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의 탄생
부모는 인파 속에서도 자녀의 손을 놓지 않는다.
그 손을 잃게 되면 온 세상을 뒤져서라도 다시 찾아낸다.
나에게도 자녀 같은 기억이 있다.
바로 짜장면.
내가 평생 놓지 않으려 했던 첫 번째 미각.
맛의 탄생. 미식의 맏이.
초등학교 2학년 때. 누나가 나한테 짜장면 사먹으라며 500원을 줬다. 내 인생 퍼스트 혼밥이었다.
당시 갤러그 한판에 20원. 무려 오락 25판을 할 수 있는 그 거금을 꼭 쥐고 가며 많은 고민을 했다.
겨우 한 번의 허기를 해결할 것인가? 오락실의 인싸로서 긴 하루를 살것인가?
문방구의 아폴로와 쫀득이가 주식이었고 달고나가 별미였던 나였기에 맛에 대한 기대는 고만고만했다.
하지만 중국집 앞에 다가섰을 때 그 고민은 끝이 났다. 짜장 볶는 냄새가 지극히 향기로웠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라라랜드의 미아가 세바스찬에게 춤을 추자며 내미는 손길 같았다.
난 그 손길에 이끌려 반점에 앉아 짜장면을 기다렸다.
그 날 짜장면 한 그릇이 무심히 툭 내어지던 모습, 학교 걸상처럼 삐걱거리던 자리, 시커먼 철제 프레임의 시계 등 모두 다 기억이 난다.
짜장 속에 섞여 있던 조각 하나를 씹었는데 눈이 번쩍 뜨일 정도의 맛이었다. 난 그걸 삼켜버릴까 조마조마해하며 최대한 오래 씹었다. 아마 그때부터 고기에 대한 사랑이 시작된 것 같다.
그날의 기억은 이미 40년 가까이 되었다.
내가 그 맛을 아직도 상세히 기억하고 있는 것은 잊지 않으려 애썼기 때문이다.
수많은 맛집의 인파 속에서도 그 한 그릇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가끔 놓쳤을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비유적으로 미아 방송을 틀었다.
"1986년 5월 5일 정오. 짜장면 한 그릇, 피날레를 장식한 고기 한 점을 찾습니다."
많은 맛집을 다녀봤다. 친구 중에는 부자도 있어서 좋은 술도 가끔 얻어 마신다.
그때의 짜장면은 지금의 미각을 만족시킬 수 없을 것이다.
내가 그 기억을 놓지 않으려 애썼던 이유는 단순한 미각의 집착이 아니다.
그때의 내가 누구였는지를 잃지 않기 위한 안간힘인 것이다.
사실 초등학교 때의 많은 기억들이 실종되어 참 안타깝다.
기억이란 잊지 않으려는 태도 그 자체로 단단해진다.
어떤 기억은 스스로 남는게 아니라, 우리가 붙잡기 위해 손을 뻗을 때 "아빠, 엄마."라 불러준다.
그래서일까?
'옛날' '국민학교' 이런 단어가 음식 앞을 수식하면 손이 간다.
그건 굳이 먹고 싶다기보다, 마음이 먼저 움직이기 때문이다.
친어머니와 재회하고 맛의 탄생에 대해 이야기를 해드렸다.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넌 모유도 짜장면처럼 먹었어. 원래 뭐든 잘 먹었어. 기억에 없을 뿐."
남들이 감탄하는 내 면치기는 모유치기에서 기원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