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 기간 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은 외적으로는 통증이었고 내적으로는 ‘지금 내 삶의 의미 상실’이었다. 아픈 몸으로 사는 삶은 삶이 아닌 줄 알았다. 그래서 오직 치료에만 매달렸다. 나아야지 살 수 있으니까. 인간답게 살 수 있으니까. 지금 내 삶은 삶이 아니니까. 죽어라 고개 숙이고 등을 구부린 채 쑥에 불을 붙였다.
병은 반드시 이겨내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빨리 떨궈버리고 정상적인 삶의 궤도로 다시 진입해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내가 생각을 했다기보다 그냥 그렇게 알고 있었고 사회도, 사람들도 다 그렇게 알고들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나에게 빨리 나으라고, 나아서 일도 하고 아이들이랑 놀러도 가라고 했다. 나를 치료해주시는 쑥뜸 선생님도 병과 친구가 되어 어울려 산다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말라고, 반드시 나아야 의미가 있는 거라고 하셨다.
그래서 몸이 너무 지치거나 아파서 치료를 못 하는 날은 마음이 어둠으로 꽉 찼다.
‘완치를 향해 열심히 쉬지 않고 가야지! 무조건 나아야지! 최대한으로 해도 나을까 말까인데 어떻게 멈출 수가 있어? 제정신이야? 빨리 토치 잡아!’
하는 목소리가 내 목을 움켜잡고 흔드는 것 같았다.
밥을 먹고, 아이들과 책을 읽고, 산책을 하는, 치료 외의 모든 일은 치료를 열심히 하고 난 후에 했을 때에만 의미가 있고 즐거웠다.
내 삶을 하나의 선으로 죽 긋는다면, 투병 기간은 끊어진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나아야만 그 선을 다시 이어서 그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죽어라 치료를 했지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나도 내 몸은 나아지지 않았다. 점점 더 영혼을 잃어가는 기분이었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점점 더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지쳐서 치료를 못 하고 날씨가 좋아 빨래를 한 후에 마당에 걸린 빨랫줄에 빨래를 널어놓고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이 빨래를 한 것만으로 성공한 것 아닌가? 이 햇볕 속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지금 치료 못 한 것을 합리화하려는 거야?’하는 생각이 재빠르게 따라와 앞서 올라왔던 생각을 눌렀다.
햇볕 아래에 계속 앉아있었더니 또 새로운 생각이 올라왔다.
‘치료를 못 한 날도 내 아름다운 인생의 하루다.’
그리고 이 한 문장을 시작으로 생각의 반전들이 우수수 일어났다.
나는 환자야. 치료를 해야 돼. 치료 외에는 다 의미가 없어.
아니, 나는 아프지만 온전한 존재야. 치료도 의미 있지만 다른 모든 행위도 의미가 있어.
통증이 있잖아. 손과 발이 아프잖아. 이 병이 나아야 삶이 온전해져.
아니, 통증이 있지만 이 정도의 활동을 할 수 있어서 행복하고 감사해. 내 삶은 지금, 이미, 온전해.
지금은 내 삶의 지워진 시간이야. 없는 시간이라고.
아니, 병을 치료하고 있고 몸이 회복 중인 이 시간은 엄청나게 고맙고 소중한 시간이야.
치료를 방해하는 아이들이 정말 싫어. 치료를 못 하고 집안일 때문에 무리를 하게 되는 주말은 지옥이야.
아니, 주말에 아이들과 알콩달콩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해. 같이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설레고 즐거워.
내 삶은 이 병 때문에 망가졌어.
아니, 내 삶은 이 병 덕분에 더욱 성장했어. 쑥뜸으로 몸을 치료할 수 있는 의사까지 되었잖아. 아프고 힘든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었고. 이 병은 내 삶에 큰 성장점이야.
그날이 처음이었다. 나의 아픈 지금의 삶을 괜찮다고, 훌륭하다고 생각을 해본 것이. 처음이어서 아직 헷갈리고 긴가민가해서 일기장에 그 생각들을 쓰고 나서도 입술을 오물거리며 '진짜?'라고 여러 번 반문했다. 하지만 그 생각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힘이 세졌다. 그 생각의 시작을 열어준 햇볕과 연대해 나는 가능한 자주 햇볕을 쬐려고 했고 쑥뜸 치료에 맹목적으로 매달리기보다 근본적으로 내 몸을 낫게 할 방법들을 찾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