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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선생 Nov 08. 2022

왜 살아야 하는지 묻는 당신에게

삶의 의미를 찾기 어려울 때  

삶의 의미를 찾기 어려울 때


    

예전에 인터넷 게시판에서 ‘삶이 지루한 영화 같다’는 글을 본 적 있다. 친구의 죽음을 겪은 어떤 이가 적은 글이었다. '결국 끝이 오는데 결과가 뻔한 지루한 영화를 중반까지 보고 있는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삶이 부질없고 덧없게 느껴진다는 이야기도 이어졌다. 이야기에 공감하는 댓글도 발견할 수 있었다. 

      

 예전의 나도 가끔 비슷한 생각에 빠져들 때가 있었다. ‘언제쯤 삶이라는 영화가 재미있어지려나’ 목 빠지게 재미있는 인생을 기다린 적도 있다. ‘끝까지 이번 생의 멋진 주인공이 되지 못할 것 같다’는 비관주의에 사로잡힌 기억도, 현실이 다큐멘터리 실사 영화에 가깝다고 생각한 시절도 있었다. 밤에 잠들 때마다 '제발 꿈에서라도 행복했으면 좋겠다'라고 마음속으로 빌 때였다.


 되돌아보니 이 생각은 결국 한 가지 물음으로 이어지고는 했다. '행복하지 않고 의미 없어 보이는 삶이라면 어째서 살아야 하는 걸까?’ 나는 희망차고, 재미있고 보람 있는 영화 속 주인공으로 살고 싶었다. 그런 인생이야말로 진정 의미 있는 삶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때때로 원하지 않는 장면이 툭툭 튀어나오는 영화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그런 영화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으며 인생을 살아야 하는 건지, 나도 가끔은 궁금해했다.        



<인생이여 만세>, 프리다 칼로


      

 프리다 칼로(Frida Kahlo de Rivera. 1907-1954). 멕시코의 코요아칸에서 유태계 독일인 아버지와 메스티소(스페인과 인디오의 혼혈) 사이에서 태어났다. 여섯 살에 소아마비로 오른쪽 다리가 불편해졌는데, 이 때문에 주변 친구들로부터 '나무다리 프리다'라는 놀림을 받은 적도 있다. 불운에도 불구하고 총명한 소녀는 의사라는 꿈을 키워갔다. 멕시코 최고의 명문인 국립 예비학교에 입학하며 해부학과 생물학 등에 관심을 기울였다. 


프리다 칼로의 생전 모습


1925년 18살이 되던 해, 프리다의 인생을 뒤흔들 사건이 일어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버스에 탄 그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버스와 전차가 부딪히며 벌어진 사고였다.


버스(1929, 프리다 칼로)


버스 앞으로 튕겨나간 소녀의 옆구리를, 강철로 된 손잡이 기둥이 관통했다. 척추와 골반을 뚫고 들어간 기둥은 몸 아래쪽으로 튀어나왔다. 오른발은 완전히 으스러졌고 왼쪽 어깨는 탈구되었다. 의사들은 그녀가 앞으로 평생 걸을 수 없을 거라 예측했다. 전신에 깁스를 한 18세의 칼로는 9개월간 침대에 누워있는 생활을 했다.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두 손뿐이었다.


 칼로의 부모는 딸이 누워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이젤을 마련해주었다. 침대의 지붕 밑면에는 전신 거울을 함께 달아둔 채였다. 어린 칼로는 자신이 그릴 수 있는 유일한 모델을 바라보며, 유일하게 할 수 있는 활동, 그림 그리기를 수행했다. 자화상 그리기는 이때부터 그의 운명이 되었다.


 다행히 수차례의 수술 덕분에 그는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후유증은 그를 평생 괴롭혔다. 고통이 이어지는 삶을 살게 되었으나, 그 사고를 계기로 칼로는 예술 활동이라는 새로운 길을 찾았다. 치료가 끝나고 그림에 대한 열정이 더욱 커질 때쯤, 칼로는 예술가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1886-1957)를 만나게 된다. 


디에고 리베라의 모습(좌)과 그가 멕시코의 역사를 그린 벽화의 모습(우)


당시 멕시코는 역사적으로 혼란한 시기를 맞고 있었다. 민중에게 이 상황을 알려주기 위해 벽화예술가들은 공공장소에 라틴 아메리카의 전통과 역사를 그리고는 했다.  만남 당시 디에고는 이미 멕시코를 대표하는 벽화예술가였다. 그는 칼로가 다니던 국립 예비학교의 볼리바르 강당 벽에 그림을 그렸는데, 이를 인연으로 두 사람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천재화가로 널리 알려져 있던 리베라는 프리다 칼로의 작품 세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칼로의 감각적인 관찰력, 폭발적인 에너지가 리베라를 사로잡았다.


 두 사람 사이에 싹튼 것은 예술가로서의 공감만이 아니었다. 사랑에 빠진 둘은 곧 연인이 되었고, 1929년 8월 부부가 된다. 프리다 칼로가 22세, 리베라가 43세 때의 일이었다. 리베라는 칼로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뿐만 아니라 정신세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사회 운동에 앞장서던 리베라와 함께 칼로는 공산당에 입당과 탈당을 했다.(이후 칼로는 1948년 다시 공산당에 입당한다)  


프리다와 디에고 리베라(프리다 칼로, 1931)

 


 그러나 이 예술가 부부의 생활은 결코 평온하지 않았다. 원래 여성 편력이 심했던 리베라는 외도를 계속했다. 손에 잡히지 않는 남편 때문에 프리다는 끊임없이 상실감과 슬픔을 맛보아야 했다. 그는 리베라를 만난 것을 두고 10대에 겪은 교통사고에 이은 ‘인생의 두 번째 대형사고’라 언급하기도 했다.


 프리다는 아이를 간절히 바랐으나 그 역시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교통사고의 후유증이 영향을 미쳐 수차례 유산을 경험했다. 급기야 리베라가 칼로의 여동생 크리스티나와 외도를 하며 그 충격으로 세 번째 유산을 했다. 칼로는 별거를 선언하고 1934년 뉴욕으로 향했다.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운명, 상실감, 고독감 속에서 칼로는 점점 더 그림 그리기에 열중하며 자신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 나갔고, 점차 '리베라의 아내'라는 타이틀을 벗어나 예술가로서의 입지를 키워간다.


 프리다가 활동하던 당시 멕시코에서는 과거 아즈텍 전통에 바탕을 두어 멕시코의 정체성을 되찾고자 시도하는 흐름이 있었다. 정치적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던 프리다 칼로의 작품 세계 역시 전통과 역사에 대한 시각을 품고 있었다. 칼로는 당시 멕시코의 민중미술과 전통 미술을 받아들이며 작품을 제작해나갔다.

 자화상 역시 그만의 시각을 보여준다. 남성의 시각에서 여성의 몸을 표현하는 관점을 벗어나, 프리다 칼로는 자신의 몸을 그리며 고통받는 한 인간의 실체를 드러냈다.


테우아나 차림의 자화상(프리다 칼로, 1940-1943) 멕시코의 전통 의상인 테우아나 복장은 자유를 상징하나, 한편으로 이마에 새겨진 얼굴을 통해 리베라의 영향력도 엿볼 수 있다


 이후 프리다 역시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와의 스캔들로 염문설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두 사람 사이는 악화일로를 걸었고, 1939년 디에고는 프리다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결국 두 사람은 헤어짐의 길로 들어섰지만, 1년 만에 재결합한다. 경제적으로 서로 독립한다는 조건 아래에서 이루어진 결합이었다. 재결합 이후 프리다는 회화 조각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작품 활동에도 열중했다. 


 평안한 시절이 잠시 이어지는 듯했으나 프리다의 건강은 점차 악화되었다. 그는 등과 오른쪽 다리의 통증이 계속되어 척추 수술을 거듭했고 쇠약해져 갔다. 1944년 작 <부서진 기둥> 그의 육체적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몸이 두 갈래로 갈라지고 철제 보정기를 착용한 화가의 모습은 고통이 관통한 삶을 그대로 드러낸다. 1940년대 말에는 혈액 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아 오른발이 썩기 시작했고, 1953년, 결국 다리 아랫부분을 절단했다.


부서진 기둥(프리다 칼로, 1944)


 고통과 수차례의 수술, 약물 속에서 화가는 침대에 이젤을 설치하고 누운 채 그림을 그렸다. 그의 최후가 다가온 것을 직감한 디에고와 친구들은 멕시코에서의 첫 개인전을 마련한다. 프리다는 침대에 누운 채 이 행사에 참석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1954년 7월 13일,  47세의 나이에 프리다 칼로는 삶을 마감한다. 화가는 죽음을 맞이하기 8일 전 유작을 남겼는데, 작품의 제목은 <Viva la vida>다.


<Viva La Vida>(프리다 칼로, 1954)

 

그림 속에는 멕시코 민중들이 사랑하는 과일인 수박이 놓여 있다. 수박은 다채로운 인생을 의미하듯 완전한 모양, 반으로 잘린 모양, 서 있는 모양 등 다양한 형태로 놓여 있다. (프리다의 인생 속 다양한 고통을 의미한다는 해석도 있다) 수박의 속살은 붉은색으로 가득 차 있다. 마치 생명을 품은 핏빛처럼 보이는, 수박의 단면 중 하나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쓰여 있다. “Viva la vida”.  인생이여 만세.


 프리다 칼로는 마지막 일기에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이라는 말을 남긴 바 있다. 죽음을 코앞에서 느낀 적 있고, 죽음에 비견할 만한 고통 속에서 살던 그였다.  그러나 고통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으로 화가는 그림을 그렸고,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방식을 통해 생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도 끝내 삶을 놓지 않고 끌고 간 생명력, 마지막까지 ‘인생이여 만세’를 외친 예술가의 투지를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프리다의 다음 말은 인상 깊게 다가온다.      


나는 아픈 것이 아니라 부서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한 살아있음이 행복하다.   

       




인생을 사랑하겠다는 결심



 몇 주전 독서모임을 하며 강남순 교수님의 <배움에 관하여>라는 책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이 책에서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다시 만났다.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칼로의 자화상들은 육체적 아픔이 가져다주는 처절한 절망과 고독은 물론, 그 아픔과 고독의 세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나‧세계’에 대한 절절한 갈망이나 희망까지 담고 있다. 이 두 세계는 모두 내게 각기 다른 ‘아픔들’을 전해온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 아픔들 속에 함몰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강렬한 생명의 긍정을 느끼게 한다.

이 삶과 생명에 대한 우리의 엄중한 과제, 그것은 그 어떤 아픔과 절망적 정황 속에서도 끝까지 우리가 부여잡고 있어야 할 ‘생명 긍정의 과제’이다. 그래서 결국 우리 각자의 살아감이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삶’이라는 것. 칼로가 그녀의 그 치열성을 통해서 내게 전하고 있는 강렬한 메시지이다.   
                                                  
    - 강남순, <배움에 관하여>(2017, 동녘), 193p     

 


 고백하건대 나 역시 가끔 인생이라는 영화를 그만보고 싶은 마음과 만난다. 이 마음이 어떤 지점에서 비롯된 것인지 나도 정확히 모른다. 확실한 건 최근 몇 년 사이 내가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삶에 대한 환멸감과 무력감에 자주 맞닥뜨리고, 그런 감정과 계속 싸워야 하는 종류의 인간이 되었다. 작은 트리거가 될 만한 사건이 있으면 비합리적인 알고리즘에 이끌려, ‘삶을 이어가고 싶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하는데 채 5분도 걸리지 않는다.(이 말도 안 되는 알고리즘을 얼른 풀어 없애고 싶지만, 솔직히 아직은 풀지 못했다)


 덕분에 거의 매일 선택의 기로에 놓인 기분을 느낀다. 삶을 껴안을 것인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삶을 놓고픈 마음속을 떠다닐 것인가. 어쩌면 앞으로 계속 두 가지 길 사이에서 마음의 싸움을 지속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확신한다. 허약한 마음속을 떠다녀도 결국에는 삶을 껴안는 내가 매번 이길 것이라고. 생의 거대한 의미나 이유를 찾아서는 아니다. (솔직히 그런 질문의 답을 나는 모르고, 영원히 모를 수도 있다) 이유는 그저 간단하다. 삶을 끝내 사랑하기로 결심했으니까. 살아 있는 작은 순간에 감사하기로 다짐했기 때문에. 가장 지루한 장면이라도, 삶의 최종 순간에는 추억으로 남을 거라 믿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인생이라는 지루한 영화를 그만 보고 싶은 마음과 만났다면, 그래도 상영관에 꿋꿋이 앉아 이 작품을 끝까지 보자고 말하고 싶다. 흥행에 실패한 영화라도, 지루한 장면으로 가득 채워진 영화라도 상관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곁에 앉아 있는 누군가에게 분명 의미 있는 작품일 테니까.  


 삶의 의미를 묻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지만, 정답을 찾는 것보다 삶을 사랑하는 결심이 우선순위일 것이다. 허망함과 무력감에 고꾸라지지 않기 위해 살아가기 위한 결심을 먼저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다.            


 나라 안의 커다란 사고로 황망함과 슬픔, 분노 같은 수많은 감정이 오고 가는 최근입니다. 많은 분들이 저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으실까 생각해요. 마음이 힘든 요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접속사를 되뇌는 하루하루를 보내시길 빌어요.  (오늘 글은 댓글을 닫아둡니다. 죄송하다는 말씀드립니다)


다음 글은 11월 22일(화)에 남깁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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