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자라서 군 생활을 잘할 것 같았다.
하지만 가끔 작업할 때 외에는 장점이 없었다.
사람들은 군인 하면 총 쏘고, 땅 파고, 삽질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일반 회사와 같이 회의가 많고, 각종 보고서 작성, 브리핑, 컴퓨터를 이용한 모의 훈련 등 다양한 분야의 업무를 수행한다.
특히 지휘관은 정보, 작전, 인사, 군수 등 모든 분야의 업무를 총괄해야 한다.
1999년 중위 계급장을 달고 군수장교 업무를 했다.
군에서 빠질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당직 근무이다.
지금은 당직 근무비를 조금 받지만, 몇 년 전만 해도 당직 근무비는 없었다.
오히려 식당에서 급양 감독을 할 때도
당직 근무자는 식사를 사서 먹고,
급양 감독을 해야 한다.
하루는 당직사령 중령과 함께 근무를 하고 있는데 나에게 물으신다.
"심 중위 애인 있나?"
"없습니다."
"종교가 뭐지?"
"불교입니다."
지방대, 시골 출신에, 키도 작고, 학사장교에, 교회도 안 가고 어떻게 애인을 사귈 거냐고 하신다.
서울 서초구에 근무하고 있지만, 강원도에 있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나는 바로 서울에 있는 대학원에 시험을 보고, 입학했다.
이제 지방대, 시골출신 군인에서 서울의 대학원생이 되었다.
2년 후 대학원을 졸업하고, 지금의 아내를 소개로 만난 지 90일 만에 결혼했다.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3일 후 만난 지 100일 행사를 했다.
하루는 중대에서 병력통제를 하다가 소대장의 의도대로 통제가 안되어 화가 많이 났다.
중앙 복도에 나와서 크게 고함을 쳤다.
"00중대 모이!"
중대원들이 모두 복도로 나왔다.
그런데 모두 소대장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모이란 말이야, 안 들려?"
'집합'이란 용어가 생각나지 않아서,
'모여라'의 사투리인 '모이'가 튀어나왔다.
소대원 중 한 명이 나중에 찾아왔다.
"소대장님!
모이가 무슨 의미입니까?"
그 후로 나는 말수가 줄어들었다.
말 한마디에 더욱 조심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