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각과 현실/ 잠과 활자
잠을 잔다는 것은 하잘것없는 기술이 아니다. 그것을 위해서 하루 종일 눈을 뜨고 있어야 하니 말이다. 낮 동안 너는 열 번 너 자신을 극복해야 한다. 그것은 적당한 피로를 가져온다. 영혼에게는 그것이 양귀비다. 너는 열 번 너 자신과 화해해야 한다. 극복이란 것은 쓰디쓴 것이고, 자기 자신과 화해하지 못한 자는 단잠을 이룰 수가 없으니. 낮 동안 너는 열 개의 진리를 찾아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밤이 되어서도 진리를 찾아 나서게 되며, 너의 영혼은 허기에 시달리게 될 터이니. 낮에 너는 열 번 유쾌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밤에 비애의 아버지인 위장이 너를 괴롭힐 터이니. 단잠을 이루기 위해서 사람들은 온갖 덕을 다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적다.
" 마흔 개나 되는 사상을 갖고 있는 이 현자는 바보다. 그렇기는 하지만 잠만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구나. 이 현자를 이웃에 두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리라! 그런 잠은 옮기 쉬우며 두꺼운 벽을 뚫고서까지 옮기 마련이니. 그의 강좌에도 어떤 마력이 깃들어 있다. 젊은이들이 이 덕의 설교자 앞에 앉아 있는 것도 쓸데없는 일은 아니다.
그가 가르치고 있는 지혜는 이것이니, 잠을 잘 자기 위해서는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진정 생애 아무 의미가 없어서 무의미라도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면 내게는 이것이야말로 가장 선택할 가치가 있는 무의미가 되리라.
덕의 교사를 찾아간 사람들이 무엇을 특별히 구했는지, 그것을 나 이제 분명히 알겠다. 깊은 잠을 그리고 거기에다 양귀비꽃과 같은 덕을 구했던 것이다!
명성이 자자했던 이들 강좌의 모든 현자에게 지혜란 꿈 한 번 꾸지 않는 잠이렷다. 생에서 이보다 더 좋은 의미를 저들은 터득하지 못한 것이다.
오늘날에도 여기 덕의 설교자와 같은 자들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언제나 그토록 솔직하지는 않다. 저들의 시대도 지나간 것이다. 적들은 더 이상 서 있지도 못한다. 벌써 누워 있지 않는가.
여기 잠이 쏟아지고 있는 자들에게 복이 있을지어다. 곧 꾸벅꾸벅 졸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