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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iss Oct 02. 2020

고마움과 미안함 사이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큰 집에서 제사를 지내기 때문에

전을 부치는 일이 선호와 선택의 범주로 넘어왔음에도

엄마는 전을 부친다.

가족들을 먹이려고, 본인이 좋아해서 부치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양은 여전히 제사 때와 동일하다. 꼬박 4시간은 앉아 있어야 하는 양이다.


꾸역꾸역 우리들에게 싸주고도 늘 남는 전을 명절 때마다 붙이고 앉아 있으면

이거 누가 다 먹냐고 투정을 부리기도 하고

왜 일을 사서 하냐고 엄마에게 짜증을 내기도 한다.


전은 그나마 일 년에 두 번이다.

김치는 더 수시로 다툼의 소재가 된다.

요즘 누가 김치를 만들어 먹냐, 사 먹으면 되지.

사서 담는 배추값이 더 들겠다.

툴툴 대면서 이전에 받아 쉬어 비틀어진 옛 김치를, 아직 고춧가루만 묻히고 있는 쌩쌩한 새 배추와 교환한다.

엄마는 내가 다 먹지 못하고 남긴 김치를 해결하고 통을 씻어내는 일까지 더 얻어간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미안함 섞인 욕만 먹는 일이다.


한동안 외지에 있어 엄마의 김치를 먹지 못하는 날들이 있었다.

엄마에게 투덜댔던 일이 모두 해결되듯, 만드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고 돈도 어떤 면에서는 더 절약되는 사서 먹는 김치를 먹었다.

가끔 전이 생각날 때면 냉동 제품을 사서 데워 먹었다.

그런데 먹으면 먹을수록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가 벌이고 해결해야 하는 그 노동이 안쓰러워 미안함과 고마움에 날렸던 투정들이 또 미안하게

엄마가 만든 김치와 전이 먹고 싶었다.


여전히 갈등한다.

엄마의 노동과 나서도 성에 차지 않는 나의 미미한 도움이 미안하고 안쓰러워, 사 먹겠다는 빈 소리와

사실은 그 어떤 값비싼 김치와 전도 나의 마음을 채우지 못했다는 그리움 사이에서

우물쭈물한다.


먹고 싶어도 먹지 못하게 되었을 때 너무 많이 아파하지 않도록

진짜 맛있다고 엄마 고맙다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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