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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비문 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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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o Choi Feb 06. 2017

#02 빈 잔

단편소설 그리고 사진

                                                             ONE DAY..

                                         #02 빈 잔

                                             ALL COPY AND ALL PHOTOGRAPH ARCO CHOI


인간은 뭐뭐-해라는 말은 처참하게, 빈 말이다.

        

찬바람에 얼굴이 붉어져서 곤란한 표정을 지었지만, 목적지의 훈기를 위안삼아 정갈하게 걸음을 옮겼다.

몸뚱이가 목적지의 훈기에 기대어 찬바람과 싸우는 동안에도 머릿속은 온통 그에 대한 생각으로 차오르고 있었다. 그는 누구인가. 그는……이라고 떠올리다, 갑자기 코끝에서 아슬한 격통이 이렀다.     


"에-취힛!"     


미로처럼 꼬인 골목 틈 사이에서 헤매던 찬바람 하나가 활시위를 떠난 활처럼 코끝을 때렸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한기의 활이 코끝을 스친 탓인지 생각하기를 그만두고 싶은 참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이내 그에 대한 생각을 멈추고, 훈기의 위안을 떠올리며 정갈하게 걸었다.     

정말 훈기 하나만을 떠올리며 걸었지만 길은 잃지 않았다. 아니지, 어쩌면 잃을 수 없다고 보아야 할지도 모를 테지 생각했다. 인생의 꽤 많은 자질구레한 일들이 이 골목을 시작으로, 끝으로. 피고, 지기를 반복했기 때문에 정말 눈 감고도 찾는 꼴이었다. 하지만 골목의 첫 풍경과 지금의 광경은 많이 달라졌고, 많은 사람들이 어딘가로 팔려가듯 떠나가고 쫓겨나갔으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 마치 부고처럼 말이야 하고 생각하다 첫 풍경들에 대한 기억들을 떠올렸다.     


애티를 벗어버리지 못했던, 어린 시절. 싸구려 필름 카메라를 소중히 꼭 쥐고 걷다 마주한 골목은 예뻤다. 주민들은 모르는 이방인들에게도 어여쁜 눈인사를 찡끗했고, 작은 상점가 안팎으로 한눈에 예술가임을 알 수 있을 그런 멋쟁이들이 가득했다. 그렇다고 우글거린다 할 만큼 많지는 않아 적당한 쉼을 찾기에도, 활기를 찾기에도 안성맞춤이었던 애쁜 골목이었다. 그런 골목을 필두로 대부분의 젊은 날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주변 지인들도 이 골목길 풍경을 기억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자그마하던 골목의 풍경과 사람들이 사라졌다.

꼭 외계인이 이 골목길의 애쁜 마음을 탐내다 결국 납치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공연한 상상이 들이찰 만큼 갑자기 사라졌다. 물론 외계인 따위보다는 조금 더 타당한 이유로 그랬겠지만, 아무튼 사라지는 속도는 엄청났다.

훈기를 떠올리며 도착지로 삼은 곳은 아직 남아있는 그 풍경 속 몇 안 되는 커피숍인데, 이곳도 얼마 안 가 곧 사라지게 되어 사장님은 마음이 답답하다고 했다.     


어둔 골목의 안위를 살피듯 거리를 비추고 있는 눈썹달 같은 커피숍의 등이 보였다. 등대처럼 길을 밝혀주는 등에 기뻐, 조금 더 속도를 냈다. 커피숍 현관에 도착해 신발에 묻은 회색 눈 덩이들을 탁탁 털어내고 들어갔다.

따뜻하다. 상상과 전현 다를 것 없이 완벽히 일치하는 훈기에 고양이처럼 몸을 배시시 꼬며 자리를 둘러보다, 마땅한 자리를 찾아 테이블 옆 바닥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멀건 미소를 띠곤 고개를 폭 숙여 인사하자 사장님은 편안한 미소로 화답했다.      


"사장님, 이르가체프 한잔 부탁드릴게요!"

"어-어, 그래. 밖이 많이, 춥지? 금방 내려줄게"

"그러게요, 사장님 감기 조심하세요"     


주문과 함께 단 마디 안부를 전하고 자리에 앉았다. 한파에 나오기를 꺼리는 걸까, 외계인이 무서운 걸까. 커피숍에는 사장님을 포함해 고작 세 명이 전부였지만, 싸늘한 느낌을 주지는 않았다. 기억을 조금 더듬어보면 이 커피숍은 늘 따뜻한 온도를 유지하며 계절을 무색하게 만들곤 했다. 어쩌면 외계인도, 달력의 숫자들도 이 커피숍만은 관통치 못한 채 의미를 상실당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녹음을 잔뜩 머금은 나무 같다"는 생각을 이따금씩 하고는 했다.     


언제나처럼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찬찬히 주변을 훑어본다. 맞은편에 앉아 있는 또래 남자와 눈이 마주쳐 서로 눈인사를 건넸다. 스타일이랄 것도 없는 평범한 옷차림의 남자는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듯이 볼이 뻘건 색으로 물들어 있었는데, 그 볼이 산모의 갈라진 손끝처럼 거칠어 보였다. 순간 만져보고 싶다는 미약한 충동이 일었지만 바닥에 내려놓은 가방으로 시선을 자연히 옮기며 충동을 억눌렀다.


가방 속에서 a4크기 노트와 은장 만년필 그리고 시집도 한 권 꺼내어 정사각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다. 그새 끓는 물이 곱게 갈린 원두 위를 때리는 소리가 등 뒤로 울렸다. 괜한 기분에 또다시 고양이처럼 배시시 몸을 꼬았다. 잠시 그렇게 배시시 몸을 꼬다, 테이블 위에 올려둔 노트를 펼쳤다. 잡다한 기록과 메모들을 쓱 훑어보다 새 페이지를 펼치고, 그 위에 만년필을 올려두었다. 그리고 두견새 울음처럼 등줄기를 치며 울리는 옅은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자연히 눈을 감으며 무언가를 떠올렸다. "커피는 지옥처럼 검고, 죽음처럼 진하며, 사랑처럼 달콤하다" 그리고 곧바로 이 글귀가 커피숍 화장실 벽에 적혀있다는 것이 떠올라 안온한 미소가 올라왔다. 잠시 당겨진 입 꼬리 그대로 있다, 금세 눈을 뜨고 차가운 입술로 만년필을 집었다. 그리고 시 같지도 않은 시를 적었다.     



불온한 상상 

    

너의 속삭임을 태워, 선잠에 오줌을 누고 싶어

순수한 너의 선지를 유치장에 가두고 싶어     


눈 가리고 알아 몰라하는 네 폭행에 데모하다 항거하고 싶어

토끼의 달을 무너뜨리는 네 몽상에 붉은 기를 꼽고 싶어     


삼수 사수 고수가 되어버린 내 참을성을 똥통에 처박곤,

파란 백팩을 멘 회사원이 되어 퇴근하고 싶어     


갈라진 틈 사이로 가느다란 엿을 들어,

네 흔들리는 동공을 향해 카메라로 난도질을 하고 싶어     


사라진 흔적에 황홀한 몽정을

사라진 형태로 광기의 축제를     



이중인격일까 싶을 만큼 빠른 전환으로 끔찍한 시 같지도 않은 시를 갈겼지만, 전혀 이상한 기분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이상하다고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이 괴팍함은 두견새 울음으로 떨어지는 커피 내리는 소리 때문일까, 갑자기 다시 떠오른 그에 대한 생각 때문일까. 지금쯤이면 건너편 저 남자처럼 뻘건 색으로 갈라져 있을까 하고 두 손으로 얼굴을 쓰다듬었지만, 실망스러운 매끄러움에 금방 그만두었다.      


그. 그는 어떤 사람인가. 사실은 잘 모르지만 누구도 알 수 있을 그런 사람. 그렇지만 결코 가까워지고는 싶지 않을, 그럼에도 은연중에 흔적을 남겨 곤란한 사람. 불행할 것도 없는 시간에 불행할 것들을 골라 선물하는 사람. 빅토르 위고처럼 붓의 힘으로 정치 문제를 지배하겠다고 하고는, 술값을 지불하라고 째려보는 사람. 자신의 불우함을 맥주 값으로 외상 하는 사람. 핸드드립 커피에 흑설탕 4스푼을 타고, 1분 안에 다 마시는 사람. 약속이 퍽이나 대단하겠네 하는 건지, 번복으로 식사를 하는 사람……심……각……한……     


두견새 울음이 멈추며, 탁자 위로 유선형 토기 잔에 담긴 맑은 커피가 도착했고 생각은 자연히 멈췄다.      


"호오~ 이르가체프 나왔어요"

"앗, 감사합니다!"     


이중인격이 분명하다. 아니면 태세 전환이 가장 빠른 동물이 전생이었을 거다. 험담에 가까운 생각에 잠겼다가 금세 히죽거리며 씩씩한 모습으로 대답을 하다니, 분명하다. 그게 아니라도 괴팍한 것은 절대로 분명하다. 

커피가 담긴 토기 잔을 물을 떠먹는 모양으로 찬찬히 잡아들었다. 뜨겁다와 따뜻하다의 중간에서 뜨겁다로 조금 더 진행된 따뜨겁한 정도랄까. 그런 잔을 살며시 들어 콧가에 주변에 대고 증기를 아낌없이 빨아들였다. 날아가는 것이 아깝고, 아쉬워서 잠깐 음미하듯 들숨으로 당기다, 입안에 커피를 살짝 머금었다. 헹궈 내듯 혀를 이용해 입안을 가득 채워 헤집었다. 아주 적당한 신맛과 고소한 따뜨건 온도의 커피가 입안을 해 집다, 목구멍을 타고 사라졌다.      


몸이 또 배시시 하며 고양이의 그것처럼 꼬이다 당겨지다 내려앉았다. 그 안온한 감정들 사이로 소슬바람이 그리워져 몸을 일으켜 가게 밖으로 나가 담배를 하나 꺼내 물고 태운다. 타는 연기는 헤엄치듯이 물들듯이 퍼져나갔다. 가로등 빛과 만난 연기는 마치 달과 어우러진 검회색 구름같이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코트 주머니가 매너모드를 알리며 몇 차례 진동하다 멈췄지만, 굳이 꺼내보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연기의 흐름에 집중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이, 왠지 멋쩍게 느껴져 우습기도 했지만 흐르는 연기에 더 집중하기로 했다. 달에 걸린 검회색 구름처럼 흐르는 연기에 집중하다 손끝의 따끔함을 느꼈다. 담배가 다 타버렸다. 다 타버려 몽땅한 모양으로 들린 담배를 늪처럼 거먼 하수구 안으로 던져놓고,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차가운 공기 중에 머물다 들어온 가게가 더욱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자리에 찬찬히 앉아, 코트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문자를 확인했다.      


"너 어디야"

"못 갈 것 같았는데 갈 수 있을 것 같아. 위치 찍어줘"     


그다, 그의 문자였다. 다소. 아니. 매우. 딱딱한 문자가 두통 와 있었다. 당장 "그냥 오지 마"라고 답장하고 싶었지만 친절을 가장한 채, 주소를 보냈다. 다시 코트 주머니 속으로 떨어뜨리듯 휴대전화를 집어넣었다.      


미간이 찌그러진다. 아니. 찌그러트렸다.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커피 잔을 감싸듯이 손으로 안았지만, 금세 온기가 더디게 느껴진다. 서운해진다. 아니. 서운하다.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걸까, 피가 끓어오르는 걸까. 미간을 더 찌그러트려서 구겨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후회하고 말 거다. 찌그러트리면 결국 스스로 찌그러지는 것뿐이겠지만 분명히 사람들은 찌그러진 사람이라며 손가락질을 하고 말겠지. 아니야, 그럴 필요가 없을지도. 이미 잔뜩 찌그러져 있는 인간일지도. 아니면 태생적으로 찌그러진 상태로 태어난 인간일지도 모른다. 애당초 오락가락거리며 불온함과 안온함 사이로 줄 타는 꼴을 보면 찌그러진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이중인격적인 감정 선을 해명하기에는 좋은 변명. 아니. 훌륭해. 어쨌든 찌그러진 인간으로 손가락질받는다면. 그렇다면 애당초 찌그러진 나를 만들어낸 어머니와 아버지를 욕해야만 하는 걸까…….     


이런저런 괴랄한 상념에 젖어들다, 정말 찌그러져 있을지도 모를 얼굴을 양손으로 매만졌다. 멀쩡하다. 당연히 멀쩡할 테지만. 멀쩡함에 안도감을 느꼈다. 그 안도감이란 것이 마치. 항상 붙어 있던 귀를 만지고 "나는 귀가 있다"라며 기쁨의 발광을 떠는 괴랄한 꼴 같았다. 다시 커피 잔을 양손으로 떠올리듯 껴안듯, 곱게 들어. 식어 빠진 커피 한 모금을 목구멍에 밀어 넣었다. 모호한 온도의 커피가 목구멍을 타고 떨어지자 알싸한 향이 입안 전체에 퍼져나갔다. 종전과는 분명히 다른 향이다. 분명히 그것은 사실일 것이다. 식었으니까. 

또다시 코트 주머니가 휴대전화의 떨림을 전달한다. 단발의 떨림은 단 하나의 문자만이 도착했음을 확신시켰다. 코트 주머니가 바쁘다.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문자를 확인했다.     


"어디야. 나 도착했는데 너 없는데"     


이게 무슨 말인가. 결코 이 카페 주변을 떠난 적이 없다. 분명히 카페 안에는 사장님과 벌건 얼굴의 남자 그리고 괴랄 한 이중인격자 단 세 명만이 존재할 뿐이다.      


“혹시……”     


불현듯 스치는 낯선 불안감에 몸을 벌떡 일으키며 카페 밖으로 이동하며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 익숙한 착신음이 몇 차례 귓가를 울리고, 이내 그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도착했다고? 나 계속 여기 있었는데?”

“없어”

“에. 그게 무슨. 혹시 주변에……”

“바로 앞에 편의점 하나 있네. 그게 다야”

“편의점?!”

“혹시……. 편의점 뒤에 호텔이 있니?”

“어. 호텔 하나 있네”

“아……”     


현기증이 아지랑이처럼 울렁이듯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잘못된 주소. 무성의하게 보낸 문자는 커피숍이 이사할 곳으로 미리 만들어진 곳. 이사하기 전까지는 2호점이자 분점인 셈인데. 그러니까 그에게 분점인 옆 동네의 주소를 가리켜, 엄한 곳으로 방치시킨 것이다.

휴대전화를 들지 않은, 빈손을 들어 차가워진 이마를 어루만졌다. 당장 식은땀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어지러움이 만져진다.      


“내가 잘못 왔나”     


그는 어지러운 감정을 정리하려는 듯, 단단한 어조로 말했다. 그의 말 한마디에 아스피린을 투약한 듯 번뜩하며 정신을 차려 대답했다.     


“아니. 아니. 내가 주소를 잘못 가르쳐 준 것 같아. 안에 들어가서 커피 하나 시켜놓을래?”

“음. 그래. 일단 들어가서 커피 시켜놓을게”

“어. 어. 그래. 최대한 빨리 이동할게. 미안”

“음. 그래. 들어가 있을게”     


짧은 통화가 끝났지만, 휴대전화는 그대로 손에 들려있었다. 스스로 만든 바보 같은 상황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와 나눈 잠깐의 통화가 주는 마음의 불안감과 불편함은 더 더욱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마치 불편함에 몸이 경직된 것 같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가야 하기 때문에. 그러기로 정했기 때문에. 이것은 강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몸을 움직여 카페 안으로 들어가 짐을 챙기고, 사장님께 인사를 드리고 가게 안을 나왔다. 카페 인근 골목길로 이동해 가방을 바닥에 내려둔 채, 코트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태웠다. 뒤이어 휴대전화로 그에게 보내준 위치와 주소로 거리를 확인했다. 걸어가기 어려운 거리다. 아니. 멀다. 택시를 타자. 스스로 만든 바보 같은 상황을 빠르게 모면하기 위해 큰길로 나가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님께 목적지를 설명했지만 전혀 알아들을 수 없다고 했다. 결국 정확한 주소를 알려주고 나서야 택시는 목적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택시가 움직였고 자연스럽게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도시와 밤이 아슬하게 흐르고 있었다. 누군가는 별일 없는 하루라고 칭할 이 하루가 불편하기 짝이 없다. 불안하기 짝이 없으며, 불온하기 짝이 없는 하루다. 미간이 찌그러진다. 찌그러진 미간에 소용돌이가 친다. 그 소용돌이 속으로 온몸의 흔적과 ‘나’라는 존재가 빨려 들어가, 변기 물처럼 어딘가로 떠내려간다면. 그것도 꽤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에 미간을 한껏 더 찌그러뜨려 본다. 혹시 전 세계 곳곳에서 미스터리하게 사라지는 실종 사건들이 사실은 미간의 소용돌이와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전혀 가능성이 없다. 하지만 만약에라도 가능하다면 그것만큼 괜찮은 실종도 없을 것이다. 거기다 또 만약에라도 이 소용돌이를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다면. 죽음의 필연으로부터 해방된 신인류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 속에 무수한 증명들은 모두 치명적인 오류를 범한 쓰레기가 되는 거다. 이로서 인류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괴테……등 위대한 칭호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거다.     


멍청하고 공연한 상상을 통해 불안한 마음에서 해방된 모습이 택시 차창으로 반사되어 비쳤다. 아슬하게 흐르는 도시와 밤이 꽤 괜찮아 보였다. 택시는 상관없이 금방 목적지에 도착했다. 요금을 지불하고 내려, 카페 앞에 섰다. 자그마한 서너 개의 창을 통해 그를 찾아보려 했지만 보이지 않았다. 담배를 한 대 더 피고 들어갈까. 말까 하며 잠시 기웃거리다. 커피숍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문을 열었다. 문이 무겁다. 정말로 무거운 문이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시아 밖 구석에 앉아 있는 그를 느꼈지만 아랑곳없이 분점의 사장님께 안녕하세요 하며 인사하고, 이르가체프를 한잔 부탁하고 뒤를 돌았다.     



‘그’다.     


“안녕”

“안녕”     


정말 ‘안녕’하고 ‘안녕’을 고하고 싶은 기분이 드는 첫마디를 시작으로 이런저런 별 감흥 없는 안부들이 오갔다. 그런 동안 그를 꼼꼼하게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시선을 한 군데 두지 못하고 부유하듯 꼼지락 거리고 있었다. 행색도 별반 다름이 없지만 조금 늙었다. 앳된 얼굴일랑 기억도 없지만, 확실히 조금 늙어 보이는 그. 그의 머리는 심하게 시꺼먼 색이었는데, 카페의 조명을 받은 부분이 둔탁하게 빛나 석유처럼 끈적였다. 추운 날씨 탓인지 패딩을 입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그의 머리칼처럼 둔탁하게 끈적이는 검은색이었다. 만약 그에게 자잘한 수염 따위가 자라 있었다면 중후한 중년의 남성으로 착각했을까. 아니. 분명히 중후한 중년 남성으로 착각해버려서 ‘그’를 찾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외모나 행색 따위로 그를 정의할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외모나 행색 따위가 그의 개성이라고 말하고 싶은 생각 역시 전혀 없다.     


“혹시. 맥주 마실 생각 없니”

“어? 맥주? 갑자기?”

“응. 맥주”     


놀란 척을 했나. 아니. 어이가 없었기 때문에 되물었다고 해야 맞나. 그래. 그게 맞다.     


“꼭, 맥주 라야 하나? 오랜만에 보는 건데, 그냥 이야기나 좀 하면 안 될까?”

“음. 그래. 뭐. 그래. 그냥. 내가 맥주를 마셔야 이야기를 좀 잘해서”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술기운은 악몽 같은 분위기들을 편집적으로 도려내 준다. 일면식 없는 관계에서도 영원을 약속하게 만들 만큼 술은 그렇다. 그렇지만 다가올 자정을 기점으로 그와의 관계는 ‘아는 사람’ 12주년이 된다. 12년간 단 한 번도 솔직한 그의 속사정을 들어본 일이 없다. 마치 모든 것을 비밀로 부쳐두길 원하던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가 떠오를 지경이었다.      


“그래. 요즘은 개인 작업은 하고 있어?”

“음. 아니. 그냥 계속 모작이네. 내 그림 그려야 하는데. 계속 모작만 해서 그런가. 뭘 그려야 할지 모르겠네”

“아……아쉽네. 네 그림 굉장히 좋은데. 그 특유의 느낌”

“그래. 네가 내 그림 참 좋아했지”     


피식 웃으며 과거를 되짚어 생각하며 중얼거리고 있는 그를 진심으로 동경했었다. 그의 A4 크기의 드로잉 북은 처음 본 그날부터 지금까지 ‘가장 훔치고 싶은 책’ 중 하나로. 만약에 훔칠 수 있다면. 셰익스피어의 ‘햄릿’ 원서냐, 그의 드로잉 북이냐 고민할 만큼 그랬다. 하지만 역시 그의 손끝 감각이 주는 동경은 실체적 관계에는 적용되지 못한 채. 아래로, 아래로 내려앉듯 가라앉아왔다.     


“맥주 마시지 않을래?”

“............. 아”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더 강렬하게 알게 되어버려서 참을 수가 없었다. 아니. 더 이상 참아서는 안 된다고 확신했다.     


“궁금한 게 있어”

“응. 뭔데”

“우리가 알게 된 지가 벌써 10년이 넘었잖아?”

“응. 그렇지”

“솔직히. 조금 불쾌하다는 느낌이야”

“어떤”

“나는 네가. 나를 만날 때, 단 한 번도 순수한 목적으로 만난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거든”

“무슨”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배설구가 아니라는 뜻이야”

“음”

“네가 맥주 먹자고 해서 찾고, 네가 커피 먹자고 해서 찾고, 네가 욕하고자 해서 찾는 배설구가 아니라고”

“아”

“알고 지내는 동안. 수도 없어. 네가 원하는 것을 내가 응하지 않는 날이면, 여지없이 단 칼에 연락을 차단했지. 그건 굉장히 불쾌한 일이야”

“음”

“몇 년 만에 만남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불쾌함을 이야기하기 위해 나온 건지도 모르겠다”

“몇 달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어? 뭐?”     


상상조차 못 한, 할 필요도 없을 답변에 불온한 기억이 떠올랐다. 유년기 기억 속에 남은. 개를 산채로 태우는 남자들의 탐욕스러운 눈동자. 상상조차 못 한 답변을 시작으로, 할 필요 없는 기억이 연쇄적으로 머리에 울리자. 미간은 소용돌이치듯 찌그러졌다. 당장에라도 미간의 소용돌이로 존재를 감추고, 사라지고 싶었지만. 아직. 혹은. 영원히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땐. 혼자 계속 울었어. 친한 친구도 온다고 하더니 바쁘다고 안 왔지. 그래서 더 울었던 것 같다. 그때”

“아. 그렇구나. 마음 안 좋았겠네. 미안. 괜한 이야기를 한 것 같다”

“아니야. 사실 나도 요즘. 그런 생각하곤 해”

“어떤?”

“네가 말한 그대로지. 관계에 대한. 내가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건 아니지만”

“무슨 일 있었어?”

“음. 아버지 장 치를 때 친구 일도 그렇고. 그림 그리는 사람들의 모임이 있는데, 그 안에서도 좀 일이 있었어”

“왜? 안 좋은 건가 보네?”

“음. 조금 친하게 지내던 오빠가 있었는데. 그 오빠가 그 모임에서 어떤 유부녀 언니를 좋아했거든. 근데. 막 좋아하는 마음을 어찌하질 못하고, 나랑 술 마시면서 이야기하고는 했는데. 나는 절대 안 된다고 했지”

“서로 좋아했나?”

“음. 그런가 보더라고. 모텔에 갔네. 어쩌네 하는 걸 보니까. 그런데, 내가 만류하니까. 나에게 폭언을 하더라고. 네가 뭘 아냐고, 무슨 년. 무슨 년. 하면서. 네가 뭘 안다고 말리냐고 쌍욕도 퍼붓고 말이야”

“베르테르 같다……”

“그리고 다른 언니들은 내 앞에서는 친절한 척하고 뒤에서는 내가, 이상하니 어쩌니. 욕을 하더라고. 예술가들이 순수하지 못하게 말이야. 그러면 안 되지. 앞에서 이야기를 해야지”     


조이스 캐럴 오츠가 ‘작가의 신념’이라는 저서를 통해 서술한 내용이 떠올랐다. 

[고전과 현대 작품 양쪽을 광범위하게 읽어야 한다. 이 기술의 역사 속에 푹 빠져보지 않은 작가는 ‘아마추어’, 즉 ‘창조적 노력의 95퍼센트가 열정뿐인 개인’으로 영영 남게 되기 때문.......(조이스 캐럴 오츠- 작가의 신념- 삶, 기술, 예술 중)]


조이스 캐럴 오츠의 모든 서술이 진리 일리 없다. 하지만 이 부분만은 극명하게, 사실이라 생각했다. 그의 서술에 의거해서 보자면, 무심함과 분노 사이로 웅얼거리는 순수하지 못하다고 비난하는 대상인 작가들은 진짜 예술가가 맞을까.     


“그 사람들은 창작을 하는 작가들이야? 아. 아니. 그 모임은 작가들의 모임이야?”

“음. 그냥. 이것저것 그리는 사람들이지. 캐리커처로 돈도 벌고 그래”

“창작을 하지 않는데도. ‘작가’라고 부르는 건가?”

“음”

“모작도 작품일 수 있어. 어떤 관념으로 재창조한다면 말이지. 그렇지만, 그냥 기술적인 카피만이 전부라면. 그들을 작가들이라고 지칭하는 게 맞나? 물론 이것도 관점의 차이이긴 하지만”

“음”     


이미. 그 작가들 어쩌고 하는 그룹의 의미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꼬집어 정리하고 싶었던 것 일까. 아니. 정리해야만 했다. 그러지 않는다면. 나의 정체성마저 흔들려 뽑힐 것 같았다. 그래서.      


“아무튼 나빠”     


그의 외마디 비명. 비난. 힐난과도 같은 부정. 다시 불온한 생각이 머릿속을 흔들었다.

탐욕스러운 눈동자로 개를 산채로 태우는 남자들. 생명선 끝자락에서 생존의 끝을 놓지 못하고 피울음으로 간청하는 개. 그 울음에도 남자들은 그을림에도 죽지 않는 개를 비웃는다.

그의 외마디는 정말 나를 그을린 개로 만드는 기분이었다. 자신이 무엇을 그리고 싶은지도 모르는 자들이, 무언가를 느껴 표현하고 있는 소위 ‘작가’들과 자신들을 동일 선상에 올려두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기도 했다.     


“그런데. 아버님 장례식에는 왜. 연락하지 않았어. 정신이 없었겠지만, 그런 날에는 불렀어야지”

“음. 그냥. 뭐”

“아마도 생각도 나지 않았겠지”

“음”

“너는 잘못이 전혀 없는데, 사람들이 다 잘못된 거라고 말하고 싶은 거야?”

“뭐. 꼭 그런다는 건 아니지만. 좀 그렇긴 하지”

“그래? 난 주변 사람들 마음도 조금은 이해가 가는데. 혹시, 그 사람들과 사적으로도 만났어?”

“그렇지. 가끔씩 이기는 하지만”

“만날 때, 외에는 연락을 했어?”

“음. 딱히 그런 건, 아닌 거 같네”

“그게 이유겠지. 네 뒤에서 욕할 수밖에 없는 이유”

“뭐가”

“나도. 그리고 그들도 너의 배 서구 따위가 아니니까. 한 번쯤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겠어? 내가 오른쪽에 있는데. 나를 제외한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왼쪽. 그러니까 나의 반대편에만 잔뜩 모여 있다면. 내가 머물러 있는 곳이 옳은가 하고 생각해볼 필요도 있지 않냐. 이거지”

“음. 그럴지도 모르지”

“아버님의 부고를 들은 상황에서. 이렇게 말하는 거. 도의적으로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 그렇지만, 나는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왔어”

“마지막?”

“그래. 마지막. 이렇게 말하면, 너는 또 돌아가서 나와 연결된 모든 것들을 차단해 버릴지도 모르지. 그래도 어쩔 수가 없어. 나도 많은 상처를 건넜고, 참았고, 버티면서 이 순간에 서있거든. 죽음의 향기를 몇 차례 느끼면서야 비로소, 느낀 것이.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어차피 모든 관계는 사라지고 무너진다는 거야”

“사라진다. 무너진다라”

“그래. 많은 관계들을 들이고, 보내고, 사랑하고, 저주하면서 깨닫게 된 거야. 두근두근 따위에 사랑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나를 구성하는 것에는 필연적으로 타인이 필요하고,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그들도 사랑할 수가 없어. 그래서 나는 조금 더 불편해지더라도 조금 더 무거워지기를 선택했고, 네가 그런 관계를 무너뜨리는 것이 불쾌해”

“음”

“내가 이러는 게, 너 역시 불쾌하겠지만. 너는 너만의 이야기를 할 뿐이지. 우리는 어쩌면 대화라는 것 자체를 한 적이 없을지도 몰라. 너는 너의 만족을 위해서 누군가 중에 나를 선택했을 뿐이라고 생각해. 늘 그렇게 생각했고 말이야”

“음.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했구나”     



그는. 감정 없는 로봇이 시를 읊조리는 듯. 나지막한 대답으로 입을 닫았다. 얼마간 가시 같은 정적들이 이어졌다. 당연한 시간이. 당연한 정적들이 찾아왔다. 역시. ‘미안하다’라는 말 따위를 기대했을 리가 없다. 오히려 기대했다면, 등 뒤에서 험담을 했다던 그들과 다름없는 사람이 되어, 그와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 신나게 험담을 했을 것이다. 해야 한다는 다짐이 단단해지면, 그 말은 어디에서건 구역질처럼 튀겨져 나올 것이기에. 좋았던. 그렇지 않았던. ‘그’와의 12년. 일말의 예의를 위한 선택이란 것이 뒤보다는 앞이었을 뿐이다.      

쉽사리 거둬지지 않고, 카페를 가득 메운. 가시처럼 뾰족한 시간들이 싫었을까. 한참을 조용히 정적을 고수하던 그가 이전보다 조금 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 왔다.     


“담배 태우니?”

“어. 그럼. 한 대 필래?”

“응. 그러자”     


그를 알게 된 때. 첫 담배를 태우게 된 때. 둘의 공통점은 스물이다. 그를 만나게 된 것도 스무 살. 담배를 태우게 된 때도. 딱 스무 살이다. 그 후로 나름 애연가. 보기에 따라 골초로 꾸준히 살아왔다. 안타깝게도 ‘그’에게 이 32살의 골초는 안중에도 없는 존재. 아닌가.

다행인가. 그럴지도. 아니. 그냥, 그렇다고.     


그는 불편한 듯 문을 열곤, 약간 뒤뚱대는 걸음으로 천천히 걸어 밖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유심한 눈으로. 천천히 따라가며, 함께 카페 앞 공터에 도착했다.


“담배 하나만 줄래?”

“어? 어. 그래. 여기”

“고마워”     


몇 개비의 담배를 함께 나누어 피며, 고작 몇 마디의 말들이 영양가 없이 이어졌다. 표정 없는 가면을 쓴 두 사람이 나누는 동요 없는 대화는 담배 몇 개비가 다 타들어가자. 여지없이 사그라졌다.      


“저기”

“응? 왜”

“나 그만 가야겠다. 시간이 좀 그러네”

“시간? 아. 그러네. 그래. 조심히 들어가”

“고마워. 네 이야기 맞는 거 같아”

“아냐. 내 말이 꼭 맞는다는 건 아니고. 다만”

“다만”

“잘 모르겠지만. 진짜가 되고 싶을 뿐이야”

“진짜라”

“응. 정말. 이 모든 것들이 매트릭스 일지도 모르지만. 그럼 어떻게 저럼 어떻겠어. 다만”

“다만”

“스스로 진짜라고 확신하도록 살고 싶어.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아”

“좋네. 그래. 고맙다. 가야겠다”

“그래. 조심히 들어가. 바닥 미끄러우니까 조심하고”

“그래. 고맙다”

“고맙긴. 잘 가”     


도처에 머물던 모든 바람들이 비난하듯 날카롭게 날아와 온 몸을 흔들었다. 기분 탓이겠지만. 뒤뚱거리며 시아를 벗어나고 있는 그의 옷자락은 흔들림이 없었다. 이따금씩 가로등 빛에 비쳐 번들거리는 그에게만은 바람마저 닿지 않는 그런. 말도 안 되는. 그의 떠나는 모습이 흐릿해질 즈음 카페 안으로 도망치듯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들이치는 바람 때문일까.


손끝에는 오묘한 저림과 한기가 묻어 있다. 그가 떠난 자리를 승- 훑어 바라보았지만, 당연히 그는 없다. 아무도 없는 검정 공간 속에 풍덩 빠진 기분에 구역질이 올라왔지만, 안간힘을 써 꾹 눌러 내리며 생각했다.     

‘그.’ 그는 누구인가.


그의 존재는 나에게 무엇인가.

그에게 나는 존재할까.

12년이라는 시간을 통틀어, 단 한 번도 웃어본 기억이 있는가.

없나. 없을까. 찾아볼까. 없는 것 같은데. 없어도 상관없나.

부질없나. 그런가. 에이. 그래도 12년인데. 아닌가. 그것도 상관없나.

부질없나. 그런가. 그럴지도. 아닐지도. 

근데. 오늘 잘한 게 맞나. 아닌가.


물음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라오다. 결론을 내리는 것조차 의미를 잃었다는 사실에 멈춰버렸다. 그리고 ‘사랑 없는 밤’이라는 문장 하나가 떠올랐다. 지독한 밤. 지독한 밤의 시작을 만든 가시로 뻗어 찌른 말. 부모의 죽음 앞에서 조차. 뻗어 찌른 검정말.

지독하게 짙었던. 지독하게 길었던. 지독한 밤. 바닥에 내려놓았던 가방에서 a4크기 노트를 꺼내 펴놓곤. 은장 만년필을 꺼내, 시 같지도 않은 시를 적기 시작했다.          


사랑 없는 밤으로 만든 눈먼 화원과

실체 없이 뜬 달의 연유를 구태여 입 떼지 않는다     


검정 펜을 찾다 집은, 빨강 펜과

자리 없이 견인된 흰 눈 색 노트의 연유도 구태여 입 떼지 않는다     


스도쿠에 환장한 안경 쓴 서류 가방과

은못에 귀 뚫리고 안경 쓴 책가방의 연유마저 구태여 입 떼지 않는다     


구태여

입 뗀

연유로

않는다                    



ONE DAY..

#02 빈 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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