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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페지오 May 05. 2023

새로운 시작

은퇴하고 일 년 정도 지났을 즈음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선배는 대뜸 강의를 해 볼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갑작스러운 제의였고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제안이었지만 해보겠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디에서 그런 용기가 나온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저 하고 었다.


그렇게 나는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모교 강단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초기에는 익숙하지 않은 환경과 오랜만의 출퇴근이 힘들어서 후회를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새로운 삶에 만족한다.


무엇보다 일주일에 두 번 가야 할 곳이 있다는 것이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어서 행복하다. 이 좋은 계절에 멋진 교정에서 학생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부하는 것이 즐겁다.


오십이 넘어서야 내가 공부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해야 하니까 필요하니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공부를 사실 좋아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수업 준비를 위해 공부를 하다 보면 아드레날린이 샘솟는 것을 느낀다. 말에도 공부를 하고 새벽에도 공부를 하고 틈만 나면 공부를 하는데 그저 즐겁기만 다. 지인들은 얼마 벌지도 못하면서 몸을 고생시키고 있다며 나무라지만  그래도 나는 공부하는 것이, 강의하는 것이 좋다.


생각해 보면 내 인생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내가 지쳐 쓰러지려 할 때마다 홀연히 나타나서 나를 다독이며 끌어주었고 인생의 고비가 찾아올 때면 내게 새로운 문을 열어 주었다.


은퇴하고 일 년 남짓 지났을 때 갑자기 걸려 온 선배의 전화도 우연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대학교 때부터 나를 주욱 지켜보았던 선배이다. 대학원을 졸업한 이후에도 연구실 모임이 있을 때마다 혹은 동창회가 있을 때마다 만나곤 했지만 따로 연락하고 지내는 사이는 아니었다.

은퇴하고 평온한 일상을 지내던 어느 날 선배가 불쑥 전화를 했고 물었다.

"혹시 강의를 해 볼 생각이 없니? 너라면 믿고 맡길 수 있을 것 같아서 연락했어."

 

그렇게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었다.

강의로 인해 내 인생이 어떻게 변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


선배의 전화를 받고 강의를 겠다고 결심했던 날에 이렇게 메모를 해 놓았다.


새로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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