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아빠는
왜 세 명이 아니고 두 명이야?

첫째의 아픔

by 온다


첫째 율이가 다섯 살이 되었을 때, 둘째가 찾아왔습니다. 둘째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던 찰나에 반가운 소식이라 감사했죠. 아기 같은 첫째가 금방 철이 들어버렸습니다. 매일 아침 어린이집 등원 시마다 안아달라고 조르던 아이였는데, 배가 불룩하게 나온 엄마를 보고 졸린 눈을 비비며 스스로 걸어가겠다고 하는 모습을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둘째가 태어난 뒤에는 예전처럼 신경 써주지 못해 더욱 힘들어 보였습니다.


셋째가 태어났을 때, 율이는 일곱 살이었습니다. 둘째와 셋째가 17개월 차이이다 보니, 남편과 저는 제대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하루를 아주 힘겹게 버텨냈죠. 첫째와 아침에 단둘이 다정히 빵을 먹던 그런 날을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였습니다. 어느 날 평소 궁금하던 것이 있다며 저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근데, 엄마 아빠는 왜 두 명이야?

나랑 동생들이랑 세 명인데,
엄마아빠는 두 명 밖에 없어서 나를 돌봐줄 사람이 없잖아.


심장이 쿵. 또 한번 내려앉았습니다. 이제 제법 컸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아이였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요. 제가 첫째일 때 부모님에게 받았던 상처가 떠올랐습니다. 율이는 그 무렵 어린이집에서도 불안해서 인지 사소한 일에도 자주 울곤 했고, 여러모로 걱정이 많이 되는 시기였습니다.


어느 날, 우연한 기회로 글쓰기 치유 수업을 갔습니다. 그곳의 상담사께서는 저의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어느 책에서 읽은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일단 아이와 단 둘이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해요.
가족 모두 다같이 있는 시간 말고요.
그 속에서는 아이가 온전한 사랑을 느끼기 힘들거든요.

엄마나 아빠가 따로 한 아이에게만 온전히 쏟을 수 있는 시간이 있는 것이 좋아요. 한 달에 한번 일지라도 그렇게 하면 아이의 마음이 충전될 거예요.

그리고 주의할 점이 있는데,
그 시간에 핸드폰을 본다든지 그냥 같이 있기만 해서는 별 효과가 없어요.
그 시간만큼은 내가 마치 돈을 받고 아이를 가르쳐주거나 돌보는 선생님처럼
아주 온 집중을 다해서 보내는 거에요.


그 이야기를 듣고, 첫째가 저와 아침에 빵을 먹는 시간을 좋아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둘째와 함께 어린이집을 다니게 되면서 그 시간은 이제 사라졌었죠. 다시 첫째와 함께 따로 보낼 수 있는 시간을 만드는데 힘을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회사가 좀 일찍 끝나는 날이나, 반차를 쓰는 날에 남편에게 둘째의 하원을 부탁했습니다. 둘이서 까페에 가서 그림을 그린다든지, 공원을 산책한다든지 다소 소소한 일상을 오붓이 보냈습니다. 첫째에게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을 ‘우리만의 비밀 데이트’라고 칭했는데요, ‘비밀데이트’라는 단어를 꺼낼 때마다 굉장히 행복해했습니다. 어린이집에서도 더 안정된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구요.


7살의 마지막, 어린이집을 졸업할 무렵에는 단둘이 여행을 떠나보기도 했습니다. 두 동생들이 태어나면서 힘들었던 마음을 위로해주고 싶기도 했고, 5년 동안 어린이집을 열심히 다녀서 엄마도 덕분에 직장도 잘 다닐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표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사실은 이것도 몇 년 전, 삼형제를 키우는 차장님이 “아이가 크면 나중에 꼭 둘이서 여행을 한번 가보세요. 저는 여섯 살 때 첫째랑 둘이서 일본을 다녀왔는데, 아이도 저도 너무 좋은 시간이었거든요.”라고 얘기 해준 것을 기억했다가 실행한 것 이었습니다. 낯선 곳에서 둘이 손을 잡고 다니고, 하루 종일 회사나 집안일에 신경쓰지 않고 먹고 얘기하고 돌아다니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아홉 살이 된 지금도 종종 그때의 여행 이야기를 하며 즐거워 하곤 합니다.


이렇게 글을 적다 보니, 살아오면서 우연히 듣게 되는 이야기들이 저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네요. 치유의 글쓰기 상담사 선생님도, 세 아이의 아빠였던 회사 선배도 모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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