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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페지오 Apr 30. 2021

늙었지만 아직 쓸모가 있습니다

창 밖의 목련꽃을 보다가 내게 곧 닥치게 될 현실을 보는 것 같아서 서글펐던 기억이 다.

 

목련꽃은 유난히 아름답게 활짝 피는데 꽃이 시들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처참한 모습으로 변한다.

삼사십 대 열정을 불태우며 회사에 몸 받쳐 일했는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 주위에 비슷한 연배의 동료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물론 나보다 더 나이가 많은 직원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매니저 직급이거나 지사장이었다. 나는 매번 진급에서 미끄러졌고 어느새 한 회사에서 이십 년이나 IC(Individual Contributor)로 일하고 있는 나이 많은 직원이 되어 있었다.  


열심히 일해도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하니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지옥처럼 느껴졌다. 하루하루 버텨나가는 삶이 버거웠고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아름답게 기억될 때 떠나고 싶다. 목련꽃처럼 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 은퇴 준비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마음속으로 정해놓은 은퇴 날짜가 다가올수록 반항심생기기 시작했다. 아직  일을 잘할 수 있고 잘하고 있는데 왜 내 발로 걸어 나가야 하는 화가 치밀었다. 대체 회사는 왜 잘못된 관행을 시정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걸까? 월급 빌런들이 회사를 망치고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고 있는데 매니저들은 왜 아무 조치도 하지 않는 걸까? 저런 인간들조차 회사를 다니고 있는데 왜 내가 그만둬야 하는가?  


별별 생각들이 떠돌며 은퇴를 결정한 내 마음을 흔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 봐도 변하지 않는 현실에 몸과 마음이 병들어갔고 은퇴를 실행하기로 결정하였다.




예전에는 생화를 집에 꽂아놓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코로나 이후 가끔씩 기분 전환이 필요하면 꽃을 온다. 여행도 못 가고 집에만 있으니 화사함을 집 안으로 가져오고 싶기도 했고 꽃 한 다발이 집 안 분위기를 확 바꿔 주어서 기분 전환이 되기 때문이다.


몇 주 전에 오렌지색 거베라에 마음을 뺏겨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몇 송이를 들고 왔다. 회사 일이 바쁠 때라 매일 생화를 손질할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망설였는데 강렬한 주황색의 거베라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안 그래도 바쁜데 매일 아침에 꽃 손질까지 하느라 나의 고요한 새벽이 분주했지만 우아하고 화사한 꽃이 집을 환하게 밝혀주어 좋았다. 매일매일 정성껏 손질해 주고 물도 잘 갈아줬더니 일주일 넘게 버텨주었다. 열흘쯤 되었을까, 이제 시든 꽃들을  정리하다가 문득 거베라를 말리면 고흐의 해바라기 같은 분위기가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에 젖은 가지를 잘라주고 줄기가 서로 닿지 않게 한 송이씩 거꾸로 매달아 주었다. 이틀 정도 위치를 바꿔주며 정성껏 말렸더니 이렇게 멋진 꽃이 탄생했다.

멋지게 변신한 거베라

열흘 동안 우리 집을 화사하게 비춰줬지만 시들어서 쓰레기통에 버리려던 꽃인데 처음 사 왔을 때보다 더 멋들어지게 변신한 거베라를 보면서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얼마 전에 지인의 SNS에서 45세부터는 겸직을 허용해 주어서 사십 대, 오십 대가 은퇴 후의 삶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다는 글을 보았다. 예를 들면 사십 대 중반부터는 일주일에 3일이나 4일만 일하고 나머지 하루나 이틀은 다른 회사나 기관에서 계약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어서 인생의 후반기를 준비할 수 있도록 돕자는 내용이었다. 자신의 제2의 인생을 설계해보고 고 싶은 일 혹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면서 은퇴 후의 삶을 차근차근 준비할 수 있도록 회사에서도 지원해 주자는 취지였다.


나는 이런 제도가 지금 우리나라의 중년층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주변의 사십 대 후반, 오십 대들은 자식 교육에 올인하느라 노후 비를 하지 못했다. 그런데 사십 대 후반, 오십 대는 어느 날 갑자기 회사에서 잘릴 수 있는 나이이다. 실제로 노후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회사에서 잘려서 갈팡질팡하는 지인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았다.



월급 대부분을 생활비와 자녀 교육비로 썼고 아직 자식들 대학도 보내지 못했는데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잘리는 것이 대한민국 40,50대의 서글픈 현실이다. 게다가 그들은 노령의 부모까지 보살펴야 한다. 그들이 직장에서 잘린 후 이것저것 시도하다 실패만 경험해서 인생 낙오자가 되게 하지 말고 직장 내에서 제2의 인생을 준비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해 줄 수는 없을까?


젊은 사람들도 취업을 하지 못해 어려운 상황이니 20,30대에게는 이것이 배부른 소리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40,50대를 겸직으로 돌리면서 20,30대를 위한 일자리를 좀 더 만들 수 있을 것이고 40,50대는 그들의 경험을 살려 20,30대가 직장에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멘토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만약 대다수의 40,50대가 파산한다면 젊은 세대가 떠안아야 할 세부담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중년층의 문제는 이미 신중년의 위기라는 키워드로 이슈화되고 있고 다큐멘터리로도 많이 제작되었다. 두 세대가 서로 도우며 같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로버트 드니로의 인턴이라는 영화를 참 재미있게 보았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 보니 연륜에서 나오는 경험과 지식도 무시할 없는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것들을 활용할 수는 없을까. 지인도 겸직 허용에 대한 글을 올리면서 영화 "인턴"을 언급했던데 이런 것을 제도화하면 20,30대의 취업 문제, 40,50대의 노후 문제를 모두 잡을 수 있지 않을까.


멋들어지게 변한 거베라를 바라보다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어 끄적여본다.

 

나도 아직 쓸모가 있는 것 같은데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으려니 아쉬운 마음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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