이 느껴졌다.
책을 펼치는 모습부터 고개를 좌우로 절도 있게 흔들며 읽는 모습에
A는 정말로 침이 꿀꺽 삼켜졌다.
그런 기묘한 모습에 집중에 집중을 더할수록
A의 몸이 남자를 향해 당겨지는 것을 느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자신을 응시하는 A를 느낀 남자.
자연스럽게 책 읽기를 멈추고 A 쪽을 바라보았고, 잠시였지만 서로 눈이 마주쳤다.
A는 피하듯이 고개를 돌리며 몸을 의자에 퍽하고 빠르게 기대었다.
종전에 느낀 행복한 찌릿함과는 다른 통증 같은 찌릿함에 A는 몸을 웅크렸다.
A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보지 마라 당부하던 서랍장 위에 올려져 있던 비디오테이프가 떠올랐다.
그 비디오테이프에는 파란색 매직으로 영웅본색이라고 적혀있었다.
당시 대단한 인기를 누리던 영화였기에 A는 아버지의 당부를 저버리고 비디오를 재생시켰다.
하지만 그 비디오는 틴토 브라스 감독의 파프리카라는 영화였다.
성기마저 노출되는 무삭제 성인영화.
어린 A에게는 그것은 어떤 흥미나 흥분이 아닌 충격이었다.
A는 그때의 감정이 왜 갑자기 생각났는지에 대한 이유를 떠올리기보다는
못 볼 것을 본 듯이 놀랐다.
A가 놀란 이유는 마주친 남자와의 시선에서 느낀 남자의 감정들 때문이었다.
그것은 불쾌감과 함께 불안감, 두려움, 슬픔 같은 감정들이었는데,
A는 마치 자신이 남자의 행동을 동물원에 원숭이처럼 관람했다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남자는 그런 감정을 느끼는 A를 전혀 아랑곳없이 다시 과장된 행동으로 책을 읽어갔다.
하지만 그와는 다르게 A는 마치 도망이라도 치듯, 금세 자신이 머물던 테이블과 자리를 정리했다.
A는 정리를 마치자마자 쏜살같이 튀겨나가듯 카페 밖으로 나갔다.
카페에 들어오기 전 전화기를 붙잡고 서있던 그곳에 A는 다시 섰다.
이번에는 핸드폰이 아닌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고는 불을 놓았다.
'쒸익- 타닥- 타닥'
'쒸익- 타닥- 타닥'
A에게는 담배를 빨아올리는 소리와 타들어가는 뻘건 소리만이 들렸다.
담배를 다 태운 A는 꽁초를 담뱃갑에 집어넣고는,
불 켜진 카페의 창가를 바라보았다.
거리로 인해 남자의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아마도 남자는 아직 카페에 있을 거라고 A는 생각했다.
A는 담배를 하나 더 꺼내어 물고 불을 붙였다.
'쒸익- 타닥- 타닥'
'쒸익- 타닥- 타닥'
뿜어져 나오는 연기가 겨울의 공기만큼 무겁게 눈 앞을 가리면서 자연히 A는 눈을 찡그렸다.
A는 찡그린 그대로 남자의 눈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그의 행동도, 그의 그 눈빛은 정말 매칭이 되지 않았어.."
"그래, 기묘한 느낌인 것은 사실이지.."
"그런 그를 우스꽝스럽다며 바라보던 나도 역시 어쩌면..."
"그게... 결론인 건가... 우습군"
A는 무언가 결과에 도달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이번에는 담배를 길바닥에 투기했다.
아직은 해가 뜨기에는 먼 어둠의 시간.
A는 담배연기인지, 물안개인지 모를 뿌연 공간으로 천천히 걸어 어둠으로 사라졌다.
ONE DAY..
#01 무의미의 축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