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1월 31일은 전 회사에서 마지막 근무일이었습니다. 그리고 회사에서 바로 제주도로 날아갔죠. 친구와 2월 1일 한라산 등반을 하기로 했었거든요. 아쉽게도 그날 비가 많이 와서 한라산 등반은 취소되었지만 사려니숲길을 한없이 걸었습니다. 한라만큼 저에게는 너무 기억에 남는 날이에요. 비는 쾅쾅 내리는데 옷도 다 버려가며(등산장비를 몽땅 빌릴 예정이었어서 저도 친구도 예쁘게 입고 신고 갔는데 말이죠) 오래도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주에 홀로 한라를 올랐었어요. 이 매거진의 첫 글을 보니 퇴사한 몇 달의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 둔 게 있네요(https://brunch.co.kr/@arichne/21, 깨알홍보). 그리고 지난 28일(화)에 다시 한라에 갔습니다.
21년 2월 10일에 한라를 올랐으니 꼬박 2년 만입니다. 원래 계획은 2월 2일이었는데 등산 예약을 못해서 좀 미뤄졌어요. 그때 설악을 갈까 하다가 서울에 있는 한 친구와 북한산 등산을 가볍게 하고, 시간을 늦춰 한라에 다시 도전하기로 했었거든요. 한 달을 더 열심히 준비해 친구들과 쉬는 날을 맞춰 신나게 한라를 다녀왔습니다.
한라산은 코로나19 대응 겸 자연보호 겸 해서 미리 예약을 해야 정산에 오를 수 있습니다. 성판악 쪽에서 사라오름까지만 다녀오시려면 예약을 안 해도 돼요. 매달 초에 다음 달 예약이 열리는데, 하루에 1,500명 정도 받는 것 같아요. 올라가는 코스가 2개인데 저는 관음사 코스를 적극 추천 합니다. 성판악 코스에 비해 험하고 시간이 1시간가량 더 걸리지만 마지막 1시간 반이 정말 아름답거든요. 성판악 코스에 비해 신청인원이 절반이니(500명) 미리 예약해셔야 합니다. 저는 이번 2월 28일 예약을 2월 1일에 한 것 같아요. 생각보다 등산을 즐기시는 인원이 많으니 한라산 등산을 계획하신다면 미리미리 예약해 두시는 걸 추천합니다. (등산 당일, 예약 시간 전까지 취소가 자유로워서 미리 걸어두시는 분들도 꽤 계신 것 같으니 일정을 빠르게 잡으시는 게 좋습니다)
27(월)에 퇴근 후 김포공항으로 가서 제주도에 저녁 9시 조금 넘어 도착했어요. 한라산 등산객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가 제주도에는 몇 곳 있는데, 저는 공항에서 가깝고 제가 지난번에도 이용했던 '그린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했습니다. 2인실, 3인실 등 일행들과 같이 머물 수 있는 방이 있고 등산장비도 잘 대여해 주셔서 기억이 좋았어요. 제주의 이런 게스트하우스들은 대부분 등산 간식(김밥, 물 등)과 새벽 셔틀(한라산 들머리까지), 등산 장비 대여(다양한 종류)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니 건강과 의지만 있으면 한라산은 생각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올 수 있습니다. 편의점에 들러 에너지바와 커피 등을 사고 친구들과 11시쯤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5시에 일어나 부지런히 준비하고 6시에 셔틀을 탄 뒤 6시 30분쯤 관음사 코스 들머리에 내렸습니다. 화장실도 다녀오고 짐도 정리하니 6시 50분쯤 등산을 시작해서 11시쯤 백록담에 도착했어요. 날이 너무 좋아서 백록담이 아주 시원하게 다 보였습니다. 정말 운이 좋았어요. 관음사 코스는 4~5시간쯤, 성판악 코스는 3~4시간쯤 백록담에 도착합니다. 1시간쯤 정상석과 사진 찍고 백록담을 둘러본 뒤 15시쯤 하산했습니다. 총 8시간이 걸렸고 다치지 않고 무사히 산행을 끝내 아주 기분이 좋았어요. 친구 두 명과 함께 갔는데 한 명은 저랑 자주 등산을 다니는 터라 걱정이 없었는데, 다른 한 친구는 제가 열심히 영업해서 간 거라 살짝 걱정했었거든요. 다행히 등산 스틱과 아이젠, 그리고 젊음 덕분에 아주 수월했습니다. 하산 후 택시를 타고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짐을 챙긴 뒤 이틀째 숙소인 라마다 호텔에 체크인했습니다. 공항과 가깝기도 하고, 한 번쯤 묵고 싶었어요. 호텔 사우나도 11,000원에 이용할 수 있었던 게 아주 컸습니다.
목욕 후 숙소에서 10분쯤 거리인 '태돈가'라는 돼지고깃집에 갔습니다. 제가 열심히 검색해서 찾은 곳인데 완벽에 완벽을 더한 곳이었어요. 보통 제주도에서는 흑돼지 근고기를 많이 생각하시겠지만 저는 살짝 가격이 아쉬울 때가 있더라고요. 이곳은 일반 고깃집이지만 일반 고깃집이 아니었습니다. 라마다호텔 근처에 다른 호텔들도 많은데 구도심 쪽에 묵으신다면 방문하시는 걸 강추드려요. 맛과 친절과 청결 등 어느 것 하나 훌륭하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하산을 빨리 한 덕인지 씻고, 저녁을 먹고, 숙소에 들어왔는데도 8시쯤이었어요. 아이스크림을 먹고 떠들다가 10시쯤 잠들어 다음날 9시쯤 일어났습니다.
돌아오는 비행기가 오후 1시쯤이라 아침 겸 점심으로 제가 가장 사랑하는 맥도날드를 먹었어요. 3월 1일은 비가 와서 짐을 가지고 이동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루만 늦었다면 한라에 가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에 비 오는 제주도 신났습니다. 가볍게 아침 겸 점심을 먹고 공항으로 간 뒤 돌아보니 집이었어요. 제주에서 김포공항까지 1시간이지만 김포공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데 1시간 20분쯤 걸렸습니다. 집에 와서 짐을 풀고, 아이젠과 등산화를 정리하고 청소를 한 뒤 누웠는데 다음날 출근 할 시간이었습니다. 여유와 바쁨으로 꽉 찬 제주였어요.
한라에 오르시기 위해 제일 먼저 할 일은 등산 예약을 하는 것입니다. 한라산 탐방 예약 시스템이라는 홈페이지에서 가능한데 두 코스에 각각 세 가지 시간대가 있어요. 한라는 정해신 시간까지 정상 아래의 대피소에 도착하지 못하면 백록담에 갈 수 없으니 제일 빠른 시간대로 예약해서 빠르게 정상에 오른 뒤 하산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중간에 날씨가 바뀌면 통제하기도 하는데, 이미 대피소를 통과했다면 오를 수 있기도 하니까 조금 부지런히 움직이시는 게 좋아요. 제주에 계신 기간이 길다면 렌트와 숙소를 따로 구하시는 것도 좋지만 한라에 오르는 게 주목적이시라면 그 전날은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하시는 게 좋습니다. 가격도 좋고 셔틀 등 서비스도 아주 편리해요.
제주는 연중 70% 정도 눈이나 비가 오거나 바람이 너무 세요. 백록담은 여러 기상요인 때문에 통제되는 경우가 많으니 한라에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항상 하셔야 합니다. 제주기상청이 중기예보를 해주는데, 저는 꾸준히 확인하며 걱정했어요. 걱정한다고 날씨가 바뀌지는 않는다는 게 함정입니다!
한라산 정상까지 8~10시간 정도 걸립니다. 등산 시작 후 11시 정도까지 정상 아래 대피소들에 도착해야 하는데 7시 전에 출발하시면 생각보다 쉬면서 올라도 넉넉해요. 한라는 쉼 없이 올라가고 쉼 없이 내려오는 산이라 적절한 체력과 장비, 의지만 있다면 생각보다는 오를만한 곳입니다. 겨울 한라-봄/가을 한라-여름 한라 순으로 추천드려요. 여름에는 생각보다 많이 더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