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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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잠옷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잠을 잘 때 입는 옷이야말로 가장 안전한 곳에서 취약한 상태로 있다는 사실을 내포한 의복이지 않을까? 포슬포슬하고 따뜻한 겨울 잠옷을 꺼내 입는 요즘이다. 분홍색 원피스인 이 잠옷은 뭉게뭉게 무지개 빛 구름에 둘러싸인 동화 나라 공주님이 된 듯한 기분을 주기도 하고 침대에 놓인 인형들을 보살피고 먹여야 하는 온화한 마을의 주인이 된 듯한 기분을 주기도 한다. 흰색 펭귄 옆의 갈색 펭귄. 펭귄 옆의 솜사탕 색 해파리. 해파리 옆의 얼룩 금붕어. 금붕어 옆의 웃음 짓는 가오리. 가오리 옆의 커다란 고래.
크리스마스의 캐럴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와 온 벽을 덮고 내 귀에 떨어진다. 바다만 한 어항의 세상은 오늘을 기점으로 밤이 짧아지기 시작했다.
오로라 빛의 지느러미가 노을을 담아 보라색을 띤 바다를 가로지른다
갈라진 수면의 물방울들은 아무도 보지 않는 틈을 타 수백 가지의 꿈을 재잘거린다
어항 속의 세상은 꿈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소망이 온 하늘을 덮으면 낯을 피할 수 없는 사람들이 땅으로 녹아내린다
그러면 대지는 봄을 기꺼이 데려와 푸른 잎을 피워낸다
온 세상에 소망이 가득하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고래가 되어야 한다
꿈은 소망의 먼저 쓰인 제목이며 어항의 물을 붓는 바다가 된다
오늘 밤 손가락 사이로 스며드는 물방울들을 느끼며 분홍빛 잠을 잘 수 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