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격되지 않은 슬픔
때론 슬퍼하는 사람 곁에 있기를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적절하게 해줄 말을 찾지 못할까 봐 두려워서 그럴 수도 있고,
슬픔에 빠진 사람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할지 몰라서 그럴 수도있다.
<의미수업> 데이비드 케슬러
#1
사실은 두려웠다.
나는 내가 가난하게 보이는 것에는 익숙하다
하지만 '불쌍하다'가 아닌 '멋지다'로 보이고 싶다는 것이
내 최후의 자존심이었다.
가진 것이 없어도
내가 이뤄낸 것
내가 가족을 이끌어가고 잘 살아가는 것
부자는 아닐지라도
멋지게 살아가고 있는 그런 사람
그게 내가 원하는 그런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는 다시 또 너무 불쌍해졌다.
동생의 자살
자살 유가족
#2
모르겠다.
가족의 죽음에 대해 우리나라의 회사에서
주는 공가라는 것이
너무나도 기계적이다.
부모장은 5일
그 외의 직계 가족은 3일이다.
가족을 잃고서 3일, 5일만에
그 마음이 회복이 될 수 있을까?
#3
나는 감사하게도
회사의 많은 주변 동료들과 상사들의 배려로 인해
남은 연차를 모두 소진하고
마침 그 해에 생겼던, '가족 돌봄 무급휴가'를 사용하고
3주 후에 복귀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3주도 너무나 짧았다.
장례식장부터 시작해
사람 하나 죽고나서 처리할 일이 이렇게도 많은지 몰랐다.
자식을 잃은 슬픔을 가진 엄마를 추스리는 일도 쉽지 않았다.
#4
회사에 돌아가기 직전
사실 나는 두려웠다.
나를 모두 불쌍한 시선 아니 차마 나와 눈을 마주치지도 못할 것 같아서
같은 회사를 다녔기에
소문이 무성하게 이미 퍼졌을 것 같아서
나를 보는 시선들이 무서워서
나를 쳐다도 못볼 것만 같아서
Y 상담사님은
"왜요, 도움을 좀 받으면 어때요? 불쌍하면 어때요? 그것이 뭐가 달라지나요?"
라고 말했지만,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적어도 부자는 아니어도
멋지게 잘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불쌍하지 않다는 그 자존심
그것이 매우 괴로웠다.
#5
모두가 느끼는 바, 이겠지만
사람들은 생각보다 남의 인생에 관심이 없다.
좋든 나쁘든 딱히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 지나치게 관심을 갖지 않는이상
자기 자신의 생각으로 꽉 차있으며,
다른 사람에 대한 생각도 자기에 관련된 것으로 이루어져있고
누구나 자기 손톱 밑의 가시가 가장 아픈 법이다.
동생과 같은 회사였기 때문에
소문이 많이 퍼지고 모두가 날 바라보며 어쩔 줄 모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모두들 자기 삶 이외에는 관심이 딱히 없었다.
#6
회사 동료들 혹은 지인들의 반응은 3가지 케이스로 나눌 수 있었다.
1) 적극적으로 나를 도와주기 위해 귀를 기울여주고,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들
2) 나를 좋아하지만, 어떻게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는 사람들
3) 내가 상황이 좋을 땐 좋았지만, 이럴 때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거나 피하고 싶은 사람들
#7
나는 내가 친했다고 생각했던 사람중에
3번의 케이스에 엄청 상처를 많이 받았다.
평소에 늘 함께 웃고 슬퍼하던 동료인데
나의 지극한 슬픔에는 화들짝 놀라며 피했다.
내가 조금이라도 슬픈 기색과 힘들어하는 얘기를 꺼내고자 할 낌새가 보이면
그들은 부리나케 자리를 피하며 정리했다.
내가 좋은 기색일 때만 말을 걸거나
극도로 모든 것을 피했다.
최대한 이성적으로 생각을 해보자면
내가 겪지도 않은 슬픔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못하는 예의일 것이라 생각한다
#8
경조사를 경험하며 사람들에 대한 정리가 된다고 했던 말
경사보다는
조사가 좀더 그리하다는 말
옛말은 정말 틀린 것이 없는 걸까
이것은 단순히
장례식장을 오고
위로의 말을 건네는 그 자체가 아니다
나의 관계들이 명확해졌다.
그에 대해서 (처음에는 탓했지만)
탓할 이유는 없다.
사람들은 본래 명확하게 철저히
좋으나 싫으나 자신의 이익, 좋아하고 싫어함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니까
#9
나 역시도 반대로
누군가의 조사에 대해
그만큼의 슬픔의 공감을 못해줬을 수도 있다
그 사람이 나에게 기대하는 바에 대해서 말이다.
처음에는 정신이 온전치 않아 원망스러웠지만
이제는 더이상 그들에게 원망감따위 남아있지 않다
다만,
나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어주고 함께해준
직장 동료들과 친구들이 있기에
내가 살아 있다는 분명한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그들에게 나는 마음의 빚을 지고 있고
나는 그것을 철저히 갚으면서 열심히 살아가려고 한다
#10
직장 동료
철저히 이해관계로만 이루어진
직장으로 인해 맺어진 관계
나에게는 3명의 후배가 있었다
4명이서 한 팀이었다.
사실 내가 많이 좋아했지만
그만큼 정이 돌아오지 않아 원망을 했었다.
하지만 그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회사를 계속 다니지 못했을 것 같다.
어느 날 문득 일을 하다가
갑자기 휴가를 내고 집에 가버려도
소리없이 눈물을 뚝뚝 떨어뜨려도
그들은 모른척 해주었다.
그들 모두 형제와 자매가 있기에
좀더 공감하며 슬퍼했던 것 같다.
"나 때문에 미안했어. 그리고 이렇게 잘 지내줘서 고마워"
라는 말에
"아무렇지 않게 대하려고 노력했어요. 잘 지내줘서 고마워요"
라는 대답을 듣고 펑펑 울었다.
#11
나의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내 동생의 지인들
모두가 나의 은인이다.
나는 내 아이들과 남편을 위해 살기 위해
여기저기 울부짖었고,
나의 사람들은 내 그 울음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내 편이 되어주었고
나의 아픔과 슬픔을 충분히 지켜봐주었다.
나는 그럼으로 인해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슬픔은 반드시 충분히 목격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