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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페지오 Jul 29. 2023

은퇴 후 20개월

은퇴를 한 지 벌써 20개월이 되어 간다.

사람들 때문에 아팠던 기억도 희미해지고 아무런 조치도 해주지 않던 회사에 대한 원망도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이번 달에 같이 일했던 직원의 결혼식이 있다. 입사할 때부터 지켜보았고 아끼던 직원이라 결혼식에 가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예쁜 모습을 보면서 축하를 해주고 싶은데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마주해야 하니 결혼식 가는 것이 꺼려진다. 몇 주 고민하다가 축의금만 보내겠다고 동료에게 문자를 보냈더니 그러지 말고 결혼식에 같이 가자고 한다.


회사에서 잘린 것도 아니고  발로 걸어 나온 것인데 결혼식에 못 갈 이유가 없다고 합리화를 해 보지만 그래도 여전히 회사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망설여진다. 다시는 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얼굴들을 보고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근황을 주고받아야 할 것을 생각하면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다. 아무 핑계라도 대고 결혼식에 가지 않겠다는 마음과 결혼식에 가서 예쁜 신부를 직접 보고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이 서로 싸우고 있다.


어떤 마음이 이길지 모르겠지만 20개월이 지났는데도 내 마음은 아직 완전히 치유되지 못했나 보다. 죽도록 미운 사람들을 보지 않고 괴롭힘을 당하지 않으니 잊고 있었던 것일 뿐 나의 아픔은 아직 그대로 있었던 것 같다.


시간이 얼마나 지나야 회사로부터 받은 상처에서,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얼마 전 어린 교사가 자살을 했다는 기사를 보고 너무 마음이 아팠다. 내가 회사에서 받았던 상처도 같은 상처였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지 사람들은 점점 더  배려하지 않는다. 그들은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더 많은 것을 누리기 위해, 그리고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처참히 짓밟는다. 


누가 이런 세상을 만든 것일까? 악귀보다 더 무서운 괴물들이 우리들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세상이 너무 암담해서 마음이 아리다. 석양에 물든 하늘처럼  마음도 어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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