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원을 경영하라> 서평
30대 중반의 여성, 경력단절 아줌마, 집에서 노는 엄마. 나를 보는 타자의 시선을 가감 없이 나열해 봤다. 나름 열심히 산다고 아등바등 하지만 별다른 성과 없는 현실이다. 지금 무엇이든 새롭게 시작하려고 해도, 주저하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라는 변명이 나를 현실에 안주하게 만든다. 저자는 지금의 나보다 10년은 더 늦은 나이에 사업을 시작했다. 40대 중반에 시작한 일본과의 무역 사업에서 얻은 내공으로 국내에 균일가숍을 열었으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열정과 성실함으로 지금의 (주)아성 다이소 기업을 만들어냈다. 그에게 열정이란 물러날 곳이 없는 이의 초집중 같은 것이었다.
연일 치솟는 소비자물가지수에 소비자들은 허리띠를 졸라맨다. 김밥 한 줄에 4,000원, 짜장면 한 그릇에 8,000원인 시대에 살고 있다. 그만큼 천 원이란 화폐의 값어치는 떨어졌고, 소비자들에게 천 원짜리는 이제 동전처럼 자투리 취급을 받는다. 천 원이 유일하게 대접받을 수 있는 곳, 바로 다이소다. 다이소에만 가면 20년은 거슬러 올라간 듯 낮은 물가에 감탄을 자아낸다. 아무리 비싸도 5천 원을 넘지 않는 다이소의 균일 가격으로 다이소에서만큼은 얇은 지갑을 들춰가며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다이소에서는 마음껏 사치를 부려도 부담이 없다.
1997년 천 원으로 균일가를 맞춘 다이소는 26년이 지난 현재의 고물가 시대에도 천 원의 균일가를 고집한다. 원가도 그보다 높을 것 같은데 한 편으로는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에 품질에 대한 의구심을 품기도 한다. 전부 중국산일 것이라는 생각과 다르게 다이소의 국내 생산율은 70퍼센트 정도다. 국내에서 단가가 나오지 않는 경우에만 전 세계 어디서라도 제품을 공급받아 왔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팟을 개발할 때 아이팟을 물에 빠트린 후 이렇게 얘기했다. "공기방울만큼 부피를 더 줄여라." 스티브 잡스가 아이팟에서 공기방울을 빼서 아이팟의 부피를 더 줄인 것처럼 박정부 회장은 천 원에 맞추기 위해 단가의 거품을 빼고 또 뺀 것이다.
공장장이 절대 나올 수 없는 단가라며 한사코 거절할 때도 저자는 물량을 높이는 등 생산성을 올려서 단가를 맞춰달라고 끈질기게 거품을 뺐다. 대개는 물건을 만들어 놓고 최종 소비자 가격을 정하는 반면, 저자는 소비자 가격을 우선 정하고 거기에 맞는 단가를 찾아 지구 반대편까지 발품을 찾았다. 마치 냉장고에 코끼리를 집어넣는 격이다. 소비자가 진정한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속성만 남기고 원가를 높이는 불필요한 것은 전부 제거했다. 집중은 본질만 남기고 모두 덜어내는 것이다. 본질에만 몰두하고 집중했던 저자는 그의 운명을 바꿨고 균일가숍으로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승승장구하는 유통기업 같지만 다이소는 대나무의 모죽처럼 오랜 준비 기간이 있었다. 다이소의 모태 격인 '한일맨파워'의 무역 사업, 미국에서 공부한 유통구조와 상품개발 과정, 스페인에서 본 저가 상품의 소비패턴과 샘플 제품들, 중국에서 발품 팔던 생산라인들이 든든하게 뿌리를 뻗었던 것이다. 내실을 다진 대나무여도 비바람을 피해 갈 수는 없는 법. 대나무는 쓰러지지 않기 위해 마디를 만든다. 그 마디를 만드는 대나무는 상처와 시련, 그리고 좌절이겠지만 마디가 있어서 대나무의 성장은 지속될 수 있다.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많은 시련과 좌절을 대나무의 마디라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힘들었던 그 순간 우리는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의 회장임에도 저자는 회장실을 따로 만들지 않고 직원들과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최근 회장실을 따로 만들었지만 문은 항상 열어둔다. 저자는 아직도 전국 매장을 직접 둘러본다. 3조를 경영하는 기업가가 직접 현장에 가서 문제를 면밀히 살피고 전 세계 공장을 살핀다. 매일의 작은 변화가 큰 변화를 가져오고, 습관이 쌓여 운명이 된 것이다. 저자의 원자와 같은 작은 성실함이 저자의 운명을 바꿨다.
비싼 제품이 고장 나면 고쳐서 사용하지만 1,000원짜리 제품이 불량이면 쓰레기 취급한다. 불량품 1개는 회사 전체에 대한 신뢰를 무너트리는 일로 간주되기 때문에 품질을 더욱 높이고 꼼꼼한 검수에 더욱 신경 쓴다. 다이소 전국 어느 매장을 가도 계산대의 한 코너는 비워둔다. 이유는 클레임 고객을 처리하기 위해서다. 고작 1,000원짜리 제품을 환불받기 위해 매장에 다시 오는 고객의 번거로움을 애써 헤아린 저자의 의도가 담겨있다.
균일가 사업은 돈이나 머리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막대한 자본력을 갖고 있는 대기업에서 균일가 매장이 나오지 않는 이유다.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땀 흘리고 이곳저곳 발품을 팔아서 상품을 발굴해야 한다. 한마디로 온몸으로 뛰어다니며 몰입하는 열정이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는 사업이다. 소걸음으로 천 리를 가듯 저자는 우보천리(牛步千里) 자세를 잃지 않았다. '바르고 정직한 것', 다이소의 사훈이다. 26년간 '천 원의 가치'를 지켜내려 했던 저자의 땀방울로 3조의 매출의 기업이 탄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