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세잎클로버
‘인생의 겨울’을 물리적으로 말한다면 ‘노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말 그대로 ‘늙은 나이’입니다. 삶의 끝에 가까워졌다는 것이 실감날 때. ‘죽겠네’이라는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을 때. 나와 함께 인생의 길을 걷던 사람들이 점점 사라질 때. 내 머리가 온통 백발이 되고 내 몸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을 때.
요즘 들어 부쩍, 나는 어떤 노년을 보낼 것인가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내 삶의 마지막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온다는 것이 번뜩번뜩 떠오르지요. 그리고 그때가 되면 이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그림을 그린 데스 브로피는 유럽 각국과 미국에서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영국 작가입니다. 16세부터 군인으로 근무하며 12년 동안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등지를 돌아다녔고, 귀국 후에는 셰필드 경찰서에서 22년 동안 일했습니다. 그렇게 계속 생업에 밀려 그림을 본격적으로 배우지 못하다가, 40대 초반 즈음에야 지역 화가에게 그림을 배웠다고 알려져 있죠.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보고 웃는 모습을 볼 때 행복하다는 작가의 말처럼, 그의 작품에는 ‘기쁨’과 ‘에너지’가 듬뿍 담겨 있습니다.
이 그림에도 작가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비가 억수같이 내려도 이 할머니들이 음악을 즐기는 흥겨움을 방해하지는 못하는 것 같죠? 저기 오른쪽 뒤의 할머니 보이시나요? 가로등을 잡고 빙글 돌고 있는 모습을 보고 한마디로 빵 터졌습니다. 이 그림에서 할머니들이 신나게 듣는 음악은 ‘singing in the rain’일 것 같다고 혼자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실 뭐 이거면 어떻고 ‘땡벌’이면 어떻습니까?
물론 이분들의 인생에 즐거운 일들만 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머리가 온통 백발이 될 때까지 인생의 희로애락을 모두 겪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빗줄기를 맞으며 음악을 신나게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느껴집니다. 그리고 하나 더. 혼자 계셨다면 저렇게 신나게 춤출 수 있었을까요? 친구들이라는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그들만의 느낌을 공유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세상의 풍파를 둥실둥실 넘어서 마침내 만난 평온한 물결과도 같은 노년, 그러나 파도가 오면 기껍게 몸을 맡길 여유가 있는 노년, 그렇게 노년을 살고 싶습니다.
또 하늘이 허락한다면, 저 그림의 노부부처럼 노년에도 제 남편과 서로 의지하며 살고 싶습니다. 세월의 중력에 못 이겨 다리도 굽고 허리도 굽었지만, 서로 붙잡아 주며 살아간다면 거동이 예전 같지 않더라도 남은 인생을 좀 더 가볍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계속하고, 새로운 일에 지치지 않는 호기심을 발동하며, 인생의 봄, 여름, 가을을 겪으며 나오는 여유로움으로 무장하고, 주위에는 소중한 사람들이 있는 삶. 제 노년은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제 인생의 겨울을 나다가 어느 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 주지 않고 즐겁게, 소풍 떠나듯이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