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라는 이름의 아이
내 인생의 큰 화두인 '불안'을 온전히 직면했다.
불안이 강화된 14년 전의 그때를 마주했다.
누구나 트라우마가 있듯, 나에게도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겪을 법한 일이라는 이유로, 나 또한 오랜 시간 이것을 트라우마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게 10여 년을 보내다 몇 년 전 겨우 '트라우마'라는 이름을 붙어주었지만, 여전히 그것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런데 드디어 그때의 나를 만났다.
14년 전, 아빠가 암 진단을 받으셨다.
누구나 살면서 사랑하는 이의 아픔을 목격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예고 없이 갑자기 들이닥친다.
의사 선생님의 "암입니다."라는 말에 심장이 발끝으로 묵직하게 뚝 - 떨어지는 느낌을 난생처음으로 받았다. 어찌해야 할 줄 몰랐다. 언제나 그러했듯 이 또한 혼자 감당하려 애썼다. 부단히도 나의 불안과 공포를 억압하고 통제하며 '정신 차려!!!'라고 스스로를 혼냈다. 괜찮은 척, 강한 척을 하며 당장 해야 할 것들을 해내느라 분주한 마음으로 그 시간을 보냈다.
나에겐 이게 트라우마다.
타고나길 예민하고 민감한 기질이었던 나에게, 안전지대가 무너지고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이 사건은 불안을 강화시킨 결정적 계기였다.
하지만 오랫동안 이걸 트라우마라고 바라보지 않았다. '남들도 다 겪는 일인데 당연히 견뎌야지.'라고 여기며 내 안의 두려움에게 '약해빠졌네! 그렇게 나약해서 뭘 할 수 있겠어!!'라고 다그치기만 했다.
이후 나는 불확실한 것에 대한 두려움이 가중되었고,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공포가 커졌다. 그 생각들을 통제하느라 참 많이도 애쓰며 살았다. 상담을 받기도 했고, 상담 심리를 공부하고, 마음수련을 하며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불안이라는 아이를 안고 버티고 견뎠다.
그런 내가 이 트라우마를 온전히 마주할 수 있었던 건, 내 안의 불안과 긴장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시간을 가졌기에 가능했다. 불안은 '못난 것'이 아니라 나의 '타고난 섬세함'이라는 것을 인정했기에, 비로소 핵심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고 믿는다. 그래, 때가 되었던 것이다.
이런 타이밍에 맞게, 베프와의 대화에서 자연스럽게 얘기가 흘러나왔고, 언제나 나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공감해 주는 베프가 있었기에 안전하게 마음을 꺼낼 힘이 났다. 누구에게도 이 일이 나에겐 트라우마였다고 말하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내가 '못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자존심이 상했고, 평생 안고 가야 할 짐이라고 여겼다.
그런 나에게 그녀는 함께 아파하며 말해줬다.
"그걸 안고 살아온 언니는 정말 강한 사람이구나!"
그 말이 마음속 깊이 닿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느꼈다. 스스로 자신에게 듣고 싶은 말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타인의 진심 어린 한마디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사람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힘을 얻는 사회적 동물이기도 하니까. 신뢰하는 사람이 내 옆에 단 1명이라도 있다는 것이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리고 저 말을 듣고 싶었나 보다. 많이도.
그렇게 따뜻한 사람의 사랑이 닿아 자연스레 치유가 시작되었고, 그때의 나에게 진심으로 말을 건넬 수 있게 되었다.
"아름아 정말 애썼어. 불안함에도 열심히 성실히 살아내느라 정말 애썼어.
그렇게 버티고 견뎌내 줘서 고마워!
불안이 없어야만, 불안을 안 느껴야만, 또 불안에 휘둘리지 않아야만 강한 사람이 아니라,
불안이 있어도, 불안을 느껴도, 때론 휘청거려도 그 불안을 안고 일상을 살고자 노력한 네가 진짜 강한 사람이야. 이 말을 꼭 전하고 싶어. 고마워 정말!"
나의 불안의 핵을 온전히 만나고, 이런 나를 수용하는 중이다.
14년 전 그날 이후, 불안을 없애야 할 괴물이라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불안이라는 아이가 사라져야 행복한 게 아니라는 것을 마음으로 안다.
그저 불안한 나로 오늘을 살아가면 된다. 그게 내가 배운 현존이다.
다행이다. 진심으로 감사하다.
(p.s = 감사하게도 저희 아빠는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십니다 ^^ 감사합니다!)
Small action, Deep trust, Real grow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