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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 Jun 18. 2021

인생을 바꾸려면 글씨부터

동글, 납작, 시원시원

얼굴 생김새가 아니다.

글씨체를 표현한 말이다.


사람마다 생김새가 모두 다르듯이 사람들은 각자의 필체를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시원시원하게 글씨를 쓰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동글동글 귀여운 글씨체를 가지고 있다. 옛말에 ‘서여기인 (書如記人)’ 이라고 글씨가 곧 그 사람의 인격과 인품을 나타낸다는 말이 있다.


게다가 검사 출신 국내 최고 필적 전문가 구본진 작가님이 쓴 <필체를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라는 책에서는 필체를 보면 사람의 성격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운명까지 보인다고 한다. 독립 운동가의 글씨, 친일파의 글씨, 범죄자의 글씨를 분석하면 공통된 패턴이 있어 그 사람의 훗날 삶까지 예측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니, 관상학처럼 글씨 하나만 보아도 그 사람의 인생과 운명까지 보인다니! 결코 가볍게 대할 수 없는 글씨인 것이다.




글씨의 매력에 빠져 유치원 시절 다 떼고 30년 이상을 써온 너무도 익숙한 한글을 다시 배우고 있다.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글씨 쓰기는 하면 할수록 어렵고 재미있었다. 왜 그럴까?



글씨를 배우기 전 나의 글씨체는 동글동글 각 없이 완만하고 작았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참 개성이 없는 글씨체였다. 그런데 글씨에서 자꾸 내가 보였다. 둥글둥글 사람들과 잘 지내고 잘 맞춰주는 나를 닮은 것 같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 나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하기보다는 다수의 의견에 묻어가는 편이 여러모로 편했다.


글씨를 배우고 나서 갑자기 새로운 글씨와 마주하게 되었다. 강하고 힘 있고 시원한 서체. 분명 처음 만난 내 손에서 나온 글씨체인데 왠지 모르게 익숙하다. 내 안 깊숙한 곳 어디에선가 자리 잡고 있었던 뜨거운 열정을 가진 센 언니가 튀어나온 듯했다.

이 언니는 세다. 하고 싶은 것은 꼭 해야 하고 표현에 거침이 없고 남 눈치 안 보고 자기 인생을 사는 언니다. 멘탈도 강해서 웬만한 미풍에는 흔들리지 않는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나와 내면의 나 사이에는 분명한 괴리가 있었다. 내 안의 잠재되어 있었던, 또는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일지도 모르는 센 언니가 유혹하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고 싶지만 현실은 결코 그럴 수 없다. 그래도 글씨를 쓰며 이제야 조금씩 진정한 나를 알아가고 있으니 내 안의 목소리를 들어주면 나와 조금 더 친하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




글씨체가 바뀌었다고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변하진 않았다. 다만 글씨를 쓰며 내 안에 잠재되어있던 또 다른 나와 자주 만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글씨를 쓰며 나를 알아가고, 내가 원하는 방향의 삶을 찾아가고 있다. 어쩌면 글씨 하나에 인생이 바뀐다는 말을 철썩 같이 믿고 앞으로의 내 인생은 조금 더 나아졌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에 이렇게 글씨 쓰기에 필사적인 걸지도 모른다.


글씨를 배우면서 나는 내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가기로 했다.

혹시 나처럼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인생을 바꾸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적어도 날림, 흘림체는 지양하고 또박또박 성의껏 글씨를 써보는 것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글씨와 친해지다 보면 우리가 원하는 삶의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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