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좋아하지만 본방사수는 하지 않는다.
나의 일상이 어딘가에 매이는 것도 싫고 처음에는 괜찮은 듯하다가 끝으로 갈수록 이상해지는 드라마를 보면서 시간 낭비하는 것도 싫어하기 때문이다.
이런 내가 유일하게 본방사수를 한 드라마가 바로 "나의 해방일지"이다.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도저히 종영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서 주말 밤마다 혼자 TV를 켜고 숨죽이며 보았다. 순식간에 빠져들어서 OST를 무한 반복해서 들었고 본방을 본 이후에도 같은 회차를 두 번, 세 번 보고 또 봤다. 드라마가 종영한 후에도 한동안 여운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가 왜 그렇게 좋았는지 잘 모르겠다. 조직 폭력배 생활에서 도망쳤지만 알코올로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는 구 씨,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인해 형제들과는 다르게 사는 듯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한 여린 첫째, 편의점 대리로 성실하게 살고 있지만 매일 똑같고 더 나아지지 않는 하루를 힘겹게 버텨내고 있는 둘째, 착하디 착한 성격 때문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서 서른도 되기 전에 웃음을 잃어버린 막내, 그리고 가구를 만들고 부업으로 농사까지 지으면서 아등바등 살고 있는 그들의 부모.
어떻게 보면 나와는 별로 공통점이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는데 그들의 이야기가 마음속 깊이 다가왔다. 등장인물 모두가 드라마의 주인공이어서 좋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회차는 구 씨가 주인공이었고 어떤 회차는 막내 미정이 주인공이었다. 그리고 어떤 회차는 세 형제의 엄마가 주인공이 되어 엄마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새롭게 펼쳐졌다. 한 회 한 회마다 각자의 시선에서 그들만의 서사가 펼쳐지니 매번 새로운 드라마 같았다. 등장인물 모두를 응원하면서, 그리고 그들이 온전히 해방되기를 바라면서 마치 주변 사람의 이야기인양 감정이입을 하면서 보고 또 보았다.
나에게는 인생 드라마로 주저 없이 꼽을 수 있는 드라마였고 당연히 다른 이들도 좋아할 거라 생각했는데 지인들과 이야기를 해보니 호불호가 나뉘었다. 드라마 분위기가 너무 어둡고 우울해서 보다가 그만두었다는 이들도 있었고 호스트바 출신인 구 씨의 스토리가 공감이 되지 않아서 아예 보지 않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호불호가 나뉜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나의 해방일지"를 좋아하는지 물어보곤 했는데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본 후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일상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꾸는 사람들은 이 드라마를 좋아하고 지금 일상에 만족하는 사람들은 이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음악을 좋아해서 운전을 할 때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항상 음악을 듣는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나의 선곡 리스트를 보고 제목에 "새"라는 단어가 들어간 노래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랫동안 좋아하던 곡들도 있지만 최근에 좋아하게 된 곡들까지 다양하게 섞여있는데 왜 유독 "새"라는 제목이 많은 걸까 궁금해졌다. 며칠을 고민해도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답답했는데 무심코 하늘을 바라보다가 날아가는 새를 보고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아! 나는 어디론가 훨훨 날아가고 싶은 거구나. 이 모든 것을 훌훌 털고 훨훨 날아가고 싶은 거였구나.'
아이의 수험생 시절, 퇴근 후 파김치가 된 몸을 끌고 대치동 학원으로 출근해서 외계어 같은 입시 설명회를 듣고 또 듣던 날, 문득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는 아이 혼자 알아서 하는 거라며 친구들과 여행을 다니고 골프를 치러 다니는 남편처럼 나도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내 인생을 즐기고 싶었다. 그러나 아빠가 저렇게 무심한데 엄마인 나까지 아이를 내팽개칠 수는 없었다. 애써 마음을 추스르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전람회의 "새"를 들었다.
직장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서 분노가 가득 차 있었지만 다른 사람에게 화풀이할 수도 없으니 멍이 들 정도로 내 가슴을 치던 날에는 시나위의 "새가 되어 가리"를 들었다.
어이없는 일로 남편과 다투고 집에서 나왔는데 막상 갈 곳이 없어 집 근처 공원에서 하염없이 울던 날에는 페퍼톤스의 "새"를 들었다.
훨훨 날아간다는 가사를 들으면 나도 같이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 훨훨 날아간다는 가사를 듣고 또 듣고 나면 잠깐이라도 어디론가 다녀온 것 같았다. 그렇게 노래에서 위로를 받고 나면 학원 설명회로, 집으로, 회사로 다시 되돌아갈 수 있었다.
생각해 보니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도 나에게 그런 위안을 주었던 것 같다.
가까이서 보면 인생은 아름답지만은 않다. 우리 모두 벗어나고 싶은 굴레가 있지만 하는 수 없이 그 짐을 떠안고 살아간다. 그 굴레는 생계를 위한 벌이일수도 있고, 가족과의 질긴 인연일 수도 있고, 끊어내지 못하는 연인과의 관계일 수도 있고 사람들마다 다양하게 존재할 것이다.
이 모든 것들로부터의 해방을 꿈꾸는 이들에게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