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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선생 Oct 06. 2020

누군가를 일으켜 세우는 마법의 말

사랑의 말보다 기대와 믿음의 말이 간절할 때가 있다 

사랑의 말보다 믿음의 말이 절실한 때가 있었다 


  교직이 적성에 맞지 않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사범대생 4학년이라면 모두가 거쳐야 하는 교육실습 때였다. 모두가 똑같은 교육실습생 처지일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뛰어난 친구들이 많았다. 어떤 친구들은 학원 강사 아르바이트 경험을 여러번 거쳐서 수업을 능숙하게 해냈다. 타고난 카리스마로 벌써부터 아이들의 이목을 끄는 수업을 하는 친구도 있었다.      

교생들은 수업을 한 다음 담당 현직 선생님들에게 수업과 학생지도에 대한 평가를 듣는다. 친구들 대부분이 수업에 대한 칭찬을 들었다. 고개가 절로 수그러들었다. 아, 교사라는 것도 적성에 맞아야 하겠구나. 나는 어쩌지. 난 교사가 적성에 맞지 않는구나. 난감한 기분이 들었다. 


 친구들과 다르게 나는 머뭇머뭇 교생으로서 수업을 해냈다.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내 수업을 보신 담당 선생님이 수업 평가를 내려주는 자리가 이어졌다. 교사 경력을 오랫동안 쌓으신 베테랑 선생님이셨다. 칭찬할 거리가 없는 내 수업을 선생님은 어떻게 평가할까. 떨리는 마음뿐이었다.


유랑 선생님은 수업 도입부에 학생에게 대답한 멘트를 보면 대범해 보였어요.
앞으로 보통이 아닌, 괜찮은 교사가 될 것 같은 가능성이 보이더라고요.     


 깜짝 놀랐다. 내 수업의 대부분이 별로였다는 사실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수업 시작 부분 중 단 1분 정도, 학생의 질문에 내가 자연스럽게 대답한 부분이 있었다. 선생님은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해주신 거였다. 물론 그 멘트 이후에는 수업의 부족함에 대한 지적이 쭉 이어졌지만 담당 선생님의 칭찬 멘트가 여전히 머릿속을 맴돌았다. 괜찮은 교사가 될 것이라니. 그렇다면 나에게도 좋은 교사가 될 만한 자질이 조금이라도 보이는 것일까? 가슴이 두근거렸다. 정작 교사가 되고 나서 좌충우돌하면서 당시의 그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도 했지만, 그 순간에는 담당 선생님의 한 마디가 고마웠다.   


  며칠 전 한 유튜브 강의를 우연히 보았다. 교육 멘토로 보이는 강사가 사춘기 아이를 둔 학부모들에게 강의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사춘기 아이들에게 그 무엇보다 부모의 믿음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에서 매일같이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실감하며 상처받는 중이라고 말했다. 겉으로 표현하지 않지만 아이들은 사실 부모의 믿음을 절실히 원한다는 말이 이어졌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힐까 두려워서 아이에게 '안된다, 안된다' 하지 말고, 차라리 한 번 크게 발등 찍히고 만다는 심정으로 아이를 계속 믿어주라는 것이 강의의 요지였다. 


 대학입시라는 틀 안에서 하는 이야기이기는 했지만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를 믿어주는 누군가의 말이 간절히 필요한 시기가 있다. 내가 학교에서 만난 대다수의 사춘기 아이들이 그랬다. 아이들은 아직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다. 되돌아보니 '너는 괜찮은 사람이야, 특별한 사람이야'라는 말이 간절한 사춘기 아이들이 많았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학 4학년 교육 실습 때의 나는 '너는 괜찮은 교사가 될 것이다'라는 말 한마디에 안심이 되었다. 임용고시를 준비할 때에는 '너는 반드시 합격할 것이다'라는 말을 누군가에게 듣는다면 큰 힘이 될 것 같았다. 원고 투고를 하기 위해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네 글이 썩 괜찮다'는 말을 누군가 한 명만 해주기를 원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나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에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의 결과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누군가의 기대와 믿음이 필요했다. 사랑의 말보다는 믿음의 말이 절실한 그런 때가 있었다.  



믿음이 기적을 불러온다,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장 레옹 제롬, 1890)    @ 출처: 위키아트 

 남성과 여성이 키스를 나누고 있다. 나체인 여성의 뒷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키스를 하기 위해 허리가 한껏 휘어 있는 그녀의 자세가 특이해 보인다. 두 사람의 옆에는 큐피드가 보인다. 큐피드가 화살을 쏘고 있다는 것은 두 사람이 사랑에 빠졌음을 암시한다. 그들의 주변에는 조각상들과 조각도구가 보인다. 작품의 배경이 조각가의 작업실임을 짐작할 수 있다.      


 프랑스 화가이자 조각가인 장 레옹 제롬(Jean-Leon Gerome.1824-1904)의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1890)라는 작품이다. 피그말리온은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로, 신화 시대에 살던 키프로스의 왕이자 조각가였다. 그는 현실에 있는 여성들을 좋아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고 있었다. 그러나 외로움이 깊어져 상아로 여인상을 조각하고 갈라테이아라는 이름을 조각상에 붙여준다. 그는 결국 완벽한 조각상을 짝사랑하기에 이른다.     

<피그말리온> (Edward Burne-JonesDate.1868 - 1869)  @출처 : 위키아트 

 열의를 다해 갈라테이아를 돌보지만 피그말리온은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갈라테이아와 비슷한 여성과 실제로 사랑에 빠지게 해달라고 애정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기도한다. 그의 간절한 기도를 효과를 발휘한다. 아프로디테는 피그말리온의 마음에 감명 받아 갈라테이아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준다. 갈라테이아는 결국 사람으로 변신하여 피그말리온과 사랑에 빠졌고, 두 사람은 해피엔딩을 맞는다.       


 제롬의 작품은 갈라테이아가 생명을 얻게 되는 순간을 그리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갈라테이아의 다리는 상체와 다르게 상아색이다. 생명을 얻으며 그녀의 상체는 이미 사람의 형상을 얻었지만 하체는 아직 조각대에 고정되어 있다. 그림 속에서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는 사랑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갈라테이아의 적극적인 자세는 사랑의 기쁨을 상징한다.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1890, 장 레옹 제롬)  이 작품은 갈라테이아의 앞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출처: 위키아트 

 피그말리온의 흥미로운 일화는 심리학과 교육학에 중요한 현상으로 이름을 남겼다. 이를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라 부른다. 피그말리온 효과는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하고 긍정적 기대를 가지면 결국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만큼 긍정적 기대와 암시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비슷한 이야기로 자기 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라는 것이 있다. 사회학자 윌리엄 토마스가 이야기한 개념으로, 무엇인가에 대한 기대와 믿음을 가지면 실제 기대하는 방향으로 행동을 하게 되고 성취를 이룰 수 있음을 의미한다.      


 자기 충족적 예언의 효과를 하버드 대학 심리학 교수인 로버트 로젠탈은 실험을 통해 입증하기도 했다. 그는 한 초등학교 교사 집단에게 특정 아이들의 이름을 주고 이들의 지능지수가 높기 때문에 공부를 잘 할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주었다. 사실 무작위로 선정된 평범한 아이들이었다. 놀랍게도 8개월 후 이루어진 학년말 평가에서 실제 아이들의 성적은 상위권이 되었다.          


 

누군가를 일으켜 세우는 마법의 말

 

 피그말리온 효과는 기대와 칭찬, 격려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준다. 우리는 대부분 누군가의 믿음이 간절한 시기를 거쳐 보았기에,  이 효과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누구에게나 미래로 가는 타임머신이 필요할 때가 있다. 간절히 바라는 바가 있어서, 또는 나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힘든 날들을 누구든 한번쯤 만난다. 물론 우리는 누군가를 타임머신에 태워 그의 미래를 직접 눈으로 보여줄 수는 없다. 그러나 한 마디의 말로 그를 일으켜 세울 수 있다. '너는 해낼 수 있을 것이다'라는 믿음의 말은, '너의 미래는 밝으며 앞으로 더욱 괜찮아질 것이다'라는 확신의 말은 강력한 힘을 지닌다. 그 말의 현실 가능성을 논리적이나 객관적으로 따지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 나를 믿고 지지해주고 있다는 진심이 상대방에게는 가장 중요하다. 그 진심이 우리 옆의 누군가를 일으켜 세우고 계속 앞으로 나갈 수 있게 도와준다.    

       

  우리 주변에 지금 미래로 가는 타임머신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람에게 당신은 한 마디를 건넬 수 있다.- 물론 그 사람이 나 자신일수도 있다. 스스로에게 용기의 말을 건네는 것도 방법이다 - 당신은 괜찮은 사람이다. 당신은 해낼 수 있다. 이 마법의 말들이 당신 자신을, 또는 주변의 누군가를 진심으로 위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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