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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스 Nov 13. 2023

일상을 요리하라

<날마다 그냥 쓰면 된다> 서평

 전형적인 이과생 사고를 가진 나에게 글쓰기는 문과생들의 전유물과 다름없었다. 또는 내향인들이 차마 하지 못하는 말들을 소심하게 적는 행위가 쓰기라 치부했다. 편협된 사고는 쓰기라는 창조적인 활동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도록 만들었다. 쓰기 뿐만이 아니었다. 읽기도 게을리했다.


 그랬던 내가 출산과 동시에 아이를 잘 키워보고자 육아 서적 한 권을 어렵게 읽었다. 그렇게 접한 한 권의 책은 두 권으로 늘어났고, 비독서가였던 내가 어느덧 서가에서 책 고르는 것을 무엇보다 좋아하게 되었다. 몇 년을 내리읽다 보니 처음 책을 접했을 때처럼 문득 쓰기도 하고 싶었다. 써봤자 일기지만 쓰기의 매력은 읽기와는 다른 맛이었다. 뜬구름 같은 생각들을 활자로 옮겨놓으면 정리되지 않았던 생각들이 개운하게 정리가 되기도 했다. 기쁠 때 썼던 일기는 그 기쁨이 배가 되었고 슬플 때 썼던 일기는 나를 위로해 줬다.

 

 쓰기가 요리라면 글감은 음식의 재료다. 냉장고가 비어있는 날에는 글감이 없어서 글이 단출하거나 잘 써지지 않는다. 쓰기를 하기 위해 일상에서 재료를 찾아본다. 유행하던 냉장고 파먹기처럼 비어있는 일상에도 골똘히 생각해 보면 재료들이 제법 나오기 마련이다. 요리는 같은 재료여도 누가 앞치마를 메느냐에 따라서 그 맛과 플레이팅이 달라지듯 글 또한 그렇다. 같은 재료여도 때론 다른 맛으로 글을 요리한다면 색다른 작품이 나올 수 있다.


 글은 나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활동이다. 매일은 아닐지라도 반복해서 자주 쓰다 보면 글의 리듬과 나만의 문체가 나오게 된다. 일기를 자주 쓰게 되면 반복되는 일상에 어쩌면 반복되는 일기를 써 내려가기도 한다. 그럴 때면 평범한 어느 것에 의미를 부여해 보라. 하루는 일상을 시간 단위로 나눠 나열해도 되고, 하루는 그날의 사색을 써 내려간다. 어느 날에는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했던 생각들과 거리의 풍경, 그리고 느끼는 감정들을 서술해도 멋진 일기가 될 것이다.


 에세이는 독자가 있는 일기와도 같다.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소재이지만 나만의 감정으로 잘 섞어야 한다. 누구나 쓸 수 있는 흔한 이야기일지라도 작가 특유의 문체가 어우러져 작가만의 세계를 보여줘야 한다. 독자들이 내 일상을 몰래 훔쳐보고 싶어 할 만큼 에세이는 평범함에서 벗어난 나만의 이야기와 소박한 재미가 있어야 한다. 어떤 현상을 보고 느낀 점을 서술하며 의미를 부여하고 감동을 선사하라. 독자와 다른 일상에서 에세이는 나만의 감정으로 공감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글을 써놓고 다시 보지 않는다면 성장하지 않는 쓰기의 반복이 될 것이다. 처음 의도와 같은 방향으로 글이 흐르는지 확인하는 것은 중요하다. 단어가 반복된다면 지루하지 않도록 유사어를 이용하여 문장에 신선함을 선사해야 한다. 단어가 모호하다면 분명한 단어로 더 또렷한 글을 만들어보라. 글의 첫인상은 영화의 도입부처럼 빠른 템포와 짧은 호흡의 문장이 좋다. 흥미로운 전개로 넘어갔다면 중언부언하지 않는지 살펴본다. 재미없게 했던 말을 또 하고 있다면 과감 없이 잘라버려라. 원석을 수백 번 다듬어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것처럼 쓰기를 마쳤다면 몇 번이고 글을 다듬어야 한다. 퇴고는 글 결을 결정짓는 중요한 작업이다.


  몇 년을 읽기만 하고 쓰지 않았다. 독후감을 쓰게 된 계기는 쓰기의 연습이었으리라. 완독이 재료가 되어 나만의 문체와 생각을 나열하다 보면 제법 먹을 만한 감상문이 나온다. 그 언젠간 글을 잘 다루는 일품요리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쓰기를 실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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