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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남추녀 Sep 30. 2015

친구야, 사랑이라니!

전건우

  딸꾹질처럼, 세상엔 막을 수도 없고 대비할 수도 없이 갑자기 찾아오는 것들이 있다. 

  그 해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드는 시기에는 초코파이 속의 마시멜로처럼 말랑말랑한 날들이 많았다. 하늘은 늘 푸르렀고 단풍은 어느 해보다 진했으며 청양고추처럼 알싸했던 바람은 때 이른 눈을 예감하게 했다.      

  그리고 그 해 가을과 겨울 사이 우리 집은 딸꾹질처럼, 폭삭 망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 신파 영화의 흔한 장면들처럼 아버지는 연락도 닿지 않는 먼 곳으로 몸을 피했으며 집으로 들이닥친 빚쟁이들은 지펠 냉장고와 한경이 스팀 청소기와 기타 등등에 빨간딱지를 붙이고 사라졌다. 

  그런 상황에서 빠질 수 없는 장면 하나. 

  어머니는 뒷목을 잡고 쓰러지셨고 여동생은 악을 쓰며 울어댔다. 

  나는 그저 멀뚱히 서 있기만 했다. 막을 수도 없고 대비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딸꾹질처럼 말이다, 세상엔 막을 수도 없고 대비할 수도 없이 갑자기 찾아오는 것들이 있다. 그 해 가을과 겨울 사이의 수많은 빚들과 그 수많은 빚들에 이해관계가 얽힌 빚쟁이들이 그랬다. 

  가족과의 이별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는 시골 할머니 집으로 내려가셨고, 여동생은 지방 소도시의 공장에 취직을 했다. 그림을 공부했던 여동생은 천 원짜리 싸구려 티를 만드는 그곳에서 커다란 눈을 가진 캐릭터 그림을 하루 종일 그려야 했다. 행방불명된 아버지는 빚쟁이들이 들이닥치기 전 한 통의 문자를 보내오긴 했다. 문자는, ‘나는 잘 있다. 엄마랑 동생 잘 챙겨라. 미안하다. 부탁한다. 나는’에서 툭 끊겨 있었다. 

  아버지, 문자 보낼 땐 띄어쓰기하지 마세요. 

  나는 그 말을 수없이 중얼거렸다. 잘려나간 아버지의 문자를 보며 눈물이 마를 때까지. 

  그렇게, 모든 일들이 일어났다, 그 해 가을과 겨울 사이에.     


  나는 손바닥 만 한 창문이 딸린 반지하 방으로 이사를 했다. 코딱지 같은 단칸방이었다. 

  지펠 냉장고와 한경이 스팀 청소기와 컴퓨터와 텔레비전 같은 것들을, 빨간딱지가 붙은 채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그것들을 들여놓을 공간 같은 게 없었기에 나는 조금 위로를 받았다. 

  하지만 그 위로가 쓸쓸한 자위가 될 만큼 많은 밤들이 심심했다. 부랴부랴 얻은 하루 12시간 근무의 공장 일로 내 몸은 늘 파김치가 됐지만 많은 밤, 나는 쉽게 잠들 수가 없었다. 

  아마도 이 작은 단칸방은 시든 파김치도 싱싱하게 만드는 마법의 김치 냉장고가 아닌가, 혼자서 우스운 상상을 하며 손바닥만큼 들어오는 달빛을 바라보던 나날들이었다. 

  슬픔은 달빛의 두께만큼 깊고도 진했다.      


  녀석과 다시 만나게 된 것도 그때쯤이었다. 나는 매일 공장을 오갔다. 그 길 위에서 가끔 최신 유행의 옷을 입고 바쁘게 약속 장소로 향하던 그 옛날을 생각하며 상점 진열창에 내 모습을 비춰보곤 했다. 하지만 거기엔 굽은 어깨와 축 늘어진 팔, 그리고 무거운 다리를 가진 네안데르탈인이 서 있을 뿐이었다. 나는 점점 퇴화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퇴화인들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네 개의 생산라인이 쉼 없이 돌아가는 공장 안에도 숱한 네안데르탈인들이 단순 노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 세상이 사실은 원시성이 가득한 정글이란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 광대한 정글 속에서 녀석이 먼저 알은체를 했다. 

  컨베이어를 타고 벌거벗은 기계들이 속속 다가오고 있었고, 나는 어디에 쓰이는지 짐작할 수도 없는 작은 부품을 붙이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나는 부품 붙이는 타이밍을 놓칠세라 반쯤만 고개를 돌렸다. 

  내가 고개를 돌린 바로 그때 뭔가가 내 볼을 찔러 그만 부품 하나를 놓치고 말았다. 

  손가락이었다, 내 볼을 찌른 건. 

  프랑크 소시지 같은 두툼한 손가락. 

  손가락의 주인은 바로 녀석이었다.     

  

  “넌 아직도 그런 장난에 당하냐?”

  십 분 간의 휴식 시간에 우리는 공장 옥상으로 올라갔고 녀석이 먼저 말을 꺼냈다. 십 년 만에 듣는 녀석의 걸걸한 목소리였다. 

 녀석은 말을 마치곤 “우헤헤”하고 큰 소리로 웃었다. 녀석의 목소리도, 듣고 있으면 굵은 참나무가 떠오르는 녀석의 웃음도, 유치한 장난도, 그리고 거대한 몸집도 십 년 전 우리가 초등학교 6학년일 때 그대로였다. 

  나는 그 모든 걸 다 합쳐서 간단하게 말했다.

  “넌 여전하구나.”

  “좀 예뻐지지 않았냐?”

  녀석과 처음 짝이 되었을 때 나는 나무 책상에 금을 그었던가? 

  잘 생각나지 않는다. 물론 나도 갈래 머리에 원피스를 입고 다니는 코스모스 같은 여학생과 짝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아니, 그것도 잘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무쇠팔 무쇠다리 로케트 주먹’이라고 놀림받는 여학생과 짝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은 분명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아무래도 금을 그었던가 보다. 녀석이 처음 내 옆자리에 앉았을 때 말이다.


  예뻐진다는 것이 단순히 길이와 넓이의 확장을 뜻하는 것이라면 녀석은 확실히 십 년 전보다 예뻐져 있었다, 그것도 훨씬. 

  “됐다. 말 안 해도. 사람 무안하게 가만히 있기는. 그나저나 워리어 네가 여긴 어쩐 일이냐?”

  워리어. 

  워리어는 초등학교 시절의 내 영웅이었다. 미국 프로레슬링이 아직까지 WWF라고 불렸던 시절, 친구들과 내 책받침은 온통 프로레슬링 선수들 얼굴이었다. 그중에서도 나는 인디언 전사의 후예인 워리어를 제일 좋아했다. 

  워리어의 최대 라이벌은 그 유명한 헐크 호건. 누가 더 강한지 친구들과 종종 말씨름을 하곤 했다. 

녀석은 헐크 호건을 좋아했다. 우리는 ‘퐁퐁’이라고 불렀던 트램펄린 위에서 종종 프로레슬링 놀이를 했다. 

  “워리어, 오늘만은 너를 용서하지 않겠다!”

  “헐크! 너의 수염을 몽땅 뽑아 버리겠다.”

  무수한 협박의 말들이 오갔으며 여러 가지 다양한 기술들이 방과 후의 퐁퐁을 뜨겁게 달궜다. 

  누가 더 많이 이겼는가 하면, 그건 바로 녀석. 

  또래 남학생보다 한 뼘이나 더 큰 키와 굵은 팔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슈퍼파워를 나는 당해낼 수 없었다. 

  그야말로 무쇠팔 무쇠다리 로케트 주먹. 

  그러고 보니 나는 아무래도 금세 우리 사이의 금을 지웠던가 보다. 녀석과 짝이 되고서 말이다.     


  “그런데 네가 여긴 어쩐 일이냐?”

  녀석이 내게 물었다. 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십 분의 시간은 턱도 없었다. 물론 그 모든 일들이 딸꾹질처럼 순식간에 일어났지만 그 일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선 옥수수수염처럼 길고도 긴 시간이 필요했다. 

  어쩌면 머스크 팩을 한 상태로 빚쟁이를 맞아야 했던 어머니의 비극을 늘어놓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반으로 접으면 바지 주머니에 들어갈 것만 같은 내 작은 방을 설명하는 일도 마찬가지. 

  그래서 나는 첫날의 십 분을 왜 십 분 안에 설명할 수 없는가를 설명하는데 할애했다. 녀석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더니 헤드락을 한 번 걸고는 옥상을 내려갔다. 

  내려가기 전 녀석의 한 마디.

  “내 꿈은 프로레슬링 선수야.”     


  딸꾹질처럼, 세상엔 막을 수도 없고 대비할 수도 없이 갑자기 찾아오는 일들이 있다. 그 해 가을과 겨울 사이엔 그런 일들이 일렬종대로 늘어서서 나를 향해 달려왔다. 녀석을 다시 만난 건, 그것도 프로레슬링 선수가 꿈이라는 녀석을 다시 만난 건, 그 일렬종대 속에서도 유독 튀는 일이었다. 

  알고 보니 녀석은 3번 생산라인에서 일하고 있었다. 3번 라인은 주로 용접을 하는 곳으로 녀석은 한 손엔 용접기를 들고 다른 손엔 아령을 들고 일하기로 이미 유명했다. 

  우리는 매일 옥상에 올랐다. 

  나는 그 십 분의 시간 동안 네안데르탈인에서 호모 사피엔스로 서서히 진화하는 느낌을 받았다. 

  매일의 십 분 동안, 우리는 더듬더듬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인간의 언어로 대화를 나눌 누군가가 필요했고 녀석은 새로운 기술을 시험할 누군가가 필요했다. 

  어쨌든 우리는, 서로에게 필요했다. 

  보름 정도가 지났을 때, 나는 드디어 그 길고도 긴 “네가 여긴 어쩐 일이냐”에 대한 설명을 마칠 수 있었다. 

  나는 눈물을 조금 흘렸다. 

  눈에 뭐가 들어갔나,라고 둘러대기엔 조금 많은 양. 녀석은 다행히 섣부른 위로 같은 걸 하지는 않았다. 대신 내 팔을 만지작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암바 말이야, 엄청 고통스럽거든?” 

  뒤이은 암바 시연. 

  “아악! 무슨 짓이야?”

  “그런데 의외로 고통은 금방 끝나!”

  정말이었다. 녀석이 팔을 풀자 고통은 금방 사라졌다. 우헤헤. 녀석은 크게 웃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십 분 간 휴식은 그 시간도 어중간한 5시 30분부터 40분까지였다. 가을과 겨울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던 시간이 겨울 쪽으로 좀 더 기울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가 옥상에 올라갈 무렵에는 늘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푸른 햇살이 분해되며 주홍빛 속살이 드러나면 우리는 말을 멈추고 노을을 바라보았다. 서쪽 하늘을 지나던 구름이 주홍빛 속살에 닿아 꽃물이라도 들라치면 우리는 동시에 “아!”하는 감탄을 쏟아내기도 했다. 걸걸한 녀석의 목소리가 내는 감탄사도 그런대로 들어줄만했다. 

  그렇게 하루가 저물어 갔던 많은 십 분 동안 몇 가지 이야기들이 오가고 또 몇 개의 기술들이 연마되기도 했다. 

  이를 테면 이런 이야기들.

  “난 저 구름들이 분홍색 솜사탕처럼 보여. 먹고 싶다.”

  “돼지.”

  이를 테면 이런 기술들.

  “뭐라고? 돼지라고! 내 니킥을 받아라.”

  “프로레슬러가 무슨 니킥, 윽!”

  그런 와중에 또 이런 이야기도 있었다.

  “내가 왜 프로레슬러가 되려는 줄 아냐?”

  “아니.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난 우리 집에 빚쟁이들 들이닥쳤을 때도 손님들인 줄 알았다.”

  “너 때문이야.”

  의외의 대답. 그리고 당연한 질문.

  “내가 왜?”

  “비밀이야, 인마. 아무튼 나 며칠 있으면 데뷔전이니까 응원할 준비나 해라.”     


  딩동댕. 

  휴식 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소리는 언제나 맑고도 청아하게 울렸다. 종소리의 긴 여운이 흩어지는 노을을 따라 대기 중으로 사라질 때면 우리는 옥상을 내려왔다. 그러곤 다시 원시림으로 돌아가 네안데르탈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일을 했다. 

  그녀가 한 손엔 아령을 들고 으쌰 으쌰 용접한 기계들이 길고 긴 터널을 지나 나를 향해 도달하면 나는 다다닥 부품을 붙여나가는, 그런 날들이 구름처럼 뭉게뭉게 흘러갔다.

  그 시간들 중에 빚쟁이들이 몇 번 협박 전화를 했고, 여동생은 전화를 해 자주 울었으며 아버지는 여전히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런 나날들 또한 구름들처럼 뭉게뭉게 흘러갔다. 

  십 분간 휴식이 없고 녀석이 없었다면 견디지 못했을, 그런 나날들이었다.       

  딸꾹질처럼, 막을 수도 대비할 수도 없이 갑자기 찾아오는 일들이 있다, 세상에는.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시골로 내려갔던 날 전국을 강타했던 한파도 그런 것이었다. 서울의 기온은 근 십 년 동안의 12월 날씨 중 가장 낮게 내려갔고, 강원 산간 지방은 대설주의보가 내려졌다. 

  전국이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기상캐스터는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빙판길 사고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교통방송 아나운서가 말했다. 

  오늘이 내 시합일인데 어딜 간다는 거야? 

  녀석이 말했다. 

  미안. 어쩔 수 없어. 오래전부터 어머니랑 약속한 거라. 

  내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고, 넌 참 모르는구나. 녀석이 나보다 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뭘 모른다는 거야? 

  내가 물었지만 녀석은 그냥 전화를 끊어 버렸다. 

  결국 나는 혼잣말로 작게 속삭였다. 

  파이팅.     


사진 @ 손구용


  어머니는 몰라보게 늙어 있었다. 마음의 슬픔을 양분으로 삼은 흰 머리카락들이 지펠 냉장고와 한경이 스팀 청소기가 있던 무렵 우리 집 마당에서 자라던 잡초들처럼 어머니의 머리 전체를 하얗게 덮고 있었다. 

  “밥은 잘 먹고 다니냐?”

  “네.”

  “아픈 덴 없고?” 

  “네.”

  나는 그다지 사근사근한 아들이 아닌가 보다,라고 터미널 부근의 국숫집에서 어머니와 마주 앉아 국수를 먹으며 생각했다. 도무지 할 말이 없었다. 그저 면발을 건져 올릴 뿐. 

  “너 기억나냐? 엄마가 국수 만들 땐 고명을 여덟 개씩 올린 거.”

  “네.”

  어머니는 공깃밥을 시켜 삼분의 이를 내 국물에 덜어주셨다. 많이 먹어라, 지면 안 된다. 지면 안 되니까 많이 먹어라, 는 말과 함께. 국수를 먹고 그 국물에 밥을 말아먹는 내내 고춧가루 같은 빨간 슬픔이 내 마음과 눈 사이를 둥둥 떠다녔다. 

  “아버지는 연락 왔냐?”

  어머니는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지나가듯 물으셨다. 아니요. 나는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 대신에 염치없이 노란 단무지를 아작아작 씹어 삼켰다. 

  어머니는 굳이 버스 타는 걸 보시겠다며 터미널 안까지 들어오셨다. 오랜만에 만났다 헤어지는 연인들처럼 어머니와 나는 버스 창을 사이에 두고 섰다. 나는 추운데 얼른 들어가시라고 말했고 어머니는 삶은 달걀 세 개를 손에 쥐어 주셨다. 

  “엄마 많이 늙었지?”

  버스가 출발하기 전, 어머니는 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 물어보셨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아니요. 아니에요. 버스는 출발했고, 어머니는 내내 손을 흔드셨다. 나는 그날 물도 없이 삶은 달걀 세 개를 삼키며 인생의 비밀 하나를 알아버렸다. 

  슬픔은 뜨겁다. 그리고 목이 멘다.     

  

  그날, 내가 서울 터미널에서 녀석의 경기장까지 숨을 헐떡이며 달려갔던 것은 어쩌면 삶은 달걀 때문인지도 모른다. 달걀 때문에 꽉 막힌 속을 녀석의 등 후려치기 한 방으로 뚫어버리고 싶은 마음. 

  나는 빙판길에 미끄러지고 행인들과 부딪치며 녀석을 향해 전력 질주했다. 내 인생에서 그토록 빨리 달려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녀석의, 화려할 것으로만 예상했던 데뷔전이 치러진 곳은 구민회관 강당에 만들어진 낡은 링 위였다. 

  내가 숨을 헐떡이며 도착했을 때 녀석은 이미 풍만한 가슴과 개미허리를 가진 상대편 선수에게 코브라 트위스트를 당하고 있었다. 점퍼에 손을 찔러 넣은 소수의 관중들은 죄다 포르노에나 나올법한 상대편 선수를 응원하고 있었다. 코브라 트위스트를 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녀석에게 비웃음을 보내며. 

  저 뚱땡이는 뭐야, 라거나 뚱뚱한 년 죽어라 따위의 야유를 보내는 관중들을 보며 나는 순간 울컥하고 말았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나는 입고 있던 더플코트를 벗어서 손에 들고는 링사이드로 돌진했다. 

  그리고 더플코트를 크게 돌리며 목이 터져라 외쳤다.

  “와일드 퍼그 파이팅!”     


  “와일드 퍼그가 아니라 피그거든!”

  데뷔전을 멋진 패배로 장식한 녀석이 내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선수 대기실이라고 적힌 종이가 반쯤 떨어져 나간, 화장실 옆 허름한 방안이었다. 

  나는 연신 꺼억꺼억 트림만 했다. 

  “그리고 그 코트는 또 뭐냐? 내가 왜 진 줄 아냐? 너 때문에 쪽 팔려서 졌다!”

  나는 또 꺼어억.

  “그래도 고맙다. 너 옛날에도 이렇게 나 응원했던 거 기억하냐?”

  응원이라니. 금시초문이었다. 

  “그 왜, 있잖아. 내가 육학년 남자 짱이랑 싸울 때, 내가 겁나게 맞고 있으니까 네가 죽어라 응원했잖아? 코브라 트위스트 써. 코브라 트위스트 써, 하면서 말이야.”

  그러고 보니 그랬던 것도 같다. 아니, 그랬다. 치사빤스 같은 그놈이 녀석의 얼굴만 때리는 걸 보고 오늘처럼 울컥해서 목이 터져라 응원했다. 그 후 남자애들한테 잠시 왕따를 당했던 아픈 기억도 더불어 생각났다. 

  “그때부터 나, 프로레슬러가 되고 싶었어.”

  퉁. 퉁. 퉁. 녀석의 거대한 주먹이 내 등을 두드렸다. 

  내 마음도 덩달아 퉁. 퉁. 퉁. 울었다.     


  딸꾹질처럼, 세상엔 막을 수도 없고 대비할 수도 없이 갑자기 찾아오는 것들이 있다. 그 해 가을과 겨울 사이에 베수비오 화산처럼 터져버려 우르르 꽝 무너져버린 우리 집이 그랬고, 녀석과의 우연한 만남이 그러했으며 걷잡을 수 없었던 슬픔들이 또 그러했다. 그리고……     

  그 해 12월에 찾아온 설사가 또한 그런 것이었다.     

  녀석의 경기가 끝난 그날 밤부터 엄청난 설사가 나를 찾아왔다. 배는 뒤틀리듯 아팠고 온몸에 진땀이 났다. 

  그리고 설사. 

  정말로 걷잡을 수 없었다. 문을 닫으려는 약사를 붙잡고 약도 사 와서 먹었지만 한 번 터진 봇물을 막을 수는 없었다. 

  뱃속에서, 만약에 그런 게 있다면 에이 플러스 급의 태풍이 휘몰아쳤다. 그 밤 내내 나는 일곱 번 화장실에 갔으며 결국 탈진해 쓰러지고 말았다.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설사는 가시지 않았고, 나는 일어서기만 해도 어지러워 아무 데도 가지 못하고 그저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 

  조금 울고 싶었지만, 눈물을 흘릴 만큼의 수분조차도 남아있지 않았다. 물론 전화기를 들 힘도 없었다.

  

  결근한 날 밤 녀석이 찾아왔다. 나는 처음에 강도나 빚쟁이들인 줄 알았다. 

  녀석은 문을 부술 듯 열어젖히고는 말 그대로 뛰어 들어왔다. 

  “전화도 안 받고 어떻게 된 거야, 인마?”

  녀석은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우리 집은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긴! 공장주임한테 주소 물어서 겨우겨우 찾아왔지. 근데 무슨 이런 토굴 같은 데서 사냐?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된 거야? 아파?”

  나는 장엄하고 대단하며 눈물 없인 들을 수 없고 비위 약한 사람 또한 들을 수 없는 간밤의 설사에 대해 담담히 털어놓았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녀석은 나를 둘러업고 병원으로 뛰었다. 녀석의 등은 생각처럼 넓었고, 생각보다 따뜻하고 포근했다. 

  나는 그 등에서 정말로 오랜만에, 깊고 편한 잠에 빠져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집이었다. 내가 긴 잠을 잘 동안 녀석은 응급실로 나를 데려가 링거를 맞게 했고 약을 지어왔다. 그런 뒤 다시 나를 업고 집으로 돌아왔다. 살며시 눈을 떠보니 녀석은 내내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나는 조용히 물었다.

  “혹시 울었어?”

  “병신. 울기는. 좀 살만한 가보네?”

  “고맙다.”

  “병신 고맙긴. 난 힘들어 죽겠다. 나도 좀 쉬어야겠다.”

  그렇게 말하고 녀석은 내 옆자리에 누워버렸다.

  “뭐 하는 거야? 어딜 누워?”

  “생명의 은인이 좀 눕겠다는데 그게 못마땅하냐? 안 잡아먹을 게!”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왠지 몸과 마음이 가뿐했다. 녀석의 팔뚝에서 느껴지는 체온이 그리 싫지 않았다.

  “설사하는 사람 위해서 죽이라도 좀 끓이지?”

  “죽은 나중에 사 먹고, 난 너랑 같이 누워서 같이 앓아야겠다!”

  “…….”

  “우리, 같이 앓자. 네가 아프면 나도 아프고, 내가 아프면 너도 아프고. 무슨 말인지 아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긴 침묵 후 먼저 입을 연 것도 바로 녀석.

  “그러니까”

  “…….”

  “우리”

  “…….”

  “우리, 말이야”

  “…….”

  “우리, 말이야, 그러니까, 사귀자.”


  나는 그 순간 인생의 또 다른 비밀 하나를 알아버렸다. 딸꾹질처럼, 빚쟁이들처럼, 겨울 한파처럼, 그리고 설사처럼 사랑 또한 막을 수도 없고 대비할 수도 없이 찾아온다는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심장이 두 방망이질 칠 만큼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라는 사실을, 나는 알아 버렸다. 

  그 비밀을 알아 버렸음에도 나는 녀석에게 멋대가리 없이 말했다.

  “그럼, 이제부터 나는 세상에서 제일 넓은 어깨를 가진 여자의 남자 친구네?”

  암바가 작렬했고, 손바닥만 한 창문 밖으로 그 해의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딸꾹질처럼, 세상엔 막을 수도 없고 대비할 수도 없이 갑자기 찾아오는 것들이 있다. 그 해 가을과 겨울 사이엔 그런 일들이 비 온 뒤의 잡초들만큼이나 무성하게 닥쳐왔다. 그 무수한 딸꾹질 같은 일들 중 하나,      


  그 해 가을과 겨울 사이,

  나는 친구를 잃고,

  사랑을 얻었다. 

  딸꾹질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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