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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남추녀 Sep 28. 2015

더 이상 물건을 늘리지 말 것

류예지

그녀가 그 도시에 조그만 방을 한 칸 얻고, 주변에 싸고 저렴한 물건을 파는 마트가 어디인지 도서관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알아가는 수많은 날들 동안 그 도시에서 자신에게 제일 먼저 말을 걸어준 것은 바람이었다고 했다. 베란다의 창문을 조금만 열어놓고 있어도, 아이가 칭얼거리는 듯한 바람소리가 무언가를 속삭일 듯 밤새 귓가에 머물다가 묘한 여운을 남긴 채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삼 년 전 그 도시로 떠났다.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  이십 분이면 닿는 나라, 가깝고도 먼 도시에 그녀는 자신의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즈음 우리는 각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고, 각자의 자유가 확보된 생활을 영위하고 싶어 했다. 너무 오랫동안 서로를 구속했던 탓에, 그리하여 홀로 무언가를 할 수 없을 만큼 서로에게 너무 많이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불시에 떠났던 그녀는 삼 년 만에 돌아왔다. 어제 헤어진 사람처럼 문 앞에 서 있던 그녀는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눈가에 미세한 주름이 생긴 것을 제외하곤, 나를 설레게 했던 천진한 미소는 예전 그대로였다.  조금은 지친 그녀를 위해 코끼리 문양이 새겨진 누빔 이불을 여러 겹 포개 포근한 잠자리를 만들어 주었고, 우리는 사이좋은 오누이처럼 그 위에 누웠다. 그날 밤 나는 새벽으로 가는 길목까지 그녀가 머물다 온 도시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무서웠겠다.”     


나는 그 도시에 머무는 동안 그녀에게 제일 먼저 말을 걸어주었다던 바람소리를 생각하며 대답했다.     


“아니, 무섭지 않았어.”     


그녀는 짐짓 용기 있는 사람처럼 언성을 높였지만, 이내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이를테면 외로웠던 것 같아. ”     


그녀는 그 도시에서 삼 년을 살았다. 삼 년이라는 시간은 그리 짧은 시간이 아니다. 서로에게 크고 작은 역사가 일어날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시간이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굳이 묻고 싶지 않았다. 과정이야 어떻든 그녀는 지금 바로 내 곁에 누워 있고, 다른 사람도 아닌 나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그렇다.     


어떻게 보면 삼 년 전, 이 집에서 절반쯤에 해당되던 그녀의 세간이 훌쩍 빠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원망스러움보다는 후련한 기분마저 들지 않았던가. 그럴 수 있었던 데는 그녀가 다시 나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 역시도 그랬으리라.     


그녀가 그 도시를 버리고 내게 돌아왔던 그 날, 홀홀 단신에 가까울 만큼 짐이 적었다는 사실은 그래서 더욱 나를 놀라게 했다. 자신의 몸보다 세 배쯤 큰 캐리어를 들고, 예전처럼 수다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을 그녀의 화려한 컴백을 상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도시는 그녀를 변화시킨  듯했다.     


“되도록이면 물건을 사지 않았어.”     

“무슨 소리야?”     

“그 도시에서 살게 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직감적으로 그 도시와 내가 너무 많이 닮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거든. 다신 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그건, 당신을 영원히 떠난다는 것과도 같은 의미였어. 그래서 나는 그 도시에서 살면서 나름의 불문율을 만들게 된 거야.”   


  

사진 @ 손구용


“어떤?”     

나는 처음으로 명료한 목소리를 냈다.      


“더 이상 물건을 늘리지 말 것.”     

“더 이상 물건을 늘리지 말 것?”     


그녀는 모호한 말들을 늘어놓았다.     


“응. 내가 늘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떠나오기도 쉬울 것 같았거든. 그래서 물건을 더 이상 늘리지 않기로 마음먹은 거야. 집착이 생기게 될까 봐. 그 도시를 버리고 당신에게로 돌아올 수 있었던 건, 아마도 그 때문이었을 거야.”     


물이 든 풍선 주머니를 쥐어짜듯 이어지던 그녀의 말은 그 고백을 끝으로 잠잠해졌다. 깊은 잠에 빠져 든 것이다. 곤한 여행길이었을 것이다. 비행기로 한 시간 이십 분이면 닿을 거리에 살고 있었으면서도, 내게  돌아오기까지 삼 년이라는 시간이 걸리지 않았던가.     




나는 그녀를 깨우지 않게 하기 위해 천천히 몸을 일으켜 베란다로 나갔다. 열어놓은 문틈으로 시원한 바람이 스며 들어왔다. 마치 그녀가 머문 도시에서 불어온 것만 같은 찝찔한 소금기를 머금은 바람이 무슨 말을 할 듯  귓가에 머물다가 이내 사라져 갔다.  그때, 나는 무슨 중요한 말이라도 들려줄 것처럼 어둠 속에서 웅크리며 잠을 자고 있는 그녀에게로 도르르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날 밤 우리는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아주 낯설지만 따뜻한 도시의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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