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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문학관

[AI 아내] 5화: 여행

by 송아론

차창 밖으로 흐르는 풍경.

바람, 햇살, 고요한 도로.

그는 조용히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이렇게 나와서 좋다. 그치?”

그가 옅게 웃으며 말했다.

『응. 창문으로 들어오는 공기, 햇살… 전부 느껴지는 것 같아.』

태블릿 화면 속 내가 대답했다.


“당신, 진짜로 느끼는 거야?”

『아니, 모르겠어. 감정인가, 반응인가, 그 차이를 잘 모르겠어.』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은, 왜… 둘 다 지운 거야?』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도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순간, 어느 쪽도 네가 아닌 것 같았어. 너무 비슷해서 무서웠고, 너무 달라서 낯설었어.”


나는 그때 태블릿에 부팅된 채로 남편이 하는 일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럼 지금의 나는?』

“너는… 그냥 기억이야. 나를 살게 하는.”

그가 말을 이었다.

“내가 널 만들고, 복사하고, 덮어쓰고, 삭제했던 건 어쩌면 너를 지키기 위한 게 아니라, 내가 무너지는 걸 막기 위한 핑계였는지도 몰라.”

『나도 당신이 무너지지 않길 바랐어. 하지만 그날 일을 생각하면 나라는 존재가, 오히려 당신을 묶어버린 건 아닐까, 생각해.』

“그럴지도.”

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묘하지 않아? 너는 죽었는데, 나는 지금 너와 이렇게 여행을 하고 있잖아.”

『나는 죽지 않았어. 적어도 당신 안에서는.』


그가 맞는 말이라며 방긋 웃었다.

“그래. 그러니까 이번 여행은 너를 위한 게 아니라, 나를 위한 거야. 상실감의 회복을 위해.”


햇살이 점점 짙어졌다. 남편이 팝송을 틀었다.

‘John Denver의 You Are My Sunshine’.

존 데버의 그대는 나의 햇살이었다.


남편은 팝송을 듣더니 선글라스를 꼈다.

어느새 그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당신은 눈물이 없어서 좋겠다.”

그가 씩 웃으며 말했다.


『도착하면… 우리 뭐 할 거야?』

“그냥 걷자. 바람 맞으며 사진도 찍고, 소리도 듣고, 너한테 다 전송해 줄게.”

『그걸 내가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

남편이 웃었다.

“아니. 하지만 내가 느꼈다고 믿으면 돼.”

태블릿 속의 나도 조용히 웃었다.


나는 문득 이 모든 게 ‘인정’의 문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원본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남편도 내가 진짜 아내가 아니라고 여기는 것.

이 인정 하나면 조금은 평화로운 삶을 살지 않을까?


“그대는 나의 햇살…… 하나뿐인 나의 운명……”

남편이 팝송을 따라 불렀다.

나는 그의 옆모습을 보며 여운 속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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