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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비문 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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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o Choi Nov 17. 2017

이사 가는 날

비문

볕도 바람도 적당했다.

내달리는 차 안으로 가족들의 티 내지 않은 멋쩍은,

들뜬 감정들이 각자의 가슴으로 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가슴 가득 꾹꾹 채워져 터질 것 같은 설렘. 

터져버리진 않을까 하는 옅은 조바심에 창을 열었다.

그저 거기 있었기에 잘 몰랐던,

한강의 얼굴이 빛줄기와 함께 찬란한 미소로 출렁이고 있었다.


이삿짐을 대충 정리하니 꺼먼 밤의 곤함이 찾아왔다.

뻐근한 몸을 활처럼 켜며, 담배 한 개비를 물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무거운 담배 연기 사이로 보이는 하늘에는 가을의 달이 구름에 가려, 침침히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들숨에 타들어가는 날 선 소리와 함께 도심의 옅은 소음들이 섞여 귓가로 흐른다.

그게 뭐라고 마음이 뭉클해져, 눈물이 세나와 떨어졌다.


보통의 사람들은 한평생 몇 번의 이사를 하게 될까? 서너 번? 대여섯 번?

정확히 셈을 할 수는 없었지만, 우리 가족은 못해도 서른 차례 정도는 족히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도 익숙해져 버린 우리 가족의 이사는 사실 늘 도망에 가까웠다.

무심히 무거운 짐만 놓고 떠난 아버지의 자리는 온 가족의 삶을 짙누르고, 무너뜨렸다.

그런 이유로 가족들은 늘 기억 속에 사랑하는 풍경들로부터 덧없이 떠나야만 했었다.


지난 시절의 고통들이 이제는 기억의 창고로 처박힌 것만 같은.

그래서 눈물이 그리 세어 나와 떨어졌나 보다.


하여간 나도 궁상이네 싶었지만, 연신 가슴이 울렁여 기분이 알싸 해지는 것은 멈출 도리가 없었다.


아파트의 잠긴 옥상이 아니라, 언제든 오르고 내릴 수 있는 하늘을 마주한 옥상이 있는.

오래되어 낡았지만, 살아가던 이들의 훈기가 남아 따스한 기운이 차오르는.


누군가를 초대하고, 따뜻한 차를 내어주며 식탁에 앉아 소란히 떠드는 시간이 많아지는 요즘.

삶이 이토록 달았었구나 하는 마음. 애쁜 날들이다.


이 글을 읽어 내려온 당신에게도 삶의 건조함 중에도

그런 행복이 찾아와 쉴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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