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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A Feb 04. 2022

내 청춘의 기록 열 권의 다이어리

청춘의 흔적을 찾아서


얼마 전, 종영한 SBS 드라마 ‘그해 우리는’을 보았다. 방송국 사람들에 의해 19살 그 여름을 강제 기록당한 전교 1등의 국연수와 전교 꼴찌의 최웅이 10년 뒤 29살이 되어 또다시 방송국 놈들(?)에 의해 서로 꼴도 보기 싫은 두 사람이 강제 소환되어 그해를 기록한다는 이야기이다.




다큐멘터리는 평범한 사람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그해 우리들' 중




이 드라마를 보니 나의 청춘도 다시 보기 해보고 싶어졌다. 찍어 줄 사람 없었던 나의 청춘은 다행히도 내가 기록한 열 권의 다이어리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나의 다이어리 사랑은 19살부터 시작된다. 꼼꼼함과는 거리가 멀어 잘 잊어먹고 잃어버리던 내가 슬기로운 고3 생활을 지내기 위해 스스로 내린 처방은 기록하기. 매달, 매주의 목표와 매일 할 일을 적어두었고 해 낼 때마다 빨간펜으로 슥슥 지워나갔다. 목표를 달성해 빨간펜으로 지운 날은 나름의 희열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날들은 파란 펜으로 수정과 수정을 더해갔던 것 같다. 사실 공부를 위해서 다이어리를 열심히 썼다기보다는... 이 다이어리 뒷면에는 친구들이 적어준 응원 메시지가 소중해 항상 함께했던 것 같다. "할 수 있다" "원하는 대학 꼭 가자" 등의 응원 메시지가 가득 적힌 이 다이어리는 고3 생활 내내 나를 지탱해 준 정신적 지주 같은 존재였다.



고3 다이어리와 함께한 고3 생활이 끝났고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매년 한 권의 다이어리를 사서 그날그날의 일정, 감정, 생각을 빼곡히 적기 시작했다. 다시 들춰본 다이어리 안에는 '청춘'이라는 단어 아래 오그라들고 미숙했던 흑역사 과거들이 적나라하게 남아 있었다. 과거 청산 겸, 미니멀 라이프 실천 겸 싹 버릴까도 생각했지만 또다시 이 다이어리들을 끌어안고 있다.




타과였던 영화과 수업을 들으며 받은 봉준호 감독님 싸인



미숙하고 날것의 상태였던 나의 20대 초반은 그래도 생기와 활력은 넘쳤던 것 같다. 세상 모든 새로운 것들에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우리 과 수업보다 타과 수업을 더 많이 들었었다. 다이어리를 보니 학점 인정이 안 되는 타과 수업은 청강을 해서라도 들었던 것 같다. 교류대학 수업을 신청해 우리 학교 옆 안암동 학교에 다니는 친구와 함께 그 학교 수업을 듣기도 했었고 심지어 다른 나라 학교에서는 뭘 배우는지 궁금해서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떠나기로 했다.





나 홀로 한국인이었던 School of drama.



어렵게 얻은 토플 점수와 우여곡절 끝에 교환학생으로 들어간 미국 대학. 들어만 가면 내 인생 꽃길일 줄 알았는데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처음으로 맛본 독립의 자유로움은 잠시, 말 안 통함의 고통, 내 인생의 첫 D 학점, 미국 사람들 특유의 개인주의적 성향과 문화를 깊숙이 알게 된 시간들이었다.



티나 교수님의 수업 1학기 | 2학기 assignment


그 속에서도 따뜻했던 시간들은 분명 존재했다. 대부분의 교수님들은 내가 영어를 못하는 외국인이라고 봐주지 않았다. 3학년 미국 학생들과 아주 동등하고 평등하게 평가하셨다. 때문에 D학점도 받아보고 학장님께 불려 가기도 했었다. 냉정하지만 어찌 보면 평등한 미국식 사고방식이다. 그 와중에 딱 한 분, 유리알처럼 투명 파란 눈동자에 잔물결 곱슬머리가 매력적인 금발의 Tina 교수님은 나를 천천히 지켜봐 주셨다. 부족한 언어로 인해 표현이 매끄럽진 않지만 내가 가진 독창적인 관점과 생각들 인정해주셨다. 티나 교수님은 1학기 수업에서 과제로 낸 페이퍼에 파란 펜으로 고칠 점들, 이해 안 되는 문장 등을 빼곡히 체크해주셨다. 애정 어린 피드백을 주시긴 했지만 평가는 냉정하신 분이라 1학기 수업의 학점은 C. 예상은 했지만 충격이 컸다. 티나 교수님께 받은 피드백을 모아보니 내가 무엇을 놓쳤는지 보이기 시작했다. 감을 잡은 2학기 수업에서는 A 학점을 받을 수 있었다. 티나 교수님이 안 계셨다면 나는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로 홀로 헤매다 돌아왔을지도 모른다. 미국에서도 늘 함께했던 나의 다이어리를 펼쳐보면 티나 교수님의 이야기가 남아있다. 그분의 따뜻하고 애정어린 피드백이 십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너무 감사하다.  








학업을 따라가기는 힘들었지만 미국에서의 생활은 즐거웠다. 외로울 틈이 없이 늘 주위에 친구들이 있었고 편견이나 경계가 없 나는 미국인 친구들, 교포 친구들, 유학생 친구들과 두루 친하게 지냈다. 방학이나 주말이 되면 철새처럼 미국 곳곳을 여행 다니기도 했다. 자유롭고 활기 넘치고 예술적 영감으로 가득 찬 미국에서의 생활은 나와 참 잘 맞았다.


학업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까지 비자기간이 2개월가량 남았다. 이 기간을 버리고 한국으로 돌아가긴 싫었다. 안 가본 서부 여행도 할 겸 인턴을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메일로 보내고 전화 인터뷰까지 마치고 나서 샌프란시스코와 엘에이 각각 두 곳의 기관에서 인턴 컨펌이 났다. 기간을 잘 맞춰보니 두 곳 다 경험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1년간 머물렀던 기숙사의 짐 들을 정리하고 처음 올 때 가져왔던 이민 가방 안에 딱 필요한 짐들만 챙겨 서부로 떠났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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