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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내고 나니 내가 더 힘들다

by 아르페지오

며칠 전에 사사건건 부딪치던 세일즈 팀장과 언쟁을 했다. 그러고 나서 몸살이 났다. 아버님 장례를 치르고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회사 일에 치여 지친 탓인지, 평소 안 하던 짓(언성을 높이고 화를 내는 행동)을 해서 감정 소모가 큰 탓인지는 모르겠다.


아무래도 계속 이렇게 일할 수는 없을 것 같아서 세일즈 팀장과 미팅을 하려다가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에서 논의를 하는 것은 좋지 않을 것 같아 며칠 뒤로 미팅을 연기했다.


생각해보면 그도 이유가 있다. 매출은 안 나오고 웬만한 고객사에 팔만한 제품은 이미 다 팔았고 이제는 제안 영업을 하고 새로운 제품을 팔아야 한다. 아무리 상황이 그렇다 하더라도 5명의 세일즈가 2명의 프리세일즈에게 모든 고객사 미팅에 동행하자고 요청하고 고객사마다 고객의 워크플로우에 맞춰 제안서를 쓰고 제안 영업을 하자고 하면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러한 상황을 설명하고 좀 더 계획을 세워서 움직이자고 했는데도 그는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밤 10,11시에 요청한 제안서 작성이 언제까지 가능한지를 묻는 이메일을 보냈고 주말에도 이러한 이메일 폭격은 계속되었다.

수년간 우리 회사 세일즈들이 파는 제품은 Value Selling이 필요 없는 제품들이었다. 별다른 경쟁 제품도 없었기에 고객사들이 알아서 구매하는 제품이라 세일즈들은 별로 할 일이 없었다. 매출을 좀 더 늘리기 위해 라이선스 컨설팅 팀과 고객사를 방문해서 라이선스 단속(?) 정도를 하는 것이 세일즈들의 유일한 업무였다.

그렇게 수년간 태평성대를 누리다가 시장이 포화 상태가 되자 세일즈들에게도 위기가 닥쳤다. Quota는 늘어났는데 고객사는 한정되어 있었다. 이미 제품을 충분하게 구매한 고객사들은 더 이상 수량을 늘리려 하지 않았고 신규 고객사를 찾기는 하늘에 별따기처럼 어려웠다. 거기에다가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위기도 닥쳤다. 고객을 자유롭게 만날 수도 없고 모든 고객사가 비용을 줄인다며 기존에 사용하던 제품의 수량까지 줄이기 시작했다.

매출을 맞추기 위해 라이선스 컨설팅 팀만 조정하던 세일즈들이 안달이 나기 시작했다. 기존에 잘 팔리는 제품이 이외에도 새로운 제품을 팔아야 했고 수량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나와 자주 부딪치던 세일즈 팀장이 찾은 방법은 무조건 프리세일즈에게 요청을 하고 모든 미팅에 프리세일즈와 동행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 회사의 구조는 이러한 제안 영업에 최적화되어 있지 않았다. 현재 우리 조직의 세일즈가 10명, 프리세일즈는 4명이다. 프리세일즈 한 명이 2.5명의 세일즈를 지원하는데 2.5명이 지원 요청을 쏟아내기 시작하니 우리는 이러한 요청을 다 소화해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전부 새로운 제품에 대한 데모, 제안서 요청이라 우리도 공부하고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원하는 대로 결과물이 나오지 않으니 그는 조급해졌다. 일요일마다 프리세일즈 팀을 쪼고 진행상황을 체크했다. 아무리 설명해도 우선순위를 조정해서 자신이 요청한 일을 먼저 해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러다가 결국 내가 폭발했다. 20여 명의 직원들이 참석한 회의에서 짜증을 내고 말았다.


그러면 안 되는데 나는 이래서 항상 회사 생활에서 성공하지 못했다. 너무 열심히 일해주고 지쳐 나가떨어져서 이렇게 화를 내거나 폭발하니 사람들은 나를 emotional 한 사람으로 낙인찍었다. 일은 잘하는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러지 않으려고 했는데 다시 또 폭발해버렸다. 사람은 잘 고쳐지지 않나 보다.


참을 수가 없었다. 일곱 살짜리 아이라도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로 설명하고 또 설명했는데 그는 자신의 요구사항만 되풀이했다. 나의 매니저이면서 세일즈 매니저이기도 한 매니저는 세일즈 편만 들었다. 나는 도망칠 곳이 없었다. 결국 넘쳐나는 고객 미팅과 제안서 요청을 소화하다가 몸살이 나서 누워있는데도 다른 요청이 계속 들어왔다. 몸살로 휴가를 낸 것을 다 알면서 이메일을 보내고 또 보내는 놈들을 보니 화가 치밀었다. 이틀을 쉬었는데도 몸이 나아지긴커녕 화만 더 쌓여서 출근을 했다. 그리곤 스무 명이 참석한 회의에서 화를 내고 말았다.

나는 회사생활을 하면 안 되는 사람인 것 같다.

회사 생활을 잘하려면

웬만한 일엔 화도 안 내야 하고

웬만한 스트레스엔 꿈쩍도 안 해야 하고

고객들과 상사한테 욕을 먹어도 견딜 수 있는 강인한 정신력이 필요하다.


회사 생활을 25년째 하고 있는데도 나에겐 도무지 이런 능력이 생기지를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회사 생활에 안 맞는 사람 같다.


이렇게 정신없이 보내는 사이에 어느새 봄이 왔나 보다. 점심 먹고 잠깐 산책을 하면서 바라본 벚꽃이 내 마음을 위로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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