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생김새가 모두 다르듯이 사람들은 각자의 필체를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시원시원하게 글씨를 쓰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동글동글 귀여운 글씨체를 가지고 있다. 옛말에 ‘서여기인 (書如記人)’ 이라고 글씨가 곧 그 사람의 인격과 인품을 나타낸다는 말이 있다.
게다가 검사 출신 국내 최고 필적 전문가 구본진 작가님이 쓴 <필체를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라는 책에서는 필체를 보면 사람의 성격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운명까지 보인다고 한다. 독립 운동가의 글씨, 친일파의 글씨, 범죄자의 글씨를 분석하면 공통된 패턴이 있어 그 사람의 훗날 삶까지 예측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니, 관상학처럼 글씨 하나만 보아도 그 사람의 인생과 운명까지 보인다니! 결코 가볍게 대할 수 없는 글씨인 것이다.
글씨의 매력에 빠져 유치원 시절 다 떼고 30년 이상을 써온 너무도 익숙한 한글을 다시 배우고 있다.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글씨 쓰기는 하면 할수록 어렵고 재미있었다. 왜 그럴까?
글씨를 배우기 전 나의 글씨체는 동글동글 각 없이 완만하고 작았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참 개성이 없는 글씨체였다. 그런데 글씨에서 자꾸 내가 보였다. 둥글둥글 사람들과 잘 지내고 잘 맞춰주는 나를 닮은 것 같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 나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하기보다는 다수의 의견에 묻어가는 편이 여러모로 편했다.
글씨를 배우고 나서 갑자기 새로운 글씨와 마주하게 되었다. 강하고 힘 있고 시원한 서체. 분명 처음 만난 내 손에서 나온 글씨체인데 왠지 모르게 익숙하다. 내 안 깊숙한 곳 어디에선가 자리 잡고 있었던 뜨거운 열정을 가진 센 언니가 튀어나온 듯했다.
이 언니는 세다. 하고 싶은 것은 꼭 해야 하고 표현에 거침이 없고 남 눈치 안 보고 자기 인생을 사는 언니다. 멘탈도 강해서 웬만한 미풍에는 흔들리지 않는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나와 내면의 나 사이에는 분명한 괴리가 있었다. 내 안의 잠재되어 있었던, 또는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일지도 모르는 센 언니가 유혹하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고 싶지만 현실은 결코 그럴 수 없다. 그래도 글씨를 쓰며 이제야 조금씩 진정한 나를 알아가고 있으니 내 안의 목소리를 들어주면 나와 조금 더 친하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
글씨체가 바뀌었다고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변하진 않았다. 다만 글씨를 쓰며 내 안에 잠재되어있던 또 다른 나와 자주 만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글씨를 쓰며 나를 알아가고, 내가 원하는 방향의 삶을 찾아가고 있다. 어쩌면 글씨 하나에 인생이 바뀐다는 말을 철썩 같이 믿고 앞으로의 내 인생은 조금 더 나아졌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에 이렇게 글씨 쓰기에 필사적인 걸지도 모른다.
글씨를 배우면서 나는 내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가기로 했다.
혹시 나처럼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인생을 바꾸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적어도 날림, 흘림체는 지양하고 또박또박 성의껏 글씨를 써보는 것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글씨와 친해지다 보면 우리가 원하는 삶의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