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밖의 목련꽃을 보다가 내게 곧 닥치게 될 현실을 보는 것 같아서 서글펐던 기억이 떠오른다.
목련꽃은 활짝 피었을 때 유난히 아름다운데 시들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처참한 모습으로 변한다. 화려하게 피었던 목련꽃이 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직장인들의 인생이 겹쳐져서 서글퍼지곤 한다.
30,40대에는 마치 내가 회사의 주인인 것처럼 열정을 불태우며 몸 받쳐 일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 비슷한 연배의 여성 동료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물론 나보다 더 나이가 많은 직원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팀장이거나 지사장급의 직원이었다. 어쩐 일인지 나는 매번 진급에서 미끄러졌고 어느새 한 회사에서 이십 년 넘게 IC(Individual Contributor)로 일하고 있는 나이 많은 여직원이 되어 있었다.
열심히 일해도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하니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지옥처럼 느껴졌다. 하루하루 버텨나가는 삶이 버거워서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아름답게 기억될 때 떠나고 싶다. 목련꽃처럼 지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으로 은퇴 준비를 시작했다.
그런데 마음속으로 정해놓은 은퇴일이 다가올수록 반항심이 생겼다. 아직 내게 맡겨진 일을 잘할 수 있고 그리고 잘하고 있는데 왜 내 발로 걸어 나가야 하는 건지 울화가 치밀었다. 대체 회사는 왜 잘못된 관행을 시정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건지 화가 났다. 월급 빌런들이 회사를 망치고 있는데, 그리고 다른 사람까지 힘들게 하고 있는데 매니저들은 왜 아무 조치도 하지 않는 것인지 분노가 치밀었다. 저런 인간들도 회사를 잘 다니고 있는데 왜 내가 그만둬야 하는지 짜증이 났다.
별별 생각들이 은퇴를 결정한 내 마음을 흔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을 해도 변하지 않는 현실에 몸과 마음이 병들어갔고 결국 은퇴를 실행하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예전에는 생화를 꺾어서 화병에 꽂아놓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코로나 이후 가끔씩 기분 전환이 필요하면 꽃을 사게 되었다. 여행도 못 가고 집에만 있으니 답답한데 꽃 한 다발이 집 안 분위기를 확 바꿔 주어서 기분 전환이 되기 때문이다.
몇 주 전에 오렌지색 거베라에 마음을 뺏겨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몇 송이를 사들고 왔다. 회사 일이 바쁠 때라 매일 생화를 손질할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망설였는데 강렬한 주황색의 거베라가 온종일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매일 아침에 꽃 손질을 하느라 나의 고요한 새벽이 분주했지만 우아하고 화사한 꽃이 집을 환하게 밝혀주어 좋았다. 매일매일 정성껏 손질해 주고 물도 갈아줬더니 거베라는 일주일 넘게 우리 집을 화사하게 비쳐주었다. 열흘쯤 되었을까, 시든 꽃들을 버리려고 하다가 문득 꽃을 말리면 고흐의 해바라기 같은 분위기가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에 젖은 가지를 잘라주고 줄기가 서로 닿지 않게 한 송이씩 거꾸로 매달아 주고 위치를 바꿔주며 정성껏 말렸더니 멋진 꽃이 탄생했다.
멋지게 변신한 거베라
열흘 동안 우리 집을 화사하게 비춰줬지만 수명을 다하고 시들어서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했는데 처음보다 더 멋들어지게 변신한 거베라를 보면서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본다.
얼마 전에 지인의 SNS에서 45세부터는 겸직을 허용해서 사십 대, 오십 대가 은퇴 후의 삶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다는 글을 보았다. 예를 들면 사십 대 중반부터는 일주일에 3일이나 4일만 근무하고 나머지 하루나 이틀은 다른 회사나 기관에서 계약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어서 인생의 후반기를 준비할 수 있도록 돕자는 것이었다. 자신의 제2의 인생을 설계해보고 하고 싶은 일 혹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면서 은퇴 후의 삶을 차근차근 준비할 수 있도록 회사에서도 지원해 주자는 취지였다.
나는 이런 제도가 지금 우리나라의 중년층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사십 대 후반, 오십 대들은 자식 교육에 올인하느라 노후준비를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나이는 어느 날 갑자기 회사에서 해고 통보를 받을 수 있는나이이기도 하다. 노후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해고 통보를 받고 갈팡질팡하는 지인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았다.
월급 대부분을 생활비와 자녀 교육비로 썼지만 아직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지 못했는데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잘리는 것이 대한민국 40,50대의 서글픈 현실이다. 게다가 우리들은 노령의 부모까지 보살펴야 하는 세대이다. 이들이 직장에서 잘린 후 이것저것 시도하다 실패만 경험해서 인생 낙오자가 되게 하지 말고 직장 내에서 제2의 인생을 준비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해 줄 수는 없을까?
젊은 사람들도 취업을 하지 못해 어려운 상황이니 배부른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40,50대를 겸직으로 돌리면서 20,30대를 위한 일자리를 좀 더 만들고 40,50대의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해서 20,30대가 직장에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만약 대다수의 40,50대가 파산한다면 젊은 세대가 떠안아야 할 세부담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중년층의 문제는 이미 신중년의 위기라는 키워드로 이슈화되고 있고 다큐멘터리로도 많이 제작되었다. 두 세대가 서로 도우며 같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로버트 드니로의 인턴이라는 영화를 참 재미있게 보았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 보니 연륜에서 나오는 경험과 지식도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것들을 활용할 수는 없을까. 지인도 겸직 허용에 대한 글을 올리면서 영화 "인턴"을 언급했는데 이런 것을 제도화하면 20,30대의 취업 문제, 40,50대의 노후 문제를 모두 잡을 수 있지 않을까.
멋들어지게 변한 거베라를 바라보다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어 끄적여본다. 나도 아직 쓸모가 있는 것 같은데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으려니 아쉬운 마음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