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애 1.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간은 희로애락이 언제나 공존하고 있다 그 생각들과 표현들 역시 공존하고 있다 어느 하나에 휩쓸리거나 대세가 되거나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게 되었다 세상이라는 타임라임에 기쁨과 슬픔과 무기력과 냉소가 공존한다 그걸 받아들일 수밖에
비애 2.
며칠 전 비바람이 몹시도 내리치던 밤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아파트 사이사이를 휘돌며 지나는 소리가 마치 누군가 울고 있는 소리처럼 괴기하였다 그 바람 소리는 딱 심장 쪼그라들게 만들기 좋은 소리였다 내가 십 년만 더 어렸다면 공포에 휩싸였을지도 모르는 소리 '꼭 귀신이 우는 거 같아'라는 전설 따라 삼천리 표 영화를 한편 때리고 더욱더 그 분위기를 즐겼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이제는 저 소리가 빈 공간을 지나다 갑자기 벽이 나타나서 호리병 형태가 되니까 나는 소리란 것을 안다 아니 자연의 소리가 형태를 드러내는 것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다 단지 그걸 좀 더 그럴듯하게 각색하다 보니 공포를 끌어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공포 영화를 보는 횟수가 현저하게 줄어가고 있다 고작 좀비 영화로 타협점을 찾았다
비애 3.
무엇인가가 부딪혀 오면 마음 안에 벽이 금세 딱 가로 선다는 것을 느낀다 방어벽이다 나이가 들면 방어벽이 더 사라질 거라고 어릴 때는 막연하게 그런 생각을 했던 거 같다 살아보지 않은 시간은 그때 너무 멀게 여겨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 살아보지 않은 시간에 와 있다 낯선 순간들 영원히 오지 않을 것처럼 멀었던 살아보지 않은 그 시간 낯선 순간들을 매 순간 사람들은 살고 있다 마치 익숙한 것처럼 어느 순간 낯섦의 시간은 또 찾아올 것이다 익숙하게 만들어 놓은 시간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낯섦만이 유일하게 나의 것이다
비애 4.
버리지 못하고 함께 지내온 물건들 창고를 나와서 이제 소각장으로 가라 버리지 못했던 것은 물건이었을까? 추억이었을까? 공간감을 회복하지 않으면 치일 것 같은 위기감은 결별을 선언하게 한다 플러스적인 추억을 마이너스적인 공간감으로 환원시킨다 기억하고 추억한다는 것에서 보자면 가지를 잘라 주어야 더 한 곳으로 모아지는 것 낯선 시간에서 익숙한 시간을 바라보는데 오히려 익숙한 시간이 낯설게 비친다 공간감을 파악하는 데에도 한 세월이다 대체로 이 과정을 살아온 시간만큼의 쌓임이라고 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역으로 접근해야 함을 마이너스적 공간감의 회복은 한 시기가 정리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한 시기가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