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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스 Sep 13. 2023

세 번의 자연주의 출산

황홀했던 출산의 기억


결혼 전부터 다니던 요가원은 첫 아이를 임신한 당시에도 빠지지 않고 다녔다. 요가 지도자이기도 했지만, 요가에 진심이었다. 당시 요가원 원장님께서 "자연주의 출산"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셨고, 신선했다. 관련된 글과 영상을 찾아보다가 거주지 인근의 조산원을 찾아갔다. 친정엄마 같은 조산사 두 분이 원장으로 계시는 조산원은 따뜻하고 아늑했다. 가정집처럼 생긴 조산원을 우리는(남편과 나) 자주 드나들었다. 조산원 원장님들은 남편보다 더 아이의 태동을 느끼며 교감해 주셨다. 어쩌면 사랑에 서툴렀던 나보다도 태중의 아이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더 자주 하신 것 같았다.


 당시 내 나이는 만 25세로 젊기도 했지만 건강했다. 하루에 요가를 4시간 할 정도로 체력은 왕성했으며 산달에도 복부에 근육이 만져진다는 조산원 원장님의 말씀도 기억난다. 임신과 출산은 질병이 아니라는 생각은 자연주의출산을 알기 전부터 해왔던 터라 산부인과는 잘 방문하지 않았다. 임신여부를 알기 위해, 성별 확인을 위해, 그리고 조산원에서 요구하는 검진 자료를 받기 위해 이렇게 세네 번 정도 다녀왔다. 정부에서 지원해 주는 바우처도 5만 원 미만으로 사용했다. 덕분에 보험적용이 되지 않아(자연분만이나 제왕절개에 비하여) 고가인 자연주의 출산 비용에 유용하게 잘 사용할 수 있었다. 자연주의출산은 산모가 원한다고 할 수 있는 출산이 아니다. 첫 번째로 산모가 건강해야 하며, 태중의 아이 또한 건강해야 가능하다. 다행히 나는 산달까지 건강에 이상이 없었으며,

태중의 아이 또한 무탈하게 자라나
자연주의 출산법을 택할 수 있었다.


 산달이 다가왔다. 불규칙적이었던 진통은 하루이틀 사이에 규칙적인 수축으로 다가왔다. 규칙적인 수축이 5분 간격일 때에는 새우잠 자세로 몸을 최대한 굽힌 채 누워만 있어야 했다. 너무 아파서 미간이 다 찌푸려지고 손발에도 온 힘이 전해져 쓸데없는 에너지가 낭비되었다. 새벽에는 아파서 눈물이 나오기도 했다. 무심한 남편은 그것도 모르고 코를 골며 태평하게 자고 있으니 얄밉게도 보였다. 수축이 더 잦아진 다음 날 낮에는 오늘 중으로 아이가 나올 것만 같았다. 첫 아이라 경험은 없지만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낮에는 수축이 규칙적이어도 밤처럼 온몸이 뒤틀리진 않았다. 남편을 출근시키고, 청소를 했다. 집을 나서게 되면 내 몸에서 떨어져 나온 핏덩이와 집으로 오게 될 것이 분명했기에 할 수 있는 집안일은 다 하려고 했다. 집안 곳곳을 다니며 묵은 먼지들을 쓸고 닦으며 새 생명을 맞을 준비를 했다.


 새벽보다 아프진 않았는데 수축 간격이 좁아진다. 규칙 적인 수축이 1분이 되었을 때 조산원 원장님께 말씀드렸다. 원장님은 ”이제 조산원으로 올 때“라고 말씀하셨다. 조산원까지는 운전해서 10분 정도 거리였고, 나는 진진통 중에 운전대를 잡았다.(지금 생각해 보면 좀 위험했던 상황 같기도 하다.) 신호에 걸려 정차 중일 때는 사이드 브레이크를 걸고 허리를 굽혀야 했다. 통증이 상당했다. 조산원에 도착해서는 처음으로 내진이라는 걸 했다. 원장님은 놀란 입과 눈을 번뜩이셨다. 내진결과 7cm가 열려있다며 잘 참고 왔다고 칭찬해 주셨다. 첫 출산일 경우 대개 회음부 입구가 1-2cm가 열려서 내원하는데 초산은 1cm당  한 시간 이상 걸리기도 하여 다시 돌려보내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물론 산부인과에서는 회음부 입구가 열리기 전부터 입원하여 제모와 관장 그리고 진통제와 촉진제를 투여받을 것이다. 조산원에서는 회음부 입구가 완전히 열릴 때까지 통증을 완화할 수 있는 호흡법과 운동을 원장님들께 도움을 받는다. 10cm가 열리게 되면 아이는 나온다고 하셨다.


 남편도 회사에서 부리나케 조산원으로 건너왔다. 친정엄마에게도 조산원에 도착하고 나서야 아이가 나올 것 같다며 연락을 했다. 어른들은 조산원의 자연주의출산을 반대했기에 10개월 동안 출산계획에 대하여 숨기고 있었다. 엄마는 역시나 조산원에 와서 경악을 금치 못한다. 분만의자나 침대도 없는 가정집 같은 조산원 환경에 조산사에게 캐묻는다. 여기서 아이를 낳는 것이냐, 아이는 누가 받는 것이냐... 원장님들은 3시간 후면 아이가 나올 것이니 볼일 보고 오시라고 말씀드렸고 엄마는 찜찜한 기색을 숨기지 않으시며 외출하셨다.


 숨 막히는 진통에 몇 번을 주저앉기도 했었다.


원장님들은 천천히 걷기, 이완 호흡법 그리고 통증을 완화시켜 주는 운동법을 알려주셨다. 가만히 누워있는 것보다 움직이면 통증도 덜하거니와 회음부가 완전히 열리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천천히 움직였다. 땅거미가 내려앉으니 원장님은 자연스러운 조명으로 조산원을 아늑하게 바꿔주셨다. 편안한 조산원의 환경은 이완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전신이 뒤틀리는 듯한 통증은
거센 폭풍처럼 왔다가 이내 잠잠해졌다.


진통이 나가고 나면 따뜻한 조산원 분위기에 평온한 감정이 스며들었다. 곧 만나게 될 작은 생명체는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원장님 두 분의 따뜻한 격려에 긴 진통 시간을 잘 버틸 수 있었다. 조산원의 거실에서 천천히 산책을 이어나가는데, 진통으로 주저앉게 되었다. 한 발자국도 걸을 수 없었으며, 일어설 수도 없는 통증이었다. 원장님이 경과를 보자며 내진을 하셨다. 입구가 다 열려서 이제 출산을 하면 되겠다고 하셨다. 통증이 바뀌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던 통증은 무언가 배출하고 싶은 통증으로 바뀌었다. 원장님이 힘주라고 말씀하지 않으셔도 저절로 하복부에 힘이 가해졌다. 그러나, 어려웠다. 배출하고 싶은데 아무리 힘을 줘도 배출이 되지 않는 하복부에 단단하고 큰 것이 낀 느낌이었다. 체력도 떨어져 그만두고 싶은데, 지속적으로 힘주기를 반복하기 방전될 참이었다. 열 번 정도 힘을 줬던 것 같았다.


 "못하겠어요!!"



결국 포기하고 싶은 내면의 말이 나와버렸다. 원장님은 거울로 내 다리 사이에 끼어있는 아이의 머리를 보여주셨다. 다시금 몇 차례 힘을 주었다. 인생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었다. 이 힘을 쓰고 나면 마치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힘을 주어 배출하고 나니 뜨거운 것이 왈칵 쏟아졌다. 10개월 동안 뱃속에 있던 그 생명체가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다. 원장님들은 아늑하게 깔린 이불로 나와 아이를 옮겨주셨고 태반이 나오기도 전에 아이를 내 가슴에 안겨주셨다. 그렇게 내가 잉태한 아이를 어떠한 의료행위 없이 내 손에 받았다. 가슴이 뜨겁게 벅차올랐다.


  서너시간 새우잠을 자면서 수유를 했다. 출산한 지 고작 몇 시간이 경과했다. 네 시간 만에 나는 일어나서 집으로 갈 채비를 마쳤다. 회복이 정말 빠른 자연주의 출산이기에 가능했다. 아이를 낳았으니 '2주 동안 몸조리를 받으며 누릴 수 있는 휴식을 취해야지'라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저 이 작은 생명체를 따뜻하게 품어주고 "잘" 키워보고 싶었다. 아이를 낳음과 동시에 진실된 모성애가 절로 생겨났다.



그렇게 나는 세 명의 아이를
자연주의로 출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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