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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들의 날갯짓

초콜릿 전국시대

by 유호현 작가

“카카오를 사골처럼 우려낸 맛.”


고디바 초콜릿을 처음 먹던 날 생각난 표현이다.


내게 초콜릿이란 참 이상하다.

고디바가 제일 맛있는 줄 알았는데, 어떤 날은 가나가 맛있고 또 어떤 날은 페레로로쉐가 인생 초콜릿이다.

라면은 신라면, 과자는 맛동산, 아이스크림은 브라보콘, 맥주는 호가든.

대부분 군웅할거의 시대가 끝이 나고 최애의 왕좌는 정해졌지만 초콜릿은 여전히 춘추전국시대다.

결국 결론은 하나. 나는 그냥 카카오가 좋은가보다.

카카오의 다채로운 표정이 송강호 배우님의 연기 같은 것이다.

카카오나무가 꽃을 피우면, 손톱 크기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나무위키를 보니 카카오 꽃은 너무 작고 복잡한 구조라 꿀벌이 아니라 등에모기과나 혹파리가 수분을 한다고 한다. 그 작은 곤충들, 이름도 낯설고 심지어 흡혈까지 하는 그들.

한 마리라도 집 안에 들어온다면 그날 잠은 다 잔 거다.


그런데 우리가 해충이라 부르는 작은 셰프들이 멸종이라는 해고 통보를 받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카카오 열매도 동반 퇴사한다.

그렇게 한 조각의 위로는 우리 곁을 떠난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샌드플라이의 날갯짓을 상상해 보았다.

그건 새벽부터 불 앞에 서서 국물을 젓는 국자의 둥근 궤적이었다.

셰프들이 분주히 날아다니는 카카오 농장을 생각해 보자.

세상에서 가장 넓으면서도 사방이 꽃 천지인 화려한 주방이다.


입 안에서 퍼지는 그 농도 짙은 맛.

그 작은 생애들이 모여 만든 사골 같은 초콜릿 한 그릇이라니.

나이가 들어가면 참 고마울 일들 천지다.

요즘 건강 생각하느라 다크 초콜릿을 매일 챙겨 먹는다.

그 한 조각의 농도 속에, 작고 소중한 생애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오늘도 사골 잘 우렸다!"


사본 -pexels-polina-tankilevitch-4110089.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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