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과 두려움이 없는 죽음이란 없다
#1
'죽고 싶다' 라는 생각은 여러 번 했던 것 같다.
가장 처음 생각을 했던 것은 열살 때 한 뉴스를 보고서였다.
초등학생 6학년이 비관적인 가정의 분위기로 인해 자살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앵커는 무척이나 어린나이에 이런 선택을 하는 것이 놀랍고 안타깝다고했다.
믿을 수 없는 소식이라고 했던 것 같다.
그 순간 나의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생겼다.
'왜 그 나이에 그런 생각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지? 난 지금 죽고 싶은데'
살아갈 용기가 없었던 것 같다.
부모님의 불화와 아버지의 알콜 중독으로 인한 재정적인 어려움
용기를 내어 구인 신문을 보고 신문배달사에 전화해봤지만
"안돼, 너무 어려"
라는 말을 듣고 울어버렸다.
죽고 싶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왜 태어나야했는지 알 수 없었다.
아파트 베란다 화단을 내려다 보면서 '아프겠지' 라는 생각을 했다.
무서웠다.
그래서 생각해봤다.
'나는 죽고 싶은 걸까? 아니면 이렇게 살고 싶지 않은 걸까?'
죽고 싶다기 보다는 이렇게 사는 모습이 싫었던 것 같다.
'그럼 어떻게 살고 싶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 아이러니하게도 아빠의 도움을 받아 무수히 많은 책을 읽게 되었다.
#2
그 이후로 나는 아주 열심히 살아왔다.
내가 원하는 삶, 내가 원하는 모습의 나를 찾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실천했다.
내가 원하는 꿈도 찾았다.
그러다 다시 한번 위기가 찾아온 것은 아버지의 죽음이었다.
동생은 고1이었고, 어머니는 일을 그만둔지 오래인데다가 교통사고 휴우증이 있었다.
장례식엔 거의 사람이 찾아오지 않았고, 그때 운이 좋아 꽤 저렴한 납골당에 아버지를 안치 할 수 있었다.
온 집안을 뒤져도 100원 하나 나오지 않을 때였다.
당시 재수 수능을 치룰 때였는데, 원하는 대학마져 떨어지고 말았다.
이제는 모두 끝이라 생각했다.
열심히 살았는데, 정말 정말 나는 열심히 착하게 살았다 생각했는데
아버지는 죽음을 택했고, 집안은 희망하나 없었다.
아버지가 좋아하던 아버지의 삼촌이 있었다.
그분은 스님이셨는데
아버지를 화장할 때 목탁을 두드리며 기도를 해주셨다.
화장이 끝나면서 나에게 물으셨다.
"살아갈 방도는 있느냐?"
나는 말했다.
"어떻게든 살아야 가겠지요"
사실 그건 거짓말이었다.
살아갈 방도라는 것은 없었다.
이제는 정말 죽음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옷을 챙기고 나가서 오늘은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나를 붙잡은 것은 동생이었다.
"언니, 어디가?"
"나 죽으려고"
"안돼 언니. 언니마져 없으면 난 안된단 말이야..."
동생은 흐느껴 울었다.
그때 다짐하게 된 거같다.
아빠 대신 내가 동생과 엄마를 지키는 거라고
그렇게 아빠가 나에게 부탁하고 떠났을 거라고
나는 그렇게 그날 죽음을 선택하지 않았다.
#3
동생은 늘 웃고 다녔다.
싫은 소리 한번 하지 않았고.
힘들다는 소리 한번 하지 않았다.
그녀를 사랑했던 좋아했던 그 많은 친구들에게조차
지나가는 말로 "요새 조금 힘들어"라고만 얘기했을 뿐이다.
왜인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같은 환경에서 자란 자매의 다른 길인 것 같다.
매 순간 모든 감정을 던지는 나,
매 순간 모든 감정을 삼키는 동생
#4
동생이 죽음을 선택한 뒤로 나도 죽고 싶었다.
여러가지로 죽음의 방법에 대해 검색해봤다.
생각을 해봤다.
하지만 어느 하나 고통스럽지 않고, 두렵지 않게 죽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것이 절망스러웠다.
엄마도 위험한 선택을 할까 두려운 나여서
술이 취해 엄마를 붙잡고 울었다. 제발 죽지 말아달라고
그러자 엄마가 말했다
"걱정 말아라, 나는 용기가 없어서"
#5
상담사에게 들었다.
죽음에도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자살은 우발적이기 보다 오랜시간 생각해온 경우가 많고,
양가적인 감정으로 잘 살고 싶은 마음이 있단다.
내 동생도 죽기 전날까지도 공부를 하고 여행계획을 짰다.
앞으로 어떻게 살지에 대해서도 촘촘하게 짜여져있었고,
회사에서도 늘 웃는 낯으로 열심히 했단다.
유명인들의 죽음에도 그런 것들이 있었다.
앞으로의 계획도 있었고, 평소와 다름없는 스케줄을 진행하고.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다는 듯이 벌어지는 일이다.
하지만, 그 본인들은 서서히 말라가고 있었고
생각은 구체화 되어 실현되었다.
죽음에도 에너지와 용기가 필요하다.
고통과 두려움을 넘어서 이 생을 끝내겠다는 에너지와 용기.
그래서 우울증을 심하게 겪는 사람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은
바닥을 치고 올라왔을 때란다.
#6
정작 죽고 싶은 사람은 죽고 싶다고 함부로 얘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죽고 싶다고 죽을 상을 하며 이야기를 늘어놓는 사람은
실제로 죽고 싶다기보다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관심을 가져주고, 잘 살아보고 싶기 때문이다.
죽고 싶은 사람은 조용히 죽음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한다.
점점 그 생각이 구체화 될 때까지
그 기간에도 분명 신호(Sign)이라는 것이 있다.
뒤돌아 보고 나서야만 알았지만,
사실은 살려달라는 신호였다.
그 신호에 대해 몰랐던 자신을 탓했다. 아주 오랫동안
훈련을 받은 사람도 그것을 캐치(catch)하기 힘든데
당연한 것이라 말했지만
혈육으로써, 이상함 낌새를 아무일도 아니겠지라며 애써 넘어간 그 순간들이
계속해서 리플레이 되고 있다.
죽음은 누구나 맞는 과정이지만,
그것이 이 삶의 무게가 버거워 본인이 선택을 미리 했다는 것이
너무나도 서글프다.
얼마나 아팠을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아 얼마나 힘들었을까
조용한 그 신호에 모두가 귀를 귀울이며 함께 이 삶을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