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에는 반드시 목격자가 필요하다(1)
생명의 은인
#1
장례식장에서 상주를 했다.
손 윗사람이 손 아랫사람의 상주를 하는 것은
도리에 맞는 것이 아니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내가 해야만 했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난 지 15년이 넘었고,
엄마는 자식을 잃은 슬픔에 정신이 온전할 수 없다.
나라고 정신이 온전하겠느냐마는
아빠의 초라했던 썰렁했던 그런 장례식이 안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것이 정말 동생을 위한 일인지 알 수도 없지만
꿋꿋하게 자리를 지켰다.
#2
하나 그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예기치 못한 사고
하나같이 울면서 나에게 말했다
"지난주에 밥을 먹었어요,
웃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어요"
"힘들다고는 했지만,
누구보다도 열심히 할 의지를 가졌어요"
"죽었다고 하는 날, 그날 말이에요,
핸드폰 배터리를 바꿨다며 기분이 좋다고
카톡을 분명 남겼거든요.
배터리를 바꿔서 편하고 기분이 좋다고요.
바로 몇 시간 전에요"
나는 그들을 보며 말을 삼켰다
"미안해요, 여러분.
소중한 친구를 앗아간 것은 제 잘못이에요.
제가 동생을 떠민 것 같아요. 미안해요"
애써, 마음을 가다듬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문을 받으며 평소에 잘 보지 못했던
동생의 친구들을 한 번이라도 더 보며
친구들을 좋아했다는 말을 건네며
마음속으로 삼킨 한마디
"사랑하는 친구를 앗아가서 미안해요. 모두 저 때문이에요"
#3
우리 회사 내에서 마음건강삼담센터가 있다.
지난 몇 년 간 힘든 시기를 겪으며 상담을 받았고, 상담이 종결이 된 지 얼마 안 된 터였다.
친한 선배분이, 그 사실을 알고는
나를 오랫동안 상담했던 상담사님에게 연락해
만날 수 있게 해 주었다.
전화통화를 하면서
혹여라도 누가 들을까 봐 말해다
"상담사님, 동생이 죽은 게 저 때문인 것 같아요"
상담사님이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어요.
하지만 그건 결코 아니에요. 만나서 얘기해요"
장례식 와중에 편안하게 만나서 얘기하기엔 쉽지 않았다.
상담사님은 언제든지 시가 장소 불문하고
연락하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4
발인 전날,
동생을 좋아하던 친구들이 집에 가다가 다시 돌아왔다
동생의 영정 앞에서 울면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고 얘기했다.
나는 3일 동안 꼬박 날을 새다, 마지막 날 잠시 눈을 붙이며
"미안해요, 사랑하는 사람을 이렇게 떠나보내게 해서 미안해요. 모두 제 탓이에요"
라며 눈물을 흘렸다.
#5
장례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점심을 먹었다.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붙잡고 있던 정신이 점점 흐트러졌다.
나 때문에 동생이 죽음을 선택한 것만 같고,
그래서 난 살인자가 된 느낌이고
손이 달달달 떨렸으며, 가슴의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눈을 감고 잠에 들면,
동생을 발견했던 시신 모습 그대로
"언니 때문이 맞아"라며 다가올까 봐 잠도 못 들 것 같았다.
바들바들 떨며 상담사님에게 연락을 했다.
이렇게 갑자기 보자고 하는 것이 실례일 것 같았는데
상담사님으 예견했다는 듯이 따뜻이 말했다.
"그럼요. 5시쯤 편하신 장소에서 만날까요?"라고
#6
참 이렇다 저렇게 신경 쓸 것 없이
나를 알아볼 수 없는 지역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그냥 눈물부터 쏟아져내렸다.
그때 깨달았다.
이분은 직업의 소명의식으로
온 마음을 다해 내가 살 수 있도록
나를 도와주고 싶다고 하는 것을
시간과 관계없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내 이야기 속의 오류에 대해 잡아주거나,
임상심리학적으로 상담사님이 알고 있는 이론으로
나의 왜곡된 인지를 바로 잡고 내 편이 되어주었다.
나는 그날 밤 약이 없이도 그럭저럭 잠이 들 수가 있었다.
#7
그 뒤로도 주 3~4회 정도,
전화를 하거나 메신저를 하거나 만나곤 했다.
그때는 내 살길이 그것밖에 보이지 않아서 그랬는데,
지금 정신이 약간 돌아온 상태에서 보니
그분은 그런 의무를 굳이 가질 필요도 없었고,
그렇게까지 일할 필요도 없었다.
오로지 본인의 직업에 대한 신념과 신앙으로
나를 운명처럼 만나서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한 듯하다.
만나는 내내 그 진심이 느껴졌다.
만나는 내내 나는 울었고, 나 때문이라 했다
상담사님은 만나는 내내 나 때문이 아니라 했고
나의 울음을 지켜봐 주었다.
#8
나의 가장 큰 은인 Y 상담사님
이 분이 없었다면
나는 또 대를 이어 내 아이들에게 슬픔을 주고 말았겠지
지금은 멀어졌지만,
Y 상담사님께 소식을 알리고
바로 상담을 시작할 수 있게 했던 선배 K 님
자살 유가족의 극복은 참으로
여러 사람의 도움 없이는 힘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