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캘리그라피를 한다고 했을 때, 나의 가족들과 지인들은 취미로 하나보다 하고 가볍게 여겼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진지해져 가는 나를 보며 다들 의아해하기 시작했다.
아니, 무슨 취미를 그렇게 오래 진지하게 해?
취미 아닌데...
그냥 취미로 가볍게 하고 있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전공을 하거나 학위를 받는 것도 아니라 딱히 뭐라 설명하기도 정의 내리기도 어려워 취미 아닌데...라는 말로 마무리를 지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인 문요한 작가님의 '오티움'이라는 책을 만났다.
오티움ótĭum
1. 여가
2. 은퇴 후 시간
3. 자신을 재창조하는 능동적 휴식
오티움은 라틴어로 '여가'를 뜻한다고 한다. 문요한 작가님은 여가를 넘어 '내적 기쁨을 주는 능동적 여가활동'이라고 정의한다.
그럼 도대체 취미와 오티움이 어떻게 다른 건데?
궁금증이 들 때 문요한 작가님은 취미와 다른 오티움의 다섯 가지 기준을 알려준다.
오티움의 다섯 가지 기준
1. 자기 목적적
활동 자체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 결과나 보상 때문에 기쁜 게 아니다.
2. '일상적'이다
오티움은 매일, 매주 혹은 최소 매달이라도 일상에서 즐기는 여가 활동을 말한다. 여행을 오티움이라고 하기 어려운 이유다.
3. '주도적'이다
스스로 주체가 되어 선택하고 즐기고 배우고 심화시켜 가는 것을 말한다.
4. '깊이'가 있다
오티움은 지속성과 깊이를 가지고 있다. 오티움이 기술, 전문 지식, 능동적 감상, 창조적 경험 등을 통해 깊이를 더해간다.
5. '긍정적 연쇄효과'가 있다
오티움은 그 활동만 기쁜 게 아니라 그 활동으로 인한 기쁨이 확산되어 삶과 관계에 활기가 생겨난다. 오티움은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사람들의 것이다
취미는 아닌데...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었던 그동안의 모든 나의 활동이 이 다섯 가지의 기준으로 명확하게 설명되었다. 나는 취미가 아니라 오티움 활동을 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티비를 보다가 우연히 삼성 노트북 광고를 보고 짧은 15초 광고에서 그것도 한순간이었던 글씨를 보고 반했다. 이런 글씨는 누가, 어떻게 쓰는 거지?라는 궁금증이 생겼고 캘리그라피에 대해 알아보고 배움을 결정했다. 이때가 오티움을 발견했던 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미 그보다도 전에 글씨에 대한 이끌림을 받았었다.
10년 전 미국 LA의 한 아트센터에서 인턴을 할 때 한국 예술가분들을 초청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한 서예가분이 서예 퍼포먼스를 하셨는데 그때 그 퍼포먼스가 인상에 남았던지 사진을 찍어두었다. 회화, 조각 등 다른 분야의 작가님도 계셨지만 미국에서 한글로 퍼포먼스를 펼친다는 것에 무의식 중에 강한 이끌림과 함께 자긍심을 느꼈던 것 같다.
그렇게 강한 이끌림에 이끌려 배움의 길을 걷게 된지 3년. 취미라기엔 너무 깊어졌고 캘리그라퍼로 활동하며 돈도 벌고 있으니 오티움 책에서 말하는 오티움의 성장이 시작된 것 같다.
오티움은 일종의 자기 치유제다. 오늘 하루 직장에서 사정없이 깨지고, 누군가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오티움이 있는 사람들은 오티움 활동을 통해 스스로 위로해나갈 수 있다.
<오티움> 문요한 p.171
마음이 끌리고 꾸준히 해온 활동이 있다면 그것이 오티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창작 테마 중 하나인 캘리그라피에서 오티움을 찾았지만 다른 누군가는 운동, 봉사, 영성, 음악 등 다른 테마 오티움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가 아닌 여러 개의 오티움을 발견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오티움이 필요한 이유는 내 삶을 나 스스로 행복하게 꾸리기 위해서다. 자발적으로 나의 기쁨을 위해 하는 활동, 오티움.
누군가 취미가 뭐예요라고 물었을 때 단순히 '취미'라는 단어로 설명하지 못할 만큼 애정을 가지고 꾸준히 해오는 활동이 있다면 이렇게 얘기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