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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페지오 Jul 14. 2023

2막 1장

강의를 끝낸 후 학생들에게 묻고 싶었다. 한 학기 동안 함께 한 시간이 어떠했는지, 어떤 것을 개선하면 좋을지, 수업 내용은 잘 이해했는지...

그러나 생각보다 한 학기라는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기말고사를 보고 나니 성적 마감 등 처리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학생들과 대화할 시간이 없었다. 다른 과목 시험이 연달아 있으니 시험을 본 이후에는 학생들도 바빠서 만나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흐지부지 한 한기가 종료되었다.


분명 모든 것이 다 끝났는데 찜찜한 기분이 계속되었다. 강의는 학생들을 위해 하는 것이니 학생들의 평가를 듣고 싶었는데 그들의 의견을 알지 못하니 답답했다. 학생들은 자신의 학점을 보기 위해 강의 평가를 해야 한다. 그러니 강의 평가는 이미 입력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를 볼 수 없는 나는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화장실에서 뒤처리를 못 같은 찜찜한 상태로 몇 주를 기다려야 했다.


몇 주를 기다린 후 드디어 강의 평가를 열람할 수 있다는 메일이 도착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버튼을 눌렀고 숫자로 매겨진 점수는 냉정했다. 평균보다 높은 점수였지만 기대했던 만큼의 점수는 아니었다. 많은 노력과 시간을 쏟았고 성심성의껏 모든 학생을 대했는데 내 기대가 너무 높았나 하는 생각에 애써 서운함 마음을 억눌렀다.


그래도 강의 평가를 확인하고 나니 이제야 비로소 한 한기가 끝난 것 같다. 이제는 2학기 강의 준비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숫자로 매겨진 점수는 내 기대에 못 미쳤지만 한 학생이 남겨 준 따스한 말이 나를 다독여주었다.

 '어려운 과목이었지만 판서하면서 상세하게 설명해 주셔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번 학기에 가장 좋았던 수업이었습니다.'


학생들은 알까? 학생들의 따스한 말 한마디가 나를 힘나게 하고 나를 일으켜 세웠다는 것을.


강의를 시작하고 두 달쯤 되었을 때 슬럼프가 왔었다. 갑자기 맡게 된 강의라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강의 준비를 하다 보니 체력이 바닥이 났다. 통학 거리가 멀어서 몸도 축났던 것 같다. 쉬려고 은퇴한 건데 내가 왜 이러고 있나 하는 회의가 들었다. 오월의 어느 날, 지친 몸과 마음을 끌고 강의실에 들어갔는데 작은 꽃 한 송이가 교탁에 놓여 있었다. 오늘이 스승의 날이라는 것을 꽃을 보고서야 알았다. 그 꽃 한 송이가 지친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 주었다.

 

25년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모교의 강단에 서는 것으로 인생의 2막 1장을 시작했다. 강의를 하게 되어서, 이렇게 마음이 따스한 후배들을 만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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