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몇 주 전에 요청받았던 온라인 강연 녹화를 마치고 왔다. 최근에는IT 세미나도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것이 추세이기 때문에 강연 녹화를 많이 한다. 강연 녹화는 회사에서 직접 스튜디오를 빌려서 촬영도 하고 영상 제작까지 하는 경우도 있고 온라인 콘퍼런스를 주관하는 주최 측에서 진행하기도 한다.
어제 녹화는 온라인 콘퍼런스 주관사에서 진행했는데 여러 회사가 참여하기 때문에 녹화 스케줄이 시간 단위로 빠듯하게 채워져 있었다. 주최 측에서는 40분짜리 강연을 녹화하는데 회사별로 여유 있게 1시간씩 할당했다고 하던데 강연 녹화를 많이 해 본 나는 과연 40분 강연을 한 시간 안에 녹화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가진 채 스튜디오로 출발했다.
아니나 다를까 스튜디오에 도착해 보니 오전 첫 타임 강연자가 재촬영 중이었고 내 녹화 시각은 30분 정도 지연되었다고 했다.
전체 콘퍼런스에 20개의 세션이 있으니 스무 명 정도의 강연자들이 녹화를 해야 할 텐데 발표자 중에는 분명 스튜디오 녹화가 처음인 이들도 있을 것이다. 녹화 경험이 없는 사람이 청중이 하나도 없는 스튜디오에서 자연스럽게 강연을 하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데주최 측에서 빠듯하게 잡아 놓은 스케줄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십 년 전쯤 처음으로 스튜디오 녹화를 할 때 오프라인 강연보다 훨씬 더 말이 꼬이고 매끄럽게 진행이 되지 않아서 여러 번 다시 촬영을 했던 기억이 났다. 나도 모르게 카메라를 의식하게 되니 자꾸만 말을 더듬고 똑같은멘트릏 반복해서 여러 번 NG를 냈다. 당시 우리 회사는 3명의 강연자가 진행하는 3시간 분량 영상을 녹화하기 위해 스튜디오를 하루 종일 빌렸다. 여유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녹화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 녹화를 하는 세미나 주관사는 하루에 5명씩 녹화를 진행하고 하루 8시간씩 스튜디오를 임대했다고 말했다. 과연 8시간 내에 5명의 40분 강연, 총 3시간 20분 분량의 녹화를 다 마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어쨌든 나의 촬영 시간은 오전 11시, 두 번째 타임이라 오전에 조금 지연이 되었다 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크게 되지 않았고 예정되었던 시간보다 약 30분 늦게 시작해서 정확히 12시 10분에 촬영을 끝냈다. 내가 한 번에 녹화를 끝내고 약속된 강연 시간인 40분을 정확하게 맞추는 것을 보고 녹화장에 있던 스태프들이 박수를 쳤다. 그저께부터 열 명 넘게 녹화를 했는데 아직 한 번에 녹화를 끝낸 강연자가 없었다고 했다.
프리세일즈로서 강연은 허구한 날 하는 일이니 강연 시간에 맞춰서 자료를 준비하고 녹화를 하는 것은 나에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한 번에 촬영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미리 철저하게 준비를 했기 때문이다. 여러 번 강의했던 내용이고 익숙한 내용이더라도 녹화를 해서 영상으로 제작할 때는 오프라인 행사보다 훨씬 더 신경을 써야 한다. 대다수의 청중들은 영상을 보다가 강연자가 말을 더듬거나 버벅거리면 재생을 중단해 버린다. 그리고 녹화된 영상은 꽤 오랜 기간 동안 서비스되어서 오프라인 행사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시청하기 때문에 강연 녹화는 신중하게 해야 한다.
최근에 사촌동생이 10년 전에 제작된 내 강의 영상을 우연히 보고 전화를 한 적이 있다. 나는 이 영상이 아직도 서비스가 되고 있는 것을 듣고 정말 화들짝 놀랐다. 이렇게 내가 강연하는 영상을 우연히 다시 보게 될 때가 있는데 말을 더듬거나 버벅거리는 내 모습을 보면 정말 속상하고 괴롭기 때문에 녹화할 때는 매끄럽게 강연을 하려고 노력한다.
녹화 강연을 위한 나만의 노하우는 다음과 같다.
일단 녹화를 하기 전에 여러 번 혼자 리허설을 해보고 스튜디오로 갈 때는 반드시 운전을 하고 가면서 차 안에서 다시 여러 번 반복해서 강연 연습을 한다. 같은 내용의 강연도 이렇게 여러 번 반복을 하면 실전에서 말이 꼬이지 않고매끄럽게 멘트가 나오기 때문에 반복 연습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혼자 강연 리허설을 하면서 휴대폰 녹음기로 녹음을 한다. 녹음한 파일을 다시 들어보면서 어떤 부분을 고쳐야 하는지 세세하게 체크할 수 있고 강연 시간도 정확히 측정할 수 있으므로일석이조이다. 그리고 녹음한 오디오 파일을 프레젠테이션 파일과 같이 저장해두면 나중에 비슷한 내용의 강연을 준비할 때 매우 유용한 자료가 된다. 몇 개월 혹은 몇 년이 지난 후에 비슷한 내용으로 강연을 해야 할 경우도 있는데 슬라이드만 봐서는 무슨 내용으로 강연을 했는지 생각이 안 날 때가 많다. 이때 저장해놓은 녹음 파일을 들어보면 내가 어떤 내용으로 강연을 했는지 정확히 알 수 있기 때문에 녹음 파일은 기록용으로도 유용하다.
여하튼 이렇게 몇 번 리허설을 하고 녹음하면서 시간을 체크하면 강연 시간을 정확하게 맞추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오늘 강연은 정확히 39분 20초가 걸렸는데 촬영 팀에서 영상을 편집할 필요도 없겠다며 고맙다고 하셨다.
녹화 일정을 마치고 짐을 챙기고 있는데 스텝 한 분이 강연 내용이 귀에 쏙쏙 들어오고 평소에 궁금하던 내용이라 많이 배웠다고 말씀해주셔서 기분이 정말 좋았다. 강연 후에 "평소에 정말 궁금했던 기능이다. 혹은 세션이 정말 도움이 되었다"는 등의 피드백을들으면 정말기쁘다. 강연을 하는 것은 나의 업이고 이십 년 넘게 이 일을 해왔으니 당연히 잘해야 하는 일이지만 칭찬을 들으면 여전히 기쁘고 내 일에 보람을 느낀다.
생각해보니 인간의 적응력은 대단한 것 같다. 학창 시절 반장, 부반장 선거 때 발표 울렁증 때문에 한마디도 못하고 단상에서 내려왔던 내가 몇백 명, 몇 천명 앞에서 강연을 하고 이제 온라인 강연까지 하다니 친구들이 지금의 나를 보면 놀랄것 같다.
잠깐 다른 이야기로 빠졌는데 아직도 내가 하는 일을 이렇게 잘할 수 있고 나의 일을 사랑하는데 퇴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 조금 서글프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