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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란도 Apr 24. 2023

코로나 봄 몸살

환각과 현실/ 잠과 활자


라일락 향은 짙다

멀리까지 퍼진다

향이 짙다고 하여 라일락 향이 강렬하다거나 거부감 들거나 하는 향 아니다

그 향은 따라오라 손짓하는 향이다

이 향기가 나를 현재로 부른


이 글을 쓰려고 사진을 본 순간

라일락 향을 따라가는 게 좋겠다 싶었다

라일락에는 기억이 가득하여

무슨 기억이든 그 향기에 다 묻어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_________

나는 이번에 비켜갈 줄 알았다

외나무다리에서 코로나를 만났다

그와 난 거실을 사이에 두고 마스크를 쓰고 만났다

번번이 나는 그가 코로나에 걸렸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럴 때마다 그는 나에게 주의를 주었다

아! 그렇구나! 하고는 나는 손으로 코를 가렸다

그는 방 안에 격리되었고 집은 온통 내 차지가 되었다

'하긴... 언제는 안 그랬나...'


나는  코로나가 나에게 점점 스며들고 있다고 생각했다

거부하지도 않았다

딱히 도망갈 데도 없잖은가

오라! 외나무다리 위에서 적군을 맞듯이 나는 코로나에게 내 몸을 내주었다

그래, 전쟁터가 내 몸 안이면 싸우기가 더 수월할지도 몰라

내 몸 안에는 군사가 많거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코로나가 공기 중에 떠돈다 생각하니 그것이 더 기분 나빴다

코로나에 잠식당한 그는 다소 연기를 했다

이건 나중에 안 사실이다

내가 자꾸 까먹으니까 방 안에서 그는 잘 나오지 않았었다

내가 코로나에 잠식당해 이박삼일을 사투를 벌이자

그때서야 그는 자기는 하루 반정도만 아프고 괜찮아졌다고 말했다


________

감기나 코로나는 혼자의 사투라서 혼자서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자는 데 이리 누워도 저리 누워도 몸이 천근이라서 돌로 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분명 자고 있고 비몽사몽인데도

으~~ 아... 하-- 아이고.. 하는 앓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나는 문득 앓는 소리를 내면 덜 아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계속 앓는 소리에 통증을 실어내었다

아픈 사람이 앓는 소리는 저절로 나오기도 하지만

온 신경이 곤두서서 근육통과 신경이 아플 때는

앓는 소리가 도움이 아주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아픈 사람이 앓는 소리를 내는 것은 그 자신의 고통을 상쇄하려는 처사가 더 우선한다는 것도

만약 옆에서 듣고 있는 이가 있다면

그야말로 노심초사에 애간장에 또는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몰라서 스트레스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통증을 이겨내려는 자연스러운 몸의 신음 소리였다

때로는 억지로 내는 소리가 아니라면 앓는 소리에 민감하지 말고 앓는 소리 낼 때는 그냥 놔두는 것도 좋으리라

어차피 앓을 만큼 앓아야 통증에서 벗어나는 것이니


_______

여기까지 생각하며 눈을 번쩍 떴다

아니지!

이 등골이 빠개지는 것 같은 통증!

온 신경이 들떠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이 통증을 왜 참아야 하지!

그랬다! 이건 치통과 비슷한 통증이었다

단지 이가 아니고 온몸이라는 것만 달랐다

어나서 약상자를 뒤졌다

진통제를 찾았다

치통 생리통 두통.... 등등에 먹는다는 그것

한 알을 삼키고 다시 잠을 잤다

몸에서 통증이 사라졌다

대신 땀을 흘렸다

밤 사이에 나는 쾌재를 불렀다

코로나는 코로나고

나는 통증을 정복하고

이상도 하지...

근육통과 신경통은 분명 코로나 증상에서 비롯된 것일 텐데, 진통제가 이렇게나 잘 듣다니!

이런 생경함은 일말의 불안함을 일으켰다

일시적으로 듣는 거면 어떡하지...


______

하룻밤과 하룻날을 그렇게 보내고 나니

비로소 제정신이 들었다


다시 몇 시간을 쾌청하게 보내고 니니

몸이 금세 피곤해졌다

병든 닭 아니 갑자기 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가며 잠이 몰려온다

밥 먹고 한 시간 눈 떠 있다 자고

잠에서 깨어날 무렵엔 머릿속이 시끄러울 정도로 꿈을 꾼다

온통 다 뒤섞여 무슨 내용인지는 생각도 안 난다

어떤 파노라마가 빠르게 스치듯 필름을 돌리는 듯한

불면의 시간 동안 업로드 되지 못한

또는 정돈되지 못했던 기억을 정돈하는가

잠에서 깰 무렵엔 어김없이 식은땀을 흘린다

이마에도 목에도 머리에도 흥건하게 젖어 있다

자면서 이렇게 땀을 많이 흘린 적이 있었을까

목부터 머리 주변에만 땀이 젖어 있다

휴지로 땀을 닦고 나면 기운이 하나도 없다

 차리려 뭐라도 먹어야지 하며

주방엘 가지만 정작 뭘 먹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물만 마시고 컵에 물 한 잔을 떠다 놓고

다시 눕는다

새벽에 이러기를 나흘째

4박 5일에 한 일은 밥 먹고 약 먹고 자고 또 자고 한 일밖에 없구나


한 가지

코로나 걸리기 전에  자고 일어나면 온몸이 쑤시고 뻐근하더니

코로나 걸리고 나서는 자고 일어나면 쑤시고 뻐근하던 증상은 없어졌다

땀을 흘려서일까

아니면 코로나 걸리기 전에도 나는 계속 몸살 중이었던 것일까


땀을 흘리는 것은 약기운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코로나를 이겨낸 흔적일까?

약 기운 때문인지 코로나 때문인지 내내 몸은 기운이 없고 몽롱하다


________

코로나로 나흘을 이리 보내고 나니

몸은 쉬고 싶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코로나 걸리면 다들 몸은 힘들지만 그 강제휴식이 사람들을 쉬도록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깊은 잠을 자고 싶었나 보다

약기운이겠지만

잠을 계속 잔다는 그것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차라라투스트라는 '잠에 대해 설하는 자'에서 현자의 말이 옳은 말이라고 했지만 '그러다 영원히 잠만 잘라!' 라며 경각심을 갖기도 했다


잠을 깊게 잔다는 것은 신체 그 자체에는 더없이 귀중한 거다

그런데 잠들고 싶지 않은 것도 있다

항상 깨어서 주시하는 것도 있다

누가 더 불안하고 위태한가

잠을 자지 않은 내 안의  파수꾼은 내가 코로나로 약으로 잠을 잘 때에도 깨어 있었다는 것을 나는 자각할 수 있었다

불안은 거기로부터 인가? 자지 못하는 파수꾼으로부터 나는 도망치고 싶었던 것일까?

아주아주 깊은 잠은 아주아주 얇은 잠일지도 모른다

깨어 있을 때보다 더 소란스러운 잠

그 소란스러운 죽음보다 깊은 잠에서 깨어나고서야

비로소 머릿속 시끄러움들이 고요해졌다

불면은 그 시끄러움과 같이 뜬 눈으로 보내는 것이어서 불안을 증폭하는지도




                   _______잠 덕_______



잠을 잔다는 것은 하잘것없는 기술이 아니다. 그것을 위해서 하루  종일 눈을 뜨고 있어야 하니 말이다. 낮 동안 너는 열 번 너 자신을 극복해야 한다. 그것은 적당한 피로를 가져온다. 영혼에게는 그것이 양귀비다. 너는 열 번 너 자신과 화해해야 한다. 극복이란 것은 쓰디쓴 것이고, 자기 자신과 화해하지 못한 자는 단잠을 이룰 수가 없으니. 낮 동안 너는 열 개의 진리를 찾아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밤이 되어서도 진리를 찾아 나서게 되며, 너의 영혼은 허기에 시달리게 될 터이니. 낮에 너는 열 번 유쾌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밤에 비애의 아버지인 위장이 너를 괴롭힐 터이니. 단잠을 이루기 위해서 사람들은 온갖 덕을 다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적다.


이렇게 잠에 관한 덕을 강연하는 현자의 말은 옮겨 적다 보니 모세의 '십계명'이 떠오른다. 잠을 제대로 자기 위해서는 모세의 십계명도 포함되고 있었다. 현자의 말과 십계명에 차이가 있을까? 차라투스트라는 이때 현자가 잠에 굴복하여 단잠에 빠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자 마음속으로 웃었다. 한 가닥 빛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마음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 마흔 개나 되는 사상을 갖고 있는 이 현자는 바보다. 그렇기는 하지만 잠만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구나. 이 현자를 이웃에 두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리라! 그런 잠은 옮기 쉬우며 두꺼운 벽을 뚫고서까지 옮기 마련이니. 그의 강좌에도 어떤 마력이 깃들어 있다. 젊은이들이 이 덕의 설교자 앞에 앉아 있는 것도 쓸데없는 일은 아니다.

그가 가르치고 있는 지혜는 이것이니, 잠을 잘 자기 위해서는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진정 생애 아무 의미가 없어서 무의미라도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면 내게는 이것이야말로 가장 선택할 가치가 있는 무의미가 되리라.

덕의 교사를 찾아간 사람들이 무엇을 특별히 구했는지, 그것을 나 이제 분명히 알겠다. 깊은 잠을 그리고 거기에다 양귀비꽃과 같은 덕을 구했던 것이다!

명성이 자자했던 이들 강좌의 모든 현자에게 지혜란 꿈 한 번 꾸지 않는 잠이렷다. 생에서 이보다 더 좋은 의미를 저들은 터득하지 못한 것이다.

오늘날에도 여기 덕의 설교자와 같은 자들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언제나 그토록 솔직하지는 않다. 저들의 시대도 지나간 것이다. 적들은 더 이상 서 있지도 못한다. 벌써 누워 있지 않는가.

여기 잠이 쏟아지고 있는 자들에게 복이 있을지어다. 곧 꾸벅꾸벅 졸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여기서 '잠'이란 지난 시대를 의미한다. 마취제에 취해 있는 상태의 시간을 의미한다. '각성'과 반대되는 의미이겠다.  차라투스트라가 4부 <각성>에서 '늙은 사람들인 것을'이라고 말한 부분과 맥이 통하고 있다. 이 늙은 사람들은 현세에서 보다 지체 높은 인간들이라 불리지만, 차라투스트라는 이들을 '보다 지체 높은 인간(다음 인간)'이 올 교량으로서의 '보다 지체 높은 인간(유사 인간)으로 대했다. 차라투스트라가 이 유사 인간을 대하는 형태는 적환대가 동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보다 지체 높은 인간들에서 이미 분화가 시작되고 있다. 그리고 그 이전과 이후를 가르는 시금석이 차라투스트라이다. 분화는 조짐이기도 하며 징후이기도 하다. 정신의 유전은 거울처럼 복제되기 때문이며, 이들이 느낀 즐거움이 바로 그 거울의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_______&______

나는 코로나 처방약에 취해 내리 먹고 자고 하다가 월요일 오후에 맴도는 생각을 이렇게 써 보는 것이다. 코로나 앓이도 지나고 보니 어쩌면 하나의 단막극 연극처럼, 보다 지체 높은 인간들이 벌인 나귀 축 연극처럼 생각되었다. '이- 아' 하고 나귀가 화답하는 연극, 나 혼자 앓고 나 혼자 '이 - 아'하고 화답하는, 앓는 연극처럼 다가온다. 단막극이 무수하게 펼쳐지는 인생들에서 '이 - 아' 하고 화답하며 웃는 나귀 연극. 양귀비 꽃 같은 마취제인 단잠이나 통증 마취제인 진통제나, 모두 망각을 위한 환각제일 것이나 인간의 삶에서 이것들은 아주 적절하게 필요하다. 나귀 연극도 단막극인 한에서 필요하듯 질병도 단막극인 한에서만, 한시적으로만 유용하다. 그 나머지는 대지를 위한 표면의 시간들이다.


 차라투스트라 낭독이 완료되었지만, 다시 책을 펴 보니 낯설게 다가온다. 그 내용들은 다시 활자로 제 자리에 가 박혀 있었으며, 그 활자들이 다시 춤추려면 기억에서 되살아나야 한다. 나의 잠은 춤추는 활자들을 잠재웠나 보다. 잠에 관한 대목이 나는 뒤쪽에 있었다 생각했는데 그 대목은 1부에 있었다. 춤추는 활자들 사이로 긴 무의식 안을 헤맨 듯하다. 피곤함이여 가라! 그리고 생경함으로 다시 나에게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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