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 할머니

당신의 따스함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by ARIN

개 세 마리가 주변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짖어대며 달려들었다. 평소에 조그만 강아지도 무서워하는데 이건 커도 너무 큰 개가 사납게 짖어대며 달려드니 도망갈 수도 없고 벤치 위에 올라가 겁에 질린 채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켈레메그단 요새 공원에서 바라본 '세르비아' 베오그라드(Beograd)전경

'세르비아' 베오그라드(Beograd)까지 오면서 지칠 때로 지쳐 또 어디로 가야 할지, 방황의 끝은 대체 어디쯤 일지 고민에 빠져든 나에게 무섭게 이를 드러내고 ‘넌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방황의 끝은 죽음뿐이야!’라고 짖는 거 같았다. 아 낯선 땅에서 이렇게 죽는구나… 공포심에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날 위협했던 개

어디서 나타난 걸까?

할머니 한 분이 개들을 몰아내기 위해 막대기를 휘두르자 늑대 같던 개들은 순식간에 순한 양처럼 꼬리를 흔들며 사라졌다. 할머니는 내 손을 이끌고 켈레메그단 공원 입구에 있는 한 노점 의자에 앉히고 따뜻한 차를 내주었다. 차를 마셨는데도 여전히 긴장이 풀리지 않았다.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떠는 손을 바라보시던 할머니께서 등을 쓸어내리며 작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이제 괜찮다. 다 지나갔어. 앞으로 더 널 괴롭히는 그 무엇도 없을 거야. 앞으로 오늘 같은 일이 생기면 강하게 당당하게 맞서야 해. 넌 할 수 있어! 사는 게 그래… 강해져야 해"


따뜻한 손길과 눈빛이 그동안 고생했다고 아팠겠다고 위로해주시는 것 같아 난 속에 쌓아두었던 울음마저 쏟아내고서야 진정이 되었다.

어떤 경우에든 내 편이 돼주셨던 내 할머니가 생각났다. 산을 오르다 넘어져도 튀어나온 돌과 나무뿌리를 ‘땍지’하며 다친 내 다리를 어루만지시며 위로해주었다. 어려서 할머니도 부모님도 돌아가시고 기댈 곳 없이 혼자 고민하고 결정하고 책임지며 살아오며 갖았던 외로움이 방황에 시작이 아니었나 싶다.

이 먼 곳 베오그라드에서 낯선 여행자가 아닌 손녀처럼 다독여 주시는 할머니의 사랑을 느끼고서야 내 방황의 마침표를 찍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지금도 힘들고 우울할 때면 핑크 머리띠를 하시고 환하게 웃어 보이는 할머니 사진을 보며 용기를 내어본다.


베오그라드의 핑크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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