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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저씨

by 아르페지오

나에게 인생 드라마를 꼽으라고 하면 "나의 아저씨"와 "나의 해방일지"를 주저 없이 선택할 것이다.


"나의 아저씨"는 2018년 3월에 tvN에서 방영된 드라마이고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인생 드라마로 회자되었다. "나의 아저씨"가 처음 방영될 때부터 이 드라마를 좋아할 것을 알았지만 정작 이 드라마를 보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회사를 다닐 때는 드라마를 보면 너무 우울해질 것 같아서 그리고 그 우울을 견디지 못할 것 같아서 플레이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그리고 은퇴한 이후에는 겨우 평온을 찾았는데 또다시 우울에 전염되고 싶지 않아서 플레이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그러다 우연히 TV에서 한 회차를 보게 되었고 1회부터 정주행을 시작했다.

드라마를 보고 나니 왜 많은 사람들이 "나의 아저씨"를 인생 드라마라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 드라마에는 우리 모두의 삶이 녹아있었다. 그리고 가족에 대해, 삶에 대해, 진정한 어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어떤 이는 삼 형제의 엄마의 시선으로, 어떤 이는 첫째의 시선으로 그 사람이 마치 나 같아서 답답하기도 하고 짠하기고 한 심정으로 이 드라마를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이는 박동훈 부장에게, 그리고 어떤 이는 셋째에게, 그리고 이지안에게 감정이입을 해서 드라마에 빠져들지 않았을까 싶다.

25년의 직장 생활에서 쓴맛을 제대로 보고 은퇴한 나는 박동훈 부장의 시선에서 드라마를 보았다. 박동훈 부장이 울 때 나도 숨죽이며 같이 울었다. 배우들은 직장 생활은 해보지 않았을 텐데 어쩌면 저렇게 회사원의 고뇌를 잘 표현하는 걸까? 배우 이선균은 보이지 않았고 그는 박동훈 부장 그 자체로 보였다. 마지막에 박동훈 부장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환하게 웃을 때는 나도 같이 웃었다. 대체 작가가 누구이길래 직장 생활에 대해 이렇게 적나라하게 알고 있을까? 난생처음 드라마 작가의 배경까지 궁금했던 드라마이기도 했다.


나의 직장 생활도 박동훈 부장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회사는 약육강식의 세계, 동물의 왕국 그 자체였다. 서로 물고 물어뜯었으며 약자는 모든 것을 빼앗겼다.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남녀 간의 경쟁 구도가 추가되었다는 것이다. 위로 올라갈수록 남자들은 꽁꽁 뭉쳐서 여자들을 쳐내려 했다. 여자들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100명도 안 되는 조그만 지사에 여성 임원은 두 명뿐이었으니까. 없는 흠이라도 만들어서 여성은 이사 직급에 올라오지 못하게 막았다. 내가 부장에서 이사로 올라가는데 자그마치 8년이 걸렸고 이것은 다른 남자 직원들, 혹은 나보다 더 경력이 짧은 남자 직원들에 비해 두 배가 더 걸린 시간이었다.


이사로 진급한 이후에도 직장 생활은 순탄치 않았고 결국 두 손, 두 발을 들고 제 발로 걸어 나왔다. 이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은퇴한 지 벌써 3년이 넘었지만 내 또래 남자 직원들은 여전히 같은 회사를 잘 다니고 있다.


회사를 그만둘 무렵 나를 무너지게 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다. 같은 팀에 있는 직원 전체가 내가 팀장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상사에게 찾아가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 (당시 우리 팀에는 팀장이 없었고 세일즈 매니저가 팀장 대행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상사는 끄떡하지 않고 나에게는 자질이 부족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부족한 자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지만 내가 여자라서 그 자리에 오를 수 없다는 의미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다행히 나도 은퇴를 한 후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 강사 3년 차가 되니 강의도 익숙해졌고 일을 즐기면서 할 수 있게 되었다. 시간강사 월급이 박봉이라고 하지만 강사에게 주어지는 혜택은 생각보다 많다. 학교 도서관에 가서 실컷 책을 볼 수 있고 교정을 거닐면서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도 있다. 교내 대부분의 시설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실컷 공부를 할 수도 있다. 비싼 등록금을 내지 않고도 이 모든 것들을 누릴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대체 어떤 회사에서 이렇게 좋은 환경을 제공해 줄 수 있을까? 이제라도 보람과 기쁨을 주는 일을 찾아서 정말 다행이다.

25년이나 회사원으로 살았기에 회사원의 입장에서 드라마를 보았지만 "나의 아저씨"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드라마였다. 드라마 제목에서 암시하는 것처럼 진정한 어른은 어떤 사람일지 고민하게 했다. 아마도 작가는 팍팍한 세상에서 나의 아저씨 같은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기를 바랐던 것 아닐까?


젊을 때는 여유가 없어 주변을 둘러보지 못했지만 나이가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세상에는 내가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리고 나에게는 작은 선의일지라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드라마를 통해 깨달았다. 자신의 삶을 버텨내는 것만도 힘겨웠던 박동훈 부장은 이지안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 손길은 그녀의 인생을 180도 변화시켰다. 이런 사람이 진짜 어른이 아닐까.


드라마를 보고 나서 나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선한 의지가 모이고 또 모이면 세상은 살만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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