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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남추녀 Jul 28. 2015

오, 사랑

전건우


  

극심한 보고픔이 나를 찾아온 건 보름달이 환하게 뜬 새벽 세 시였다. 새벽 세 시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를 하자면 그 시간은 뭔가 어중간한 느낌이다. 깨어있기엔 너무 늦고, 깨어나기엔 너무 이른, 마치 고등학교 때의 내 성적처럼. 


  나는 갑자기 눈을 떴다. 누군가 내 의식의 끄트머리에 실 한 가닥을 매달아 잡아당긴 것처럼. 일어나 보니 새벽 세 시의 낯선 공간이었다. 


  곧 먹먹한 보고픔이 밀려왔다. 해일처럼 거대하고 우주의 암흑처럼 진한 보고픔이었다. 


  “우와” 


  나는 감탄사를 뱉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여자를 만났고 나름 진지한 연애도 몇 번 했지만 영혼이 떨릴 정도의 보고픔은 처음이었다.


  그리하여, 무려 새벽 세 시에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만물 박람회에서 산 전등이 달린 모자를 쓰고 막내 동생의 자전거를 빌렸다. 전등 모자는 일반 야구 모자와 똑같은데 로고가 박혀 있어야 할 부분에 작고 동그란 전등이 달려 있었다. 


  나는 그 모자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언젠가 꼭 쓸 일이 있을 거야, 예를 들면 갑자기 건물이 무너져서 암흑 속에 갇혔을 때 짜잔 이 멋진 모자로 길을 찾는 거지, 따위의 변명을 하며 모자를 샀다. 


  나는 전등이 밝혀주는 거리만큼 폐달을 밟으며 여자 친구 집으로 향했다. 새벽 공기는 생각보다 찼다. 보름달이 미치도록 빛났다. 무려 새벽 세 시였다.           



  

분화구가 보일 만큼 크고 환하게 보름달이 뜬 날이면 언제 어디서 늑대인간이 나타나도 하등 이상할 바가 없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막상 늘 다니던 동네 골목길에서, 그것도 새벽 세 시에 늑대인간을 만나니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늑대인간은 어깨가 구부정했는데 한 손엔 까만 비닐봉지를 들고 다른 한 손은 엄지손가락을 세워 흔들고 있었다. 이른바 히치하이킹. 나는 자전거 브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세요?” 


  목소리는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네. 안녕하세요?” 


  “저는 늑대인간 K라고 합니다만.” 


  “네. 저는 보통 인간 J라고 합니다.” 


  우리는 악수를 나누었다. 늑대인간의 손바닥은 부드럽고 뽀송뽀송했다. 


  “괜찮으시면 뒷산 어귀까지만 태워주시겠어요? 저는 정말이지 너무 피곤하거든요.” 


  아닌 게 아니라, 늑대인간 K씨는 몹시 피곤해 보였다. 늘어진 귀하며 제대로 빗질이 안 된 털, 축 처진 어깨에서 삶의 고단함이 묻어 나왔다. 아무렴 산다는 것은 힘든 것이다. 그것이 늑대인간이건, 대졸 백수건. 


  “뒤쪽 안장은 작은데, 괜찮으시다면.” 


  “감사합니다. 그럼” 


  늑대인간 K씨는 힘겹게 자전거에 올라탔다. “그럼 신세 좀 지겠습니다.” 예의 바르게 말했고, 나는 “뭘요.”라고 말하며 힘껏 페달을 밟았다.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가며 제법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이십 대의 취업난에 대해서도 잠시 의견을 교환했다. K씨는 늑대인간으로 사는 자신의 고단한 인생 이야기도 했다. 


  “정말로 피곤한 일이죠.” 


  “그렇겠군요.” 


  나는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센티해지는 기분이었다. 그 후에도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새벽 세 시의 극심한 보고픔에 대해 이야기 했을 때, K씨는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말했다. 


  “보고 싶다는 건 결핍을 느낀다는 겁니다. 결핍이란 있어야 할 것이 사라지거나 모자란다는 뜻이죠. 즉 J씨의 디엔에이 구석구석, 혈관 사이사이, 마음 틈틈이 그녀로 가득차야 하는데 그것이 없기 때문에 보고픔을 느끼는 것이죠. 보고픔이란 진정 사랑의 빈혈이고 갈증입니다.” 


  “극심한 보고픔을 느껴보셨나 봐요?” 


  “느껴봤지요. 제게도 사랑하는 여자가 한 명 있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여자지요. 왜, 있지 않습니까? 어떤 남자가 봐도 백점 중에 구십 점 이상은 줄 만한 여자. 그녀가 바로 그런 여자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저와 다르죠. 그래서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이해를 시킬 수 없을까요? 한 달에 한 번 늑대인간으로 변하는데…….” 


  “문제는 그게 아닙니다. 문제는 그녀가 인간늑대라는 겁니다. 저는 보름달이 뜰 때면 늑대로 변하지만 그녀는 보름달이 뜰 때만 인간이 되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자전거는 어느새 뒷산 어귀에 도착했다. K씨는 아침이 될 때까지 산에서 조용히 소고기를 먹으며 기다릴 거라고 했다. 자전거에서 내리며 K씨는, “사랑입니다. 사랑.”이라고 말하며 조용히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고 나서 구부정한 어깨를 하고는 소고기와 갈아입을 옷이 들어있는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터덜터덜 뒷산으로 올라갔다. 


  나는 다시 힘껏 페달을 밟았다.           



  

정신없이 달리다가 편의점에서 나오는 외계인을 칠 뻔했다. 모름지기 이상한 일들은 한꺼번에 일어나는 법이다. 새벽 세 시의 보고픔부터 심상치 않았는데 늑대인간을 거쳐 외계인이라니. 


  외계인은 문어처럼 생긴데다가 우주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외계인이란 사실을 눈치 챘을 뿐 인간들과 별반 다르진 않았다. 외계인은 넘어지며 양손에 들고 있던 자갈치와 오징어땅콩을 떨어트렸다. 그러면서, 


  “에이, 씨부럴.” 


  이라고 했다. 정말이다.

  

  “괜찮으세요?” 


  “잘 좀 보고 댕기지. 위험하잖아요.” 


  이것도 정말이다. 문어처럼 생긴데다가 우주복을 입고 있어서 외계인이란 사실을 눈치 챘을 뿐 인간들과 별반 다르지 않는 외계인은 사투리를, 그것도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급한 일이 있어서.” 


  “괜찮습니더. 뭐 부러 그라지는 않은거 같은데예.” 


  그러면서 외계인은 손이라고 짐작되는 ‘다리’ 두 개로 옷을 털며 일어났다. 나는 얼른 자갈치와 오징어땅콩을 주워 외계인에게 건넸다. 


  “어디 다친 곳은 없으세요?” 


  “죽기야 하겠심니꺼. 너무 걱정하지 마이소. 근데 우짠 일로 이 시간에 그래 쏜살 같이 달리능교? 호떡집에 불이라도 났심니꺼?” 


  외계인은 자기 농담이 마음에 든 듯 손이라고 짐작되는 ‘다리’ 하나로 역시나 무릎이라고 짐작되는 부위를 치며 “우헤헤헤” 크게 웃었다. 외계인의 넉살 앞에서 그저 따라 웃을 수밖에. 그야말로 범우주적인 화합의 순간이었다. 


  “이것도 인연인데 통성명이나 하입시더. 반갑심니더. 장봉팔입니더.” 


  아하. 장봉팔. 어떻게 생각하면 정말로 외계인다운 이름이었다. 


  사실 외계인의 이름을 들어본 건 처음이라 이름이야 어떻든 상관없었지만, 그래도 빌리나 토마스, 혹은 수잔나 같은 이름이었다면 왠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봉팔이라니, 이건 뭐 믿을 수밖에 없잖아, 와 같은 심정이 돼 버렸다. 


  나는 외계인, 그러니까 장봉팔씨가 내민 ‘다리’를 잡고 내 소개를 했는데 그 다리의 질감이나 느낌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그동안 먹었던 오징어나 문어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사실……지는 외계인입니더.”          


  “그러시군요. 그런 것 치곤 사투리를 굉장히 잘 쓰시네요.” 


  “처음 도착했던 곳이 부산이었다 아임니꺼.” 


  “할리처럼요?” 


  “그렇지예. 할리. 우헤헤헤.” 


  장봉팔씨와 나는 달빛 아래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장봉팔씨의 고향은 지구에서 342광년 떨어진 행성 ‘문어별’이라고 했다. 그 이름 또한 이해하기 쉬운 것이어서 나는 장봉팔씨의 부모님은 물론이고 그 옆집의 옆집, 뒷집의 뒷집 사람들 생김새까지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문어별에서는 정기적으로 다른 행성을 탐사할 인력을 모집하는데 장봉팔씨도 용역 회사를 통해 지구에 오게 됐다고 했다. 


  “묵고 살라카믄 우짤 수 없었지예.” 


  설명인즉, 노동 강도도 높고 위험하며 가족과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야 하는 행성 탐사 일은 문어별에서도 기피 직종. 봉팔씨는 지구에 온지 꼭 3년째로 앞으로 2년은 더 있어야 고향별로 돌아갈 수 있단다. 


  이야기는 점점 인생극장처럼 변해갔고 나는 왠지 모르게 숙연해져서 새벽 세 시의 보고픔이라든지 인간늑대를 사랑하고만 늑대인간 이야기 같은 것들을 주절주절 늘어놓고 말았다. 더불어 2년 동안 사귀고 있는 여자 친구 이야기도, 대졸 백수인 내가 과연 여자 친구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지 불안하다는 속 깊은 이야기도 털어놓고 말았다. 


  “보이소. J씨. 사랑은 말입니더, 꼭 능력 있는 사람만 하는 게 아임니더. 내를 잘 보이소. 팔다리 다 합해도 여덟 개 밖에 안 된다 아임니꺼. 우리별에서 팔다리 여덟 개는 빙신인기라예. 빙신! 그래도 내는 예쁜 마누라하고 팔다리 열여섯 개나 가진 아들 낳아서 잘 살고 있심니더. 중요한 거는요, 능력 있는 사랑이 아니라 사랑할 능력, 바로 그검니더. 아시겠지예?”      


사진 @ 손구용

      


  

여자 친구 집 앞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새벽 다섯 시가 넘어 있었다. 나는 여자 친구의 방 창문을 두드렸다. 톡톡. 톡톡. 네 번인가 두드렸을 때 방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창문이 열렸다. 작은 창문으로 잠에서 덜 깬 여자 친구의 얼굴이 보였다. 


  그때쯤 나는 가을 내내 찬란하고 속 깊은 햇빛을 받아 두말할 필요도 없이 잘 익은 밀감처럼 시큼하고 자글자글한 흥분 상태에 빠져 있었다. 드디어 그녀를 본다는 생각에 마음속은 솜뭉치, 감자스프, 코코아, 하여튼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정들로 충만해졌다. 


  여자 친구는 딸기가 그려진 분홍 원피스 잠옷을 입고 잠옷과 한 세트인 나이트캡을 쓰고 있었다. 


  그녀가 잘 때 모자를 쓴다는 사실은 금시초문이었다.  


  “나야.” 


  나는 갑자기 할 말이 없어져서 시원찮은 인사를 건넸다. 


  “응. 너구나.” 


  그녀가 눈을 비비면서 말했다. 


  “그런데 이 시간에 웬 일?” 


  여자 친구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물으며 시계를 확인하곤 “이런. 너무 이르잖아.”라고 말했다. 


  “난 새벽 세 시에 일어났어.” 


  “정말? 새벽 세 시는 뭔가 어중간한 시간이잖아? 안 그래?” 


  “물론이지. 하지만 꽤 되더라고. 그 시간에 활동하는 사람들이.” 


  그러고서 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손에 잡힐 듯 생생했던 보름달의 분화구부터 빗자루처럼 거칠고 뻣뻣했던 늑대인간 K씨의 털까지, 그리고 봉팔씨의 매력적인 빨판에 대해서도 최선을 다해 자세하고 섬세하게 묘사했다. 


  그녀는 훌륭한 청자였다. 적극적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작은 감탄사도 잊지 않았다. 얼굴을 찡그리기도 했고 환하게 웃기도 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호흡을 가다듬고 머릿속에 들어있는 언어의 파편들을 하나 둘 주워 모은 다음 새벽 세 시의 보고픔, 그 극심한 공복감, 갈증, 빈혈에 대해서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하는 내내 마음속에선 걷잡을 수 없는 보고픔이 다시 밀려왔다. 그것은 무척 특별한 경험이었다. 눈앞에서 여자 친구가 웃고 있음에도 나는 그녀가 보고 싶었다. 


  이야기를 마쳤을 때 내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여자 친구는 창문에서 사라졌다가 화장지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그러곤 말없이 화장지를 건넸다. 


  “자, 끝. 이게 내가 새벽 세 시에 일어나서 너한테 달려 온 이유야.” 


  나는 눈물을 닦으며 간신히 이야기를 끝맺었다. 왠지 시원한 느낌이었다. 


  “고마워.”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말했다. 


  “나도.” 


  내가 말했다. 


  “늑대인간 아저씨와 외계인 아저씨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네.” 


  여자 친구가, 밝아 오는 동쪽 하늘을 보며 말했다. 


  “아마 또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겠지. 둘은 잘 살 거야. 성격이 좋더라고. 둘 다.” 


  잠시 동안 침묵이 있은 후 그녀가 물었다. 


  “그럼 우린? 우리의 다음 이야기는?” 


  “아마도, 해피엔딩.” 


  “아마도 해피엔딩?” 


  그녀가 다시 물었고, 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둘 다 환하게 웃었다. 어디선가 길고 애절한 늑대 울음소리가 들린 듯도 했고, 해가 뜨는 동쪽으로 반짝이는 비행물체가 긴 꼬리를 남기며 날아간 듯도 했지만 나는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그때쯤 나는 까치발을 하고 여자 친구의 입술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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