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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선생 Sep 01. 2020

대낮에
햄버거 가게에서 펑펑 울었다

초라한 마음에 담요를 덮어주는 순간 

대낮에 햄버거 가게에서 펑펑 운 이유 


며칠 전 유튜브 정글 속을 헤매다 아이유가 부른 '비밀의 화원'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2003년 이상은이 부른 노래를 리메이크한 곡이다. 내친 김에 원곡도 다시 감상해보았다. 이미 여러 번 들어본 노래였지만 가사를 제대로 들었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누구나 조금씩은 틀려 완벽한 사람은 없어

실수투성이고 외로운 나를 봐

난 다시 태어난 것만 같아 그대를 만나고부터

그대 나의 초라한 마음을 받아준 순간부터..." 


'초라한 마음을 받아준 순간'이라는 가사를 듣자마자 별안간 눈물이 났다. 친구 K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2004년 12월 대낮에 햄버거 가게에서 펑펑 울었다. 


1년간 준비한 임용시험을 치른 한 달 후였다. 그해 임용시험은 내가 공부하지 않은 부분 위주로 출제되었다. 고사를 전부 치르고 시험장을 나온 순간부터 어처구니가 없어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손목이 고장날만큼 미친 듯 공부했던 노력이 죄다 부정당했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끝없이 가라앉는 시기였다.   


 이처럼 우울한 시기를 지날 때 친구 K를 만났다. K는 유쾌하고 긍정적인 친구였다. 타지에 살아 평소 만나기 쉽지 않았기에 그 날의 만남은 특별했다. 망친 시험을 잊을 수 있을 만큼 좋았지만, 헤어질 시간 역시 돌아왔다. 그 날의 마지막 코스는 햄버거 가게였다. 햄버거를 시키고 자리에 앉았는데 눈물이 슬금슬금 나기 시작했다. K와의 즐거운 시간이 끝나가니 시험을 망친 현실이 갑작스레 떠오른 탓이었다. 


나는 눈가에 맺히는 눈물을 간신히 참으며 애써 밝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너랑 헤어질 시간이 되어서 아쉽네. 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K가 말했다.     

시험을 망친 건 네 잘못이 아니야.
네가 충분히 애썼다는 거 내가 알아.
   많이 힘들었지? 여기서 울어도 돼. 괜찮아.
    

별다른 내용의 말은 아니었다. 그 별다르지 않은 말에 울음이 밀려왔다. 대낮의 햄버거 가게, 울음이라는 행위가 도무지 걸맞지 않은 그 장소에서, 나는 펑펑 울었다. 


지금도 가끔 나는 그날을 기억한다. 만약 K가 다른 형식의 위로를 건넸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본다. 

”괜찮아. 그만 울어. 그까짓 일로 울고 그래. 시험 한번 망쳤으면 뭐 어때. 힘내! “

K가 이런 식의 말을 뱉었다면 그날의 나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아마도 울음을 애써 삼키고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겠지. 힘이 나지 않지만 씩씩한 척을 해댔을 것이다. 


다행히 그날 K는 울어도 된다고 이야기했다. 덕분에 나는 햄버거와 콜라를 앞에 놓아두고 펑펑 울 수 있었다.  내 초라한 마음을 누군가에게 이해받았다 느낀 특별한 날이었다. 나에게도 그런 위로를 받은 날이 있었다. 



허약하고 초라한 나를 안아주는 손길, <돌아온 탕자> 


돌아온 탕자(1668~1669. 렘브란트 판 레인)    @출처: 위키피디아 

<돌아온 탕자>는 빛의 화가로 불리는 렘브란트 판 레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이 말년에 제작한 작품이다. 작품의 주제는 신약성서 중 <루가복음>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옛날 한 아들이 아버지에게 자신의 몫만큼의 재산을 미리 달라 부탁한다. 아버지가 재물을 챙겨주자 그대로 아들은 객지로 떠난다. 방탕한 생활을 일삼으면서 재물이 다 없어지고 남의 집 더부살이를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를 도와주지 않는다. 아들은 한참의 방황을 끝내고서야 비로소 아버지를 떠올리고 집으로 돌아간다. 

아버지는 멀리서 오는 초라한 행색의 아들을 측은한 마음으로 바라보다 가까이 달려가 포옹한다. 하인에게 가장 좋은 옷을 꺼내 아들에게 입히고, 살찐 송아지를 잡아 아들에게 먹이라 주문한다. 


 렘브란트의 작품은 인간의 용서와 사랑, 화해와 치유를 보여준다. 아들을 감싸 안은 아버지의 얼굴은 밝은 빛으로 강조되어 있다. 그의 손은 아들의 어깨를 따뜻하게 둘러싸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아버지의 왼손은 핏줄이 서있는 남성적인 모습을 하고 있고 오른손은 상대적으로 여성의 손처럼 곱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로 다른 형태의 두 손을 통해 아버지의 사랑과 어머니의 사랑을 함께 나타내고자 했다는 해석이 존재한다.  

 

 아버지에게 안겨 있는 탕자의 머리는 마치 죄인처럼 삭발한 상태다. 옷은 누더기처럼 너덜너덜해져 있다. 새까만 발과 다 떨어져 가는 신발은 그동안 아들의 생활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려준다. 다행히도 그는 지금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 앞에 안겨 있다. 방황의 시기를 거쳤던 이에게도 구원의 시간이 온 것이다. 


종교적인 해석을 거치지 않더라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그림이다. 힘겨운 생활 끝에 초라하기 짝이 없는 행색을 하고 돌아온 아들을, 아버지는 그대로 감싸 안는다. 아들을 탓하거나 추궁하는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못마땅한 얼굴로 둘을 쳐다보고 있는 오른쪽 인물(탕자의 형, 즉 큰 아들로 추정된다)과 대비되는 아버지의 평온하고 따뜻한 표정이 인상적이다.  허약하고 초라한 순간, 밑바닥에 떨어진 상태의 나를 그대로 얼싸안아 주는 이가 나의 구원이 될 수 있음을 작품은 보여준다.  

       


초라한 마음에 담요를 덮어주는 순간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누군가의 초라한 모습, 밑바닥에 떨어진 마음을 내가 그대로 감싸 안은 적이 있었던가. 가족이나 친구, 지인들에게 무한한 위로를 건네본 적이 있었나. 타인의 감정을 때로는 나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얼싸안고 토닥여준 적이 얼마나 되었던가.  


 여섯 살 난 내 아이는 가끔 나에게 말한다.

 '나는 지금 섭섭해.‘ 

 '나는 화가 나'

  아이의 말에 나는 안도한다. 

 적어도 내가 '그깟 일로 섭섭해하니 ' '그까짓 일로 왜 울어 '라는 말을 일삼는 엄마가 아니었기에 아이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엄마가 자신의 감정을 억지로 막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기꺼이 마음을 꺼내놓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어른들은 보통 아이가 심약하게 자랄까 걱정되어 '그까짓 일로 울지 말라'는 말을 자주 한다. 네가 지금 울만큼 힘든 상황이 아님을 객관적으로 설명하려 들기도 한다. (특히 남자아이들이 이런 식의 이야기를 더욱 자주 듣는다. 아직도 남자는 일생에 세 번만 울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아직도 존재하기 때문이리라)  


 '그까짓'이라는 말을 지속적으로 듣는 아이는 울음을 내뱉기보다 삼키는 법을 먼저 배운다. 섭섭한 마음이나 슬픔의 눈물은 이제 아이에게 창피하고 초라한 것이 된다. 아이는 초라하고 구차하다 여기는 마음을 숨기기 시작한다. 때로는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내가 그랬다. 오랫동안 감정이 굳어있는 아이였다. 대학 시절까지 제대로 울어본 적이 없는, 무감각한 편에 속했다. 심리상담에서 '감정'을 털어놓아야 할 순간에 '생각'만 잔뜩 꺼내놓아 상담사에게 가벼운 핀잔을 들은 적도 있다. 그러나 K의 위로를 받은 후 나는 때때로 펑펑 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아이가 울음을 터트릴 때 가끔 물어본다. 지금 울고 있는 네 마음이 어떤지 물어본다. 아이는 마음을 꺼내놓는다. 제 마음을 설명할 수 있는 아이는 강하다. 초라한 마음까지 기꺼이 꺼내놓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구차하다는 이유 때문에 마음을 숨기지 않으니까. K에게 위로받았듯 내가 아이를 그대로 받아주고 위로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위로는 거창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초라한 마음을 판단하지 않고 그대로 보아주는 것, 실수투성이고 초라한 마음에 담요를 덮어주는 것이 진짜 위로 아닐까. '힘내'라는 가짜 긍정의 멘트보다, '이제 그만 울어'라는 멘탈 관리성 발언보다, '힘들었겠다'는 말이 더 효과적일 때가 있다. 지금 여기서 실컷 울어도 된다고 말해주는 것이 진정한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초라하고 허약한 마음에 서로가 담요를 덮어주는 순간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더이상 외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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